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상암동 팬택 사옥의 14일 오후 모습. 조만간 한샘이 입주할 예정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가구업계 1위 한샘의 본사 이전이 예정보다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상암동 팬택 사옥을 사들일 당시만 해도 완전 이전에 2~3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CNB가 복수의 한샘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이르면 올해 안에 신사옥 입주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상암DMC(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일대 상권이 들썩이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팬택, 모회사 건물로 이사 결정
팬택 사옥 주인 한샘, 입주 ‘속도’
상암DMC 골목상권 부활 ‘청신호’
“몇년 간 장사가 안 돼 죽을 맛이었는데 이번에 한샘이 들어온다길래 홀을 넓히고 간판을 새로 달았어요”(팬택 사옥 앞 A호프집 사장)
한샘은 지난달 12일 1485억원을 들여 서울 마포구 상암동 1623번지의 ‘팬택 R&D센터’ 토지와 건물을 양수한다고 공시했다. 연면적 6만6648㎡에 지하 5층~지상 22층짜리 대형 오피스다.
당시 한샘 측은 팬택 사옥 내 기존 입주자(임차인)의 임대 기간이 남은 점, 네 군데로 분산된 회사를 한데 모으는 과정 등을 감안해 팬택 건물로의 이전에 2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팬택은 삼성전자·LG전자와 경쟁 가능한 벤처 기업으로 주목 받으며 건물의 대부분을 사용했었지만 2007년과 2014년 두 차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거치면서 현재는 22개 층 중 6개 층만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공실로 비어있다.
▲팬택은 두 차례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현재는 50여명의 직원이 6개 층만 사용하고 있다. 14일 오후 7시 무렵 팬택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한샘 측은 이 공실을 이용해 임대수입을 올리는 방안을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팬택이 6개 층을 사용하고 있어 당장 입주가 안되는 상황이므로 공실에 임차인을 들이자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샘의 입주 시기는 2~3년 뒤가 된다. 현행법상 임대차계약의 기본 기간이 2년이기 때문이다.
물론 팬택이 사용 중인 6개 층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입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샘은 15년 전에 비해 두 배 가량 덩치가 커졌다. 2012년 1536명이던 직원이 지난해에는 2900명 수준으로 늘었으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한샘으로서는 팬택의 6개 층이 절실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한샘이 과거 신사옥 설립을 위해 사들인 문정동 부지가 이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한샘은 지난 2013년 서울 송파구 문정동 305-17 일대 3811㎡ 를 401억원에 취득한 바 있다. 이 부지를 처분한 뒤에 상암동으로 옮길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팬택 사옥. (사진=도기천 기자)
팬택 이사로 난제 해결
하지만 팬택이 이달 안에 상암동 사옥을 비우고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모회사 쏠리드 사옥 등으로 옮기기로 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팬택 측은 “연구부문은 판교에 위치한 쏠리드 사옥, 비연구부문은 강남 신논현역 인근에 위치한 AS센터로 각각 이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샘은 공실에 임대를 놓으려던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한샘 관계자는 CNB에 “팬택이 이사 가기로 하면서 여러 고민이 해소됐다”며 “올해 안에 입주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샘은 문정동 부지 문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굳이 부지를 처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무구조가 튼실하기 때문이다.
한샘은 지난해 매출액 1조9345억원, 영업이익 159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2012년 7832억원이었던 매출이 해마다 20~30%씩 성장했으며, 영업이익도 매년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관련업계는 주택시장 회복에 힘입어 올해 한샘의 매출액이 전년 대비 14% 늘어난 2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19.2% 증가한 1902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자금력이 풍부해지면서 한샘은 팬택 사옥 매입비용 1485억원을 벌써 다 치렀다.
문정동 부지의 가격 상승이 기대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부지 인근에 10만8000㎡ 규모의 ‘문정동 법조타운’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2021년에는 경전철 법조타운역(가칭)도 개통된다. 이 때문에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는 상태다. 한샘으로서는 가치상승이 예상되는 땅을 굳이 서둘러 처분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한샘 입주 소식에 침체됐던 상암동 상권이 들썩이고 있다. 팬택 건물 앞 먹자골목의 14일 오후 풍경. (사진=도기천 기자)
인근 주민들, 부엌가구 대명사 한샘 환영
이처럼 한샘의 상암동 입주가 속도를 내면서 이 지역 상권이 출렁이고 있다. 상암동 상권은 크게 둘로 나눠져 있다.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CJ E&M, LG CNS, LG유플러스 등이 들어서 있는 상암DMC 중심부와 팬택과 롯데쇼핑몰 예정부지 등으로 구성된 후미(後尾) 상권이다.
팬택 앞에는 100여개의 음식점·주점들이 ‘먹자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 상인들은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2014년 이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1000여명에 달했던 팬택의 직원 수가 50여명으로 줄면서 골목상인들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더구나 팬택 옆 상업용 부지 2만600㎡도 10년 넘게 공터로 비어 있다. 한때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해당 필지를 서울시로부터 불하받아 대규모 쇼핑몰 건설에 나섰지만 우여곡절 끝에 최근 백지화 됐다. 시는 2013년 4월 롯데쇼핑에 1972억원에 매각해 놓고도 4년 넘게 쇼핑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롯데 측이 사업계획을 철회했다. 롯데는 시를 상대로 최근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팬택 건물 앞 골목에는 100여개의 음식점들이 ‘먹자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상암동 상인회 정광욱 총무(56)는 14일 CNB와 만나 “롯데쇼핑몰 사태, 팬택 구조조정 등으로 동네 상권이 크게 침체 됐었는데 한샘이 예상보다 빨리 입주한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다”며 “한샘 입주가 골목상권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한샘 효과로 팬택 건물 내 임대 문의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주민들도 한샘 입주를 반기고 있다. 인근 월드컵파크 단지에 11년째 거주하고 있는 주부 박모(42) 씨는 “부엌 인테리어로 유명한 한샘이 들어온다니 엄마들이 아주 좋아하고 있다. 가구 전시회를 상암동에서 열어주면 좋겠다”며 “팬택을 거울 삼아 욕심내지 말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잘해나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