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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4차산업혁명’ 발목 잡는 20세기 규제들

시공간 초월하자면서 ‘비행금지’ ‘대면거래’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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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6.01 09:29:28

(CNB=도기천 부국장) “점원이 없는 줄 알았는데 불쑥 나타나길래 이게 뭔가 싶었어요.”(CNB취재기자)

“엄밀히 말하자면 무인점포가 아닙니다. 최첨단 스마트편의점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아요.”(롯데 관계자)

최근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문을 연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이야기다. 롯데는 최근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를 개장하며 이곳 31층에 세계 최초의 무인편의점을 오픈했다. 신분증과 롯데카드, 휴대폰, 정맥(손바닥) 정보를 등록하면 이용할 수 있다. 

핵심 기술은 ‘핸드페이(HandPay)’. 사람마다 다른 손바닥 정맥의 혈관 굵기, 선명도, 모양 등을 암호화된 값으로 변환해 고객을 판별하는 시스템으로 롯데가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한마디로 손바닥만 갖다 대면 결제가 가능하다. 아직은 롯데카드 고객만을 대상으로 시범운영 중이지만 점차 폭을 넓힐 예정이다. 

이는 4차산업혁명의 초기 단계라 불릴 만하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바이오(생명과학),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된 차세대 산업혁명이 유통업계에 처음 등장했다는 점에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CNB취재진이 이 편의점에서 장을 봐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으니 화면에 “직원의 대면확인이 필요한 상품이 있습니다”라고 뜬 것. 그 즉시 직원이 나타났다. 

이유는 ‘술’ 때문이다. 현행법상 주류는 대면판매만 허용하고 있다. 청소년이 온라인상에서 술을 구매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장바구니에 캔맥주 한 개만 담아도 보통의 편의점처럼 점원이 계산해야한다.

그런데 이곳 이용자들은 이미 정맥 정보를 등록해 본인(성인) 인증을 받았다. 더구나 롯데카드 고객만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청소년이 여기에서 물건을 사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만 20세 이하는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법 따로 현실 따로’가 된 데는 주류관련 법규가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술은 반드시 대면거래를 해야 한다’는 원칙은 30여년 전 제정된 ‘국세청 주류 관련 고시와 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주세(酒稅)가 국가 재정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다 보니 세무 당국이 ‘청소년 보호’(?) 역할까지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 고시(규정)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전통주’를 제외한 모든 주류는 통신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술은 인터넷·전화주문 등으로 사고팔아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다만 ‘치맥(치킨집의 맥주 배달)’은 서민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작년부터 허용됐다.

결과적으로 이런 낡은 규제가 차세대 산업혁명의 핵심인 ‘무인점포’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필요하면 특별기구라도 만들자

이와 비슷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금융권에서는 금산분리(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이 핀테크(금융+IT)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금융당국은 ICT기업을 통해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보급한다는 목표 하에 작년 초부터 인터넷전문은행 개점을 추진해왔다. 국회도 이에 부응해 산업자본의 의결권 있는 은행지분(현행 4%이내) 소유를 34%~50%까지 대폭 늘리는 내용의 관련법안들을 상정했다.

이런 가운데 KT, 우리은행, GS리테일, NH투자증권, KG이니시스 등이 컨소시엄을 이룬 ‘K뱅크’가 문을 열었고, 한국투자금융지주, KB국민은행, 넷마블게임즈, 이베이 등이 공동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뱅크’가 출범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의 금융자본 소유 확대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권도 ‘재벌개혁’이라는 화두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드론 택배’ 시험비행 장면. 각종 규제에 막혀 상용화 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롯데글로벌로지스)


통신·물류 분야에서는 ‘드론’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드론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사물인터넷 시장이 성장하면서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가전 기기들을 모바일로 제어하는 ‘스마트홈’ 시장을 드론을 이용한 물류 분야까지 확대하자는 플랜이다. 

하지만 분단국가인 탓에 비행 가능 지역이 제한돼 있고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비행 행위도 금지되며 야간에 드론을 날릴 수도 없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물류 빅3’는 사람이 배달하는 20세기 시스템에서 한 발 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농업, 교통, 물류 등 여러 분야에서 드론이 상용화되고 있지만 딴 세상 얘기다.
 
구글의 한국 정밀지도 데이터 해외반출 요구로 비롯된 ‘포켓몬GO’ 사태 또한 규제 벽에 가로막힌 대표적인 예다.  

물론 분단 현실(드론), 청소년 보호(무인점포), 재벌의 사금고화(금산분리) 문제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자는 건 아니다. ICT혁명과 이 문제들을 잘 접목시켜 합리적인 대안을 찾자는 얘기다. 

가령, 계열사 간 자본 출자가 적정범위를 넘지 않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통합금융감독시스템을 강화한다면 핀테크도 발달시키고 재벌의 계열사 사금고화 우려도 덜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의 주류 접근 문제는 첨단 신분인증시스템을 도입하면 될 일이다. 드론 문제도  국방부가 전향적인 태도로 나서면 답이 보일 것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관련법규를 일관성 있게 정비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런 문제들을 총괄하는 국가차원의 특별기구 설립도 고려해볼 일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4차산업혁명을 하자면서 ‘대면거래’ ‘비행금지’를 고수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CNB=도기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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