▲수색·증산지구 내 롯데건설의 아파트 건립공사 현장.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여전히 삶이 이어지고 있다. 건너편에 상암동 MBC글로벌미디어센터가 보인다. (사진=도기천 기자)
‘6·19 부동산 대책’ 이후 강남 재건축단지를 비롯한 기존 주택 거래가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입지여건이 좋은 새 아파트 분양 시장에는 청약조정지역이라도 여전히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분양권 불법전매, 떳따방(기획부동산) 등이 자취를 감추면서 시장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모양새다. CNB취재진이 6.19대책 이후 첫 주말인 지난 24~25일 이틀간 수도권 노른자위 개발 현장들의 달라진 풍경을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롯데·중흥건설, 6·19 후 첫분양
딱지거래 사라지고 실수요 북적
고분양가·대출규제 여전히 장벽
“딱지요? 그런 건 이제 안 해요. 수수료 몇백만원 벌자고 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잖아요”(지난 25일 고양향동지구 내 A중개업소 대표)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규제책인 ‘6·19대책’이 시행된 직후인 지난 주말, 수도권 인기 개발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경기 고양시 향동지구, 덕은지구, 서울 수색·증산뉴타운 등은 분양권(입주권) 거래가 사라지는 등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이들 지역은 모두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의 배후 단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딱지(분양권·입주권) 가격이 5천만원~2억원 가량 형성된 곳이다.
상암DMC는 서울시가 15여년 전부터 국내 IT·미디어산업의 메카로 조성하고 있다.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SBS프리즘타워, KBS미디어센터, 한국경제신문·TV,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등이 DMC에 들어섰으며, CJ E&M, LG CNS, LG U+, 팬택R&D센터, 누리꿈스퀘어 등 IT·미디어 관련 대기업 수십여 곳도 신사옥을 지어 자리를 잡았다. 또 거주 시설로는 분양·공공임대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1만여 세대가 입주해했다.
특히 상암DMC 중심부와 반경 1Km 내에 위치한 향동지구와 수색·증산뉴타운에서는 6.19 규제의 첫 적용을 받는 민간아파트 분양이 오는 28일~30일 예정돼 있어, 향후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수색·증산지구 내 아파트 건립공사 현장. 남은 주택들도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반세기 삶의 흔적…시간이 멈춘 마을
CNB취재진은 우선 서울의 마지막 뉴타운으로 불리는 수색·증산지구부터 둘러봤다. 이곳은 2005년 서울시로부터 3차 뉴타운으로 지정돼 현재 수색동 13곳과 증산동 3곳 등 총16개 구역에서 재개발이 한창이다. 향후 10개 단지 1만3000여 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경의선 수색역과 지하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증산역, 공항철도역을 끼고 개발되는 역세권인데다, 대규모 업무·상업 복합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라 지난 10여년 간 쉼없이 부동산이 들썩여 왔다.
이미 이주가 완료된 수색역 건너편 일부 구역에서는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낡은 빌라와 주택들이 여전히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과 녹슨 구조물, 산기슭에 기대어 있는 위태로운 주택들…. 60~70년대 난개발의 흔적은 긴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동네 언덕에 올라서니 건너편 상암동에 웅장하게 솟은 MBC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와 현재가 묘한 대조를 이룬 듯 했다.
이중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시공사가 선정된 4개 구역은 조합원(원주민)들이 아파트 입주권을 배정받은 상태다.
수색 4구역은 롯데건설이 오는 2020년 입주를 목표로 분양에 착수했으며, 수색9구역은 SK건설이 내년 하반기에 분양할 예정이다. 증산 2구역은 GS건설이 건립할 예정이며, 증산 5구역은 지난달 27일 조합총회를 열고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최종 확정했다.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지난 25일 수색·증산뉴타운의 첫 일반분양인 롯데건설 ‘DMC 롯데캐슬 더 퍼스트’ 견본주택을 보러온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마지막 뉴타운, 입주권 거래 올스톱
CNB취재진이 기자 신분임을 감추고 지난 24~25일 이틀간 이곳 중개업소 6곳에 입주권 매매 문의를 해봤지만 하나같이 거래를 꺼렸다. 매도자들이 매물을 회수해 팔 수 있는 딱지가 없다거나, 합법적으로 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시점에 문의해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 수색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구역의 조합원 입주권만 매매하고 있는데, (최근 부동산 대책으로) 매도자(조합원)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거래가 어렵다”며 “수색6,7구역 등은 올해 안에 관리처분인가가 예정돼 있지만 미리 입주권을 거래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어 찾는 손님이 있어도 권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접한 상암동 월드컵파크 및 가재울뉴타운의 아파트 가격은 84㎡ 기준 7억원대 초·중반에 형성돼 있다.
수색·증산뉴타운은 구역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조합원 분양가가 4억원대 중·후반(84㎡ 기준)이며, 딱지 프리미엄은 1억5천~1억8천만원 선에서 거래돼 왔다. 따라서 프리미엄을 주고라도 조합원분을 취득하게 되면 인근 아파트 보다 저렴하게 매수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6.19대책으로 대출규제가 강화되고 입주권 거래에 대한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매수·매도자 모두 ‘정중동’의 모습이다. 뚜렷한 가격 변화 없이 거래가 급감하면서 양측 모두 눈치만 보고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입주권 매입 문의가 꾸준하지만 실제 거래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반분양 시장에는 실수요자들이 몰리고 있다. 수색·증산뉴타운의 첫 일반분양인 롯데건설의 ‘DMC 롯데캐슬 더 퍼스트’ 청약신청이 28~29일 예정돼 있는데, 앞서 23~25일 사흘간 공개된 견본주택(모델하우스)에는 2만3000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CNB취재진은 24일과 25일, 두 차례 견본주택을 방문했지만 워낙 줄이 길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안내직원의 말로는 5~6시간은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아파트는 지상 7~25층 15개동, 전용면적 39~114㎡ 1192가구 규모다. 이중 454가구가 일반분양된다.
롯데건설 측은 “분양권 전매제한 등이 시행되면서 상대적으로 입지조건이 좋은 곳의 신규분양에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상암동·수색동과 마주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향동지구의 25일 모습. 이곳에서 호반건설이 짓고 있는 호반베르디움(사진 위)의 분양권 웃돈은 5~7천만원에 달하지만 6.19대책의 영향으로 거래가 중단됐다. (사진=도기천 기자)
서울 ‘옆세권’ 고양향동지구 ‘개점휴업’
이런 흐름은 인접한 향동지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향동지구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향동동 일대 121만3255㎡ 면적에 조성되는 택지지구로 민간분양과 공공임대 아파트 8700여 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지역은 이번 6.19대책에서 분양권 전매금지 지역으로 지정돼 딱지 거래 자체가 불법이다.
통상 딱지는 입주권과 분양권으로 구분되는데 입주권은 재개발 지역의 조합원용 아파트를 이른다. 이는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하지만 사업시행인가, 시공사 선정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야 혹시 모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수색·증산뉴타운이 이에 해당되는 경우다.
분양권은 민간·공공아파트에 당첨돼 입주할 수 있는 권리다. 정부는 6.19대책을 통해 이상 과열 조짐을 보여 온 서울 전 지역(25개구)과 경기도 7개시(광명 고양·과천·남양주·하남·화성 성남), 세종시와 부산 일부지역의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을 기존 6개월~1년에서 소유권 이전 등기 때까지로 늘렸다.
이러다보니 주말인데도 이곳 중개업소는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고, 그나마 문을 연 곳도 한산했다.
특히 중흥건설은 지난 23일부터 향동지구 내 마지막 민간아파트인 ‘중흥S-클래스’ 951가구를 일반분양 중인데, 작년 7월 이곳에서 호반건설과 계룡건설이 3000여 가구를 분양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견본주택 앞에 일명 떳다방(기획부동산)이 길게 진을 쳤고, 실수요자 외에도 투자 목적으로 분양받으려는 사람들이 넘쳤다. 1년만 보유하면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데다 그 사이에라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불법매매가 가능했기 때문. 실제로 분양 당첨이 되자마자 4~5천만원의 프리미엄을 얹어 되파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최근까지도 이런 거래가 이뤄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6·19대책’이 시행된 직후인 지난 24일 오후 고양향동지구 ‘중흥S-클래스’ 견본주택의 모습. 떳따방은 자취를 감췄으며, 차분한 분위기에서 분양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하지만 CNB가 지난 24일 ‘중흥S-클래스’ 견본주택을 찾았을 때의 풍경은 차분했다. 떳다방은 아예 볼 수가 없었고 30여분 줄을 서면 입장이 가능했다. 분양상담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안내직원에게 열심히 묻고 답을 듣는 이들이 많았는데, 한 눈에 봐도 실수요자들로 보였다.
향동지구는 서울 상암동에서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곳이라 사실상 서울생활권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분위기가 차분했던 것은 투기세력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6.19대책의 첫 적용 대상이다 보니 시범케이스로 걸리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다”며 “입주 시점인 3년 후에나 합법적인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분양권을)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철거가 완료된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덕은동 일대)의 26일 오후 모습. 건물 내부가 비어있는데다 마침 이날 비까지 내려 유령도시 같은 느낌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서울 못견뎌 경기도 간다 ‘옛말’
이번에는 상암동과 맞닿아 있어 ‘제2의 상암동’이라 불리는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덕은동 일대)로 가봤다. 이 지역은 상암동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64만6160㎡ 대지에 476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택지 보상이 완료돼 이주가 끝난 상태다. 아직 분양일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3~4년 전부터 이주민용 아파트 입주권을 구하려는 투기세력들이 손을 뻗어온 곳이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단속이 강화된 데다 부동산 흐름의 향배를 일단 지켜보자는 심리가 작용해 거래가 올스톱 된 상태다. 이 동네 부동산 관계자는 “예전에는 종종 입주권 거래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입주권을) 찾는 고객이 있으면 (합법적으로) 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시점에 오시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꼽히는 상암동 일대 부동산 거래는 양극화가 뚜렷했다. 불법전매는 자취를 감췄지만, 신규아파트 분양에는 치솟는 전세값에 지쳐 내 집을 마련하려는 서민들로 넘쳤다.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여전히 공급이 부족한데다 분양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대출규제까지 강화되면서 내집 마련이 더 멀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부동산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청약가점제 아파트 비율을 크게 줄여 청약통장의 기능을 떨어트린 점도 청약만 믿고 기다린 서민들에게 부메랑이 되고 있다.
상암동 인근에서 13년째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주부 정모(46)씨는 CNB기자에게 “상암동 인근 개발지구들에 들어선다는 아파트수를 다 합치면 2만6천 세대가 넘지만, 분양가가 4~5억원대인데다 당첨 가능성도 낮아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며 “서울(상암동) 전세값을 감당 못해 경기도(향동지구)로 밀려간다는 말도 여기선 통하지 않는듯하다”고 허탈해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