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사진)은 금호타이어를 되찾아 옛 금호신화를 재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기업의 금호타이어 인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등 야권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채권단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간의 수 싸움이 치열하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를 되찾아 과거 금호그룹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포부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재무구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CNB=도기천 기자)
금호타이어는 금호 70년 산역사
박삼구 회장 부자 타이어서 성장
‘금호신화’ 재현할 마지막 퍼즐
채권단이 금호타이어 매각을 서두르는 이유는 이 회사의 실적이 그다지 밝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은행(14.15%), 산업은행(13.51%), KB국민은행(4.2%) 등 8개 채권단은 최근 중국 타이어 업체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 보유지분 42.01%와 경영권을 9550억원에 넘기는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이는 금호타이어가 지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실적 부진이 계속돼 온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금호타이어는 작년 당기순손실 379억원으로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각각 3.1%, 11.7% 줄었다. 2012년 매출액 4조706억원, 영업이익 3753억원을 기록한 이후로 실적이 내리막길이다. 지난해 1만1000원대를 웃돌던 주가는 8천원대로 내려앉은 상태다. 인건비 비중이 커진데다 업계 1위 한국타이어와 3위 넥센타이어의 사이에서 시장을 조금씩 뺏기고 있는 점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왼쪽)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2~23일 잇달아 광주를 방문, 금호타이어 노동조합과 만나 금호타이어의 외국기업 인수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는 중국기업‘더블스타’와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는 채권은행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으며, 반대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에게는 힘이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채권단 “박 회장 혼자서 인수해라”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다. 우선매수권은 채권 소유자가 주식을 제3자에게 매도하기 전에 채무자(박 회장)가 같은 조건으로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다. 더블스타가 제시한 9550억원을 박 회장이 수용하면 그 가격에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채권단은 워크아웃 당시 박 회장과 아들인 박세창 사장이 113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점을 감안해 박 회장 부자에게 우선매수권한을 부여했었다.
하지만 박 회장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아 보인다. 앞서 2015년 11월 그룹 재건을 위해 옛 지주사인 금호산업을 인수하면서 7228억원을 쏟아 부었는데, 이로 인해 박 회장은 물론 그룹 계열사들도 재무상황이 나빠졌다.
채권단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에비타((EBITDA,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대비 차입금 배율이 7.9배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통상 4~5배가 적정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차입금이 과도한 편이다. 그룹의 주력인 아시아나항공 경우, 총차입금이 지난해 6월 기준 4조874억원, 부채비율은 899%에 이른다.
박 회장은 자신이 지분 100%를 소유한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재무적투자자(FI)와 전략적투자자(SI)를 모을 계획이다.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
하지만 채권은행들은 박 회장의 자금여력을 의심하고 있다. 박 회장이 컨소시엄 구성 내용을 먼저 채권단에 제출하면 이를 받아들일지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동원하지 않고 인수 금액의 상당액을 조달할 수 있는지를 보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앞서 채권단은 “우선매수청구권은 박 회장 개인에게 부여한 것으로, 계열사를 동원해 조달한 자금은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채권단의 이런 태도에 대해 박 회장 측은 날을 세우고 있다. 채권단이 자금조달계획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원에 매각 중단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CNB에 “산은이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컨소시엄 구성을 계열사 자금을 차입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해석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와 산은이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5조8천억의 추가 지원안을 내놓은 것과 형평이 맞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2700%에 달하는 대우조선에 2015년에 이어 또다시 수조원의 금융지원을 하겠다면서 향토기업(광주)인 금호타이어에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자 박인천(朴仁天, 1901~1984)은 포드 35년형(앞), 내쉬 33년형(뒤) 등 중고 택시 2대를 구입해 1946년 광주 황금동에 ‘광주택시’란 상호로 사무실을 열었다. 금호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사진=CNB포토뱅크)
구멍가게에서 글로벌기업으로
이처럼 대내외적인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박 회장이 굳이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뭘까. 이는 금호가(家)의 오래된 과거사가 배경이 되고 있다.
금호그룹은 1946년 고 박인천(1901~1984) 창업주가 전남 광주에서 포드 35년형, 내쉬 33년형 등 중고 택시 2대를 구입해 광주 황금동에 ‘광주택시’란 상호로 사무실을 열면서 시작된 기업이다. 이후 박 창업주는 금호고속을 설립했으며, 타이어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 직접 타이어를 생산하기 위해 1960년 ‘삼양타이야’를 세웠다. 당시 타이어 생산량은 하루 20여개에 불과했다.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관 전경. (사진=CNB포토뱅크)
이후 빠르게 성장해 1975년엔 국내 최초로 항공기용 타이어를 개발했으며, 99년엔 구멍이 나도 시속 80㎞로 달릴 수 있는 런 플랫(Run-flat) 타이어를 세계 네번째로 생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미국·베트남 등에 잇달아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타이어 사업과 함께 운수사업도 크게 번창했다. 그룹의 모(母)기업인 금호산업은 60~70년대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어 ‘금호 신화’를 창조했다. 1995년에는 중국 우한에 첫 합작회사를 설립해 해외 운수시장에 진출하는 등 덩치를 키웠다. 현재는 토목·건축, 공항·물류시설, SOC, 환경, 주택 등 건설 전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금호그룹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양대 축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특히 박 회장 부자와의 개인적인 인연도 깊다. 박 회장은 스물두살이던 1967년 금호타이어에 처음 입사해 올해 50년을 맞았다.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사장도 200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금호타이어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6년 금호그룹은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계열사들로부터 인수자금을 끌어왔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경기가 불황을 겪으면서 결국 그룹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다. 2009~2010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했으며,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다행히 금호산업은 채권단 손에 들어간 지 6년 만에 되찾아 오는데 성공했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이 매물로 나오자 사재를 털어 인수 실탄을 마련하는 등 온 힘을 쏟았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기업인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금호터미널, 금호리조트 등 10개 계열사의 상당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주주다. 특히 그룹 경영의 핵심인 아시아나항공의 주식 30.08%를 가진 최대주주다.
▲지난해 완공된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시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생산공장. 연간 400만개의 타이어 생산 능력을 갖췄다. (사진=금호타이어 제공)
‘승자의 저주’ 우려 목소리도
이제 퍼즐의 남은 조각은 금호타이어다. 금호타이어 인수를 통해 70년 금호 역사의 정통성을 되찾겠다는 것이 박 회장의 의지다. 박 회장은 최근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금호타이어 인수를 통해 그룹 재건을 마무리해야 하는 마지막 과제가 남아 있다”고 역설했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와 함께 금호고속 인수도 상반기 중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룹 지주사인 금호홀딩스(구 금호터미널)는 2015년 6월 금호고속을 인수했지만 금호산업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그해 9월 칸서스KHB에 3900억원에 되팔았다. 당시 금호 측은 2년3개월 안에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부여받았는데, 이 콜옵션을 조만간 행사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의 뜻대로 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주사인 금호홀딩스를 중심으로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등이 주력계열사로 자리 잡게 된다. 재계에서는 추후 금호홀딩스와 금호산업의 합병을 통해 예전의 지배구조를 완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과거 금호산업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던 금호그룹의 전성기 때 모습과도 유사하다. 금호타이어가 그룹 재건의 중요한 키워드로 읽히는 이유는 이처럼 박 회장이 그리는 그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박 회장의 의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돼 ‘승자의 저주’에 빠졌었다. 이번에도 그룹 안팎에서는 ‘너무 무리하게 밀어 붙인다’는 말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한진, 동부, 현대그룹 등 재무구조가 불안했던 기업들이 ‘다이어트’에 나서는 동안 금호아시아나는 반대로 몸집을 불려왔다”며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시점에 너무 옛그림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CNB에 “금호타이어는 명분이나 정통성 차원을 넘어 그룹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될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며 “과거 워크아웃으로 인해 제대로 된 연구개발(R&D)을 못한 점이 실적악화를 초래했지만 글로벌 타어어산업이 호황기를 맞고 있는 만큼 흑자전환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