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재 의학박사/웅선클리닉 원장
“수녀님에게 색동옷을 입혀 드리고 싶어요.” 한복 골목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췄다. 중년의 여성 손님과 주인의 대화 한 토막이 귀에 들어왔다. 손님은 수녀님에게 드릴 색깔이 고운 옷을 찾고 있었다. 수녀와 색동옷? 고정관념을 깨는 조합이 길 가는 이의 발을 묶은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손님에게는 존경하는 수녀님이 있었다. 그녀는 젊은 날 수녀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감사한 마음은 오랜 인연으로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손님은 중년이 되었고, 수녀님은 노년이 되었다. 기력이 시나브로 약해진 수녀님에게 치매가 왔다.
수녀님은 간혹 색동옷을 찾았다. 수녀님은 수십 년 동안 정갈한 회색 옷을 입었다. 사랑이 넘친 행동으로, 근엄한 규율로 세상의 빛이 되고자 노력한 분이다. 그런데 힘이 떨어진 할머니, 치매가 와 정신이 혼몽한 상태에서 고운 빛깔의 옷을 찾았다.
사람에게는 이성(理性)과 본능(本能)이 있다. 이성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좋음과 나쁨, 옳음과 그름, 거짓과 진실,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할 수 있는 힘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이성의 힘이다. 동물과 구분되는 양식이다. 본능은 태어나면서부터 갖춘 능력이나 행동 양식이다. 학습이나 경험 없이 나오는 행동이다.
둘의 관계는 그리 좋지는 않다. 사람은 이성으로 상당 부분의 본능을 억제, 공동의 선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특히 종교인은 이런 성향이 강하다. 수녀님도 좋은 옷, 화려한 옷을 입고 싶은 본능을 누르고, 주변 사람에게 나눔을 베풀었을 것이다. 이성(理性)의 힘이다.
그런데 치매가 걸린 상황에서는 이성(理性)이 아닌 본능(本能)이 발현된 게 아닐까. 어릴 때 입었던 또는 입고 싶었던 간절함이 이성의 통제가 풀리면서 나타난 게 아닐까.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인도 인간인지라…
누르는 것은 부담이 되고, 부담은 스트레스가 된다. 수녀님은 본능의 욕구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이 베푼 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 예수님의 말씀을 좇고, 성모마리아의 삶을 본받는다.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고 수도를 한다. 재산, 혈연에 연연하지 않고, 기도와 고행으로 더 많은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산다. 수녀님은 스스로를 억눌러 사회 공익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수녀님도 본능의 마지막 부분까지 다 날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녀님도 종교인에 앞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한복 골목을 지나면서 엿든 대화에서 그동안 탈모 치료를 한 수녀님과 비구니님, 스님이 떠올랐다. 이 분들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개인적 욕망을 억눌렀을 것이다. 더 큰 이웃에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위한 작은 사랑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것이 일부는 스트레스로 작용해 모발이 더 빠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기간 계속되는 스트레스는 탈모와 관계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직접적인 탈모 보다는 기존의 탈모 소인을 자극해 모발 이탈을 가속화 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인체는 스스로 치유하는 자정능력이 있다. 면역력이 강할 때는 크고 작은 질병도 이겨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스트레스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걱정이 쌓이고, 기분이 나쁘면 잘 체한다. 면역력 저하가 한 원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탈모의 관계를 계량화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강도가 천차만별이고, 탈모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스트레스가 탈모의 직접 원인일 수도, 간접 원인일 수도 있다.
이처럼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 해소는 마음 수련이 잘 된 종교인에게도 힘든 일이다. 탈모인을 치료하면서 습관적으로 “마음을 너그럽게 해 스트레스를 줄이세요”라고 한 말이 어느 정도나 현실성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 자신이 없다.
(정리 = 최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