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신세계는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열린 도서관'을 표방하는 '별마당 도서관'을 열었다. 사진은 개관 당일 시민들로 북적이는 모습. (사진=선명규 기자)
신세계가 60억원을 들인 오픈 라이브러리(Open Library) ‘별마당 도서관’이 베일을 벗었다. 서울 강남구 금싸라기 땅에 무료 개방하는 이 도서관은 책 5만권과 600여종의 최신잡지,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책을 볼 수 있는 최신 e-book 시스템을 갖췄다. 신세계는 이 도서관을 새로운 랜드마크로 키울 계획이다. 책 향기에 이끌린 시민들로 북적인 개관 첫 날 모습을 CNB가 들여다봤다. (CNB=선명규 기자)
‘누구나’ ‘꿈’ 펼치는 ‘별마당’
‘5만권 장서’ 코엑스몰 랜드마크
시민들 “도서대여 안돼 아쉬워”
별마당 도서관이 정식 개관한 지난달 31일 오후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인근 직장인부터 교복 입은 학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 외국인 관광객 등으로 다양했다. 책 5만권이란 성찬에 파묻힌 사람들은 탐독했고, 사색했고, 놀라워했다.
‘정숙’이 미덕인 일반 도서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했다. ‘인증샷’을 남기려는 셔터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샌드위치 등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텍스트에 몰두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내부 곳곳에는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안락한 의자, 원형과 사각형의 테이블이 즐비했다. 대부분 노트북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콘센트를 갖추고 있었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별마당 도서관이란 이름은 설문 조사를 통해 개관 직전 확정 됐다. 꿈을 펼친다는 의미의 ‘별’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 ‘마당’이 합쳐졌다.
이 도서관의 총 면적은 2800㎡. 복층으로 구성됐다. 1층에는 일반 도서와 함께 600여종을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잡지 코너가 마련됐다. 2층에는 편의점과 카페 등이 들어서 서가와 공존하고 있다.
▲600여 종을 보유한 잡지 코너 (사진=선명규 기자)
처음 이곳에 들어서면 아파트 4층 높이에 해당하는 13미터짜리 대형 서가 3개가 시선을 잡아끈다. 도서관이나 서점이 아닌 한 번쯤 갖고 싶은 서재에 대한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CNB기자에게 “어릴 때부터 나만의 공간에 책을 빼곡히 채워보는 상상을 했는데, 이곳이 딱 내가 그리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4층 높이에 해당하는 13미터 대형 서가에 책이 빼곡히 차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신세계는 이곳을 복합 문화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정기적으로 북 콘서트, 시 낭송회, 인문학 토크쇼, 책 관련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인다. 첫 행사로 다음달 17일까지 윤동주 탄생 100돌을 맞아 사진, 자필 원고, 책 등을 선보이는 ‘윤동주 기념 전시회’를 진행한다. 개관 당일에는 부대행사로 윤동주 시인의 작품해설, 시 낭독회 등이 열리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윤동주를 읽다' 행사에서는 시 낭독회와 가곡 공연 등이 진행됐다. (사진=선명규 기자)
정용진의 ‘인문학 사랑’ 결실
별마당 도서관이 자리한 스타필드 코엑스몰은 신세계그룹의 부동산 개발 계열사인 신세계프라퍼티가 지난해 인수한 곳이다. 코엑스몰은 한 때 연간 유동인구가 5000만명에 육박했으나 2013년 대대적인 리모델링 이후 복잡한 동선, 입점 브랜드의 높은 가격 등으로 인해 오히려 침체를 겪고 있었다. 갈수록 방문객이 크게 줄자 색다른 랜드마크로 조성하기 위해 만든 것이 별마당 도서관이다. 신세계는 매년 여기에 5억원을 투입해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는 계획이다.
음악이 나오고 자유로운 대화가 오가는 열린 도서관의 성공 사례는 가까운 일본에 있다.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인 일본 다케오시의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2013년 열린 도서관으로 변신, 연간 100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신세계는 이 도서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엑스몰 상권 부활의 수단으로 열린 도서관을 선택한 것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 ‘인문학 전도사’로 불릴 만큼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중흥사업인 ‘지식향연’ 역시 그의 작품. 해박한 지식으로 직접 대학에서 수차례 강의하며 호평도 받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올해 1월 열린 ‘2017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코엑스몰이 2019년이나 2020년이 되면 많이 바뀌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대대적인 변신을 공언한 바 있다. 당시 정 부회장은 랜드마크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코엑스몰의 가장 큰 문제점인 난해한 동선과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부분이 개선된다면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2층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하지만 2% 아쉬운 점도 있다. 별마당 도서관이 개방된 형태로 운영되다보니 도서 도난에 대한 대비책이 사실상 없었다. 열린 공간에 서가를 마련해 놓았음에도 별다른 보안대책은 세워두지 않은 듯했다. 현장 직원은 “도난 방지 시스템이 따로 없기 때문에 시민들이 양심적으로 책을 본 뒤 원래 자리에 두고 가길 바라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걸맞지 않는 ‘대여 불가’ 방침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실제로 이날 책을 읽던 사람들이 안내 직원에게 대여가 가능한지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학생 A씨는 “동네에 도서관이 생긴다고 해서 신분증까지 챙겨 왔는데 빌려갈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유통업계는 ‘정용진표 별마당 도서관’이 코엑스몰 상권 부활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