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됐지만 외형성장을 그에 미치지 못해 불활형 흑자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17일 수출 화물로 가득한 부산신항 모습.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에 비해 크게 늘며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 매출 증가가 이익 증가율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우리 경제가 ‘불황형 흑자’ 구조에 갇힌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CNB=손강훈 기자)
대기업 ‘실적개선’ 성공했지만
줄이고 팔고 ‘다이어트’ 결과
사라진 투자·고용…앞날 안개속
지난해 우리 경제는 여러모로 힘들었다. 자동차, 철강, 조선·해운업 등 그간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굴뚝산업’이 저유가 및 글로벌 시장 침체로 부진을 겪었고 ‘최순실 사태’라는 정치적 이슈가 온 나라를 집어삼켜 ‘혼란’을 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기업의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영업이익이 2015년에 비해 증가하며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10일까지 실적을 발표한 매출 10조원 이상 46개 상장법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4조9144억원으로 전년보다 15.5% 증가했다.
대기업의 이익이 늘어났다는 건 다른 자료에서도 알 수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실적을 발표한 75개 기업의 지난해 실적을 조사한 결과, 영업이익은 111조1037억원으로 전년 대비 12.4% 늘었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경우 채권단의 자금 지원을 위해 자구계획안을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1조641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미국의 반덤핑 제재를 받았던 포스코의 경우도 영업이익이 18% 가량 증가했다.
반도체 효과로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삼성전자나 휴대폰 부진이 뼈아팠던 LG전자도 영업이익은 10% 이상 늘었다.
다만 매출 증가율은 영업이익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
재벌닷컴 자료를 보면 46개 상장사의 지난해 매출은 1372조3809억원으로 작년보다 5.3%가, CEO스코어에 따르면 75개 기업의 매출은 1344조 1074억원으로 1.7% 증가하는데 그쳤다. 각각의 영업이익 증가율과 비교하면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롯데쇼핑, KT, 롯데케미칼, 하나금융지주 등 상당수 기업들이 매출 증가율에 비해 영업이익 증가율이 크게 높았다. 심지어 현대중공업, 포스코,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효성 등은 매출이 줄었음에도 영업이익은 늘어났다.
▲대기업이 구조조정 등 비용절감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허리띠 졸라매기만 집중하다가는 '성장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가한 현대중공업 노조. (사진=연합뉴스)
“줄이는게 능사 아니다”
문제는 이런 수치가 외형 성장과 수익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하는 ‘불황형 흑자’를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실적 개선이 투자와 성장을 통한 것이 아닌 구조조정, 비용절감 등 허리띠를 졸라매 얻은 결과란 얘기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의 경우 지난해 9월말 기준 6900여명이 직장을 떠났고,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계열사 7개는 1년 새 1만2000여명의 직원이 줄었다.
이처럼 몸집이 줄어드는 건 그만큼 기업의 성장판이 닫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비용절감에 따른 수익성에만 집중하다가 성장동력을 잃어 도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로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실패를 들 수 있다. 1위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는 금융논리에만 매몰돼 원양 컨테이너선 사업과 해운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혈세를 투입하기에 앞서 경영권 포기 등 추가적인 대주주 책임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고, 한진그룹은 경영상 더 이상의 자구 노력이 어렵다고 맞서면서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그 결과 한진해운은 5000억원의 자구안 마련이라는 강력한 다이어트에도 불구, 파산했다.
업계에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할 ‘골든타임’을 놓친 점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두 회사가 자율협약을 신청할 만큼 재무 상태가 악화하기 전 정부가 글로벌 해운시장의 흐름에 맞게 합병을 추진해 초대형 국적 선사로 덩치를 키웠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의 경우에서 보듯 몸집을 줄이기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며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면서 기업은 이익을 내고 국내 경기는 악화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