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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공정위의 나라…숨죽인 대기업들

김상조發 여론재판…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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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6.21 09:15:58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 손보기’가 속도를 내면서 여러 대기업들의 실명이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이 중 일부는 ‘묻지마식 의혹’으로 기업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몇몇 기업들은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은 구설수에 오르더라도 언론대응을 자제하며 바짝 엎드린 모양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 CNB가 숨죽인 재계 분위기를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공정위보다 더 무서운 게 여론
‘루머’에도 기업이미지 큰 타격
찍힌 기업들, 억울해도 ‘냉가슴’

“김상조 위원장이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한 뒤부터, 마치 재벌이 갑질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에 일단락된 사례까지 다시 회자되고 있어 곤혹스럽다” (A대기업 홍보임원)  

“해명자료를 내도 언론이 받아주질 않거나 기사 끝부분에 간단하게 언급해주는 정도다. 무조건 기업이 나쁘다는 전제를 세워두고 보도 하는 것 같다” (유통대기업 관계자)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재계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여년 간 재벌의 편법·불법상속, 지배구조, 내부거래 등의 문제를 제기해온 인물이다. 1999년부터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맡아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었으며, 2006년부터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일하며 재벌을 비판해왔다. 삼성그룹의 경영승계와 관련된 각종 소송을 주도했고, 롯데·신세계 등 유통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등에 대응해왔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문재인 당시 후보의 대선캠프에 합류, 캠프 산하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J노믹스’ 경제민주화 부문을 설계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개혁 복심으로 통한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정경유착’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현재의 재벌을 적폐·구태세력으로 규정해 개혁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미 공약으로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및 부당특혜 근절, 문어발식 확장 방지, 전면적인 지배구조 혁신, 주주권 강화 등을 약속한 상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취임 일성으로 “하도급 중소기업, 가맹점주, 대리점 사업자,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는 것이 새 정부의 핵심 공약”이라며 대기업들을 향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김 위원장은 우선 2005년 폐지된 조사국을 부활시킬 계획이다. 공정위 조사국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집중 감시와 조사를 펼쳤지만 기업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폐지됐었다. 조사국은 과거 삼성과 현대, 대우, LG, SK 등 5대 그룹의 부당 내부거래 17조 8500억원을 밝혀내 17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이와 비슷한 성격의 대기업 전담 조직인 기업집단국을 신설하는 방안을 관련부처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NB가 단독입수한 성주디앤디와 하청업체들 간의 합의서. 합의금 지급에도 불구하고 하청업체들은 성주디앤디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성주디앤디 사건, ‘을’이 합의해놓고 뒤집어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공정위가 손을 볼 것’이라는 루머에 휘말려 피해를 입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과거에 이미 진위가 가려진 사안이 마치 새로운 사실인 양 둔갑하거나, 이미 공정위에 접수돼 조사 중인 사안이 부풀려지는 경우 등이다. 언론에 해명자료를 내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기업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미지급하고 부당한 단가를 적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성주디앤디(대표브랜드 MCM)다. 

이 회사 일부 하도급업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주디앤디는 하도급업체 4곳에게 샘플 제작비를 체납했다. 또 하도급 거래 계약 체결 당시 마진 지불 방식을 ‘정률제’로 정했으나 2005년 10월 일방적으로 ‘정액제’로 바꿨으며, 포장·운송비용까지 하도급업체에게 전가했다. 해당 하도급업체들은 지난 3월 이런 내용을 공정위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주 성주그룹(성주디앤디) 회장.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CNB 취재결과 상당부분이 사실과 달랐다. 하청업체에게 대금을 체납했다는 부분은 성주디앤디와 해당기업들 간의 합의로 지난 1월 일단락 된 바 있다. 

CNB가 단독입수한 양측 간의 합의서에는 “성주디앤디는 2300만원, 2548만원을 각각 하도급업체들에게 지급하고, 향후 양측은 일체의 민·형사소송 및 신고·진정·탄원·민원제기 등을 하지 않기로 하며, 이미 제기된 이의가 있으면 취하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성주디앤디 측은 작년 12월 하청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소(채무가 없음을 밝혀달라는 취지의 소)를 합의 직후 취하했다. 이처럼 양측이 금전합의 및 소취하를 했음에도 지난 3월 공정위에 신고된 것이다.

마진 지불방식을 일방적으로 바꿨다는 사안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이를 놓고 조정에 나섰지만 양측의 상반된 주장으로 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해당 하도급업체 측은 “2005년에는 협력업체 마진율이 납품 원가 대비 16%였는데, 이후 정액제로 바뀌는 바람에 마진율이 13% 이하로 내려가 적자 상태에 이르게 됐다”며 “성주디앤디 측에 인상을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성주디앤디 관계자는 CNB에 “이미 12년 전에 본사와 하청업체들 간에 서로 협의해서 결정한 사안이며 정액제라고 해서 하청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가 아니다”며 “합의서, 계약서대로 이행했음에도 마치 우리가 일방적으로 횡포를 저지른 것처럼 언론에 알려지고 있어 브랜드 이미지에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성주디앤디가 여론의 표적이 된 배경에 김성주(61) 회장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성주그룹(성주디앤디)을 이끌고 있는 김 회장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대표적 친박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활동해 왔으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임기만료 4개월여를 남겨두고 사퇴했다.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한배를 타고 있는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갑자기 성주그룹이 부각되고 있는 점을 우연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상당수 언론이 ‘친박기업의 갑질’이라는 프레임을 짜둔 상황이라 성주 측의 해명이 전혀 먹히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CNB포토뱅크)

하림, 국회의원 말 한마디에 ‘휘청’

최근 30대그룹 반열에 오른 하림그룹은 자산 10조원 규모의 회사를 100억원 대의 증여세만 내고 2세에게 승계했다는 사실과 함께 증여세 대납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하림그룹의 지배구조는 ‘올품→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진다. 김홍국(60) 하림그룹 회장의 아들 준영(25)씨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올품이 지주사인 제일홀딩스를 지배하고 있다. 김 회장은 2012년 올품을 당시 20세인 준영씨에게 증여했다. 준영씨는 지분을 넘겨받으며 100억원 대의 증여세를 냈다. 

이와 관련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최근 “편법 증여로 25세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준 하림 등을 보며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현대글로비스·롯데시네마와 함께 하림을 지목했다. 이에 공정위가 하림의 경영승계 과정을 들여다보겠다며 조사를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직접 해명에 나섰다. 김 회장은 지난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증여세는 증여 당시 기업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적법하게 납부했다. 그런데 현재 자산을 기준으로 증여세를 적게 냈다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5년 전 증여 당시 올품의 자산규모는 3조5000억원이었는데, 현재 기준(10조5000억원)으로 편법증여 의혹을 제기하는데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증여세를 회사가 대신 납부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본인(준영씨) 지분이 유상감자 되면서 확보하게 된 돈으로 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올품을 통해 받은 대출금으로 증여세를 낸 준영씨는 이후 유상감자를 통해 100억원을 확보해 대출금을 갚았다. 김 회장은 “유상감자한 만큼 주식이 줄어 결과적으로 자산이 감소한 것인데 ‘회사가 대신 냈다’는 것은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비비큐, 가격 내리고도 공정위 타깃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는 가격 인상 논란으로 공정위의 타깃이 됐다. 비비큐(BBQ)는 공정위가 실태조사에 착수하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올린 치킨 가격을 다시 원래대로 내렸다. 교촌치킨·BHC치킨도 인상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비비큐의 불공정행위가 없었는지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서민대표음식을 기습적으로 인상해 소비자는 물론 가맹점주들에게 부담을 준 사실은 비판 받을 만 하다. 하지만 이미 가격을 원위치 시켰는데도 계속 조사를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치킨업계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치킨업계 관계자는 CNB에 “비비큐에 대한 현장조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가 초긴장 상태”라며 “치킨값이 공공요금은 아니지 않나. 국민간식이라는 이유로 사기업의 가격정책을 통제하는 건 시장 질서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재벌 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을의 횡포(?)’ 시작 됐나

유통대기업들도 불똥이 튈라 긴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갑질’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터라 납품업체와의 관계에서 불공정거래 논란이 불거지면 유통업체들도 공정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개사는 지난해 5월 부당감액·부당반품·납품업체 종업원 부당사용 등 불공정 행위를 했다가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220억원, 10억원, 8억5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후 대형마트들은 ‘갑질’을 한 임직원에게 즉시 정직·해고 등 중징계 처벌을 내리는 등의 자율시정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갑을관계 개선 노력을 계속해왔음에도 새 정부 들어 납품업체, 협력업체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자칫 분쟁이 일었다가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큰일이어서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벌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재계는 바짝 몸을 웅크리고 있다. 구설수에 오른 기업들은 평소 같으면 해명·반박 자료를 내는 등 적극 대응하겠지만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어 튀는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보다 더 무서운 게 여론재판”이라며 “잘못 한 게 있으면 처벌 받는 게 당연하겠지만 해명을 해도 변명이 되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 억울해도 갑이라는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갑의 횡포’가 아니라 ‘을의 횡포’가 시작됐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토로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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