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춘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서울 시내의 한 신규면세점 모습. (사진=김유림 기자)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번 춘절(중국 최대 명절) 기간에 한국을 찾은 관광객이 과거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돼 주목된다. 단체관광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개인 자유여행객이 급증한 것. CNB가 예전과 달라진 유통·관광업계 분위기를 취재했다. (CNB=김유림 기자)
단체관광 줄고 자유여행 늘어
사드 논란 불구 큰 타격 없어
백화점 웃고 호텔 울고 ‘희비’
춘절(春节)은 한국에서 쇠는 음력 설과 같은 것으로 5월 노동절, 10월 국경절과 함께 대륙의 3대 연휴 시즌이다. 올해 중국 정부가 지정한 공식 휴무는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7일간이지만, 길게는 정월대보름(2월 11일)까지 무급 휴가를 갖는 회사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 중국인 600만명이 해외로 나가 약 1000억위안(17조원)을 소비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매년 국내 관광업계는 춘절 시즌마다 업종을 망라하고 대목을 잡기 위해 치열한 마케팅을 벌여왔다. 하지만 올해는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예년보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경제 보복에 나선 상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방한 중국인관광객 수가 전년 춘절 기간에 비해 4% 증가한 14만명으로 오히려 더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관광객을 20% 줄이도록 지시, 중국발-한국행 전세기에 대한 운항 신청 불허 등 유커(遊客·단체관광객) 축소 정책을 본격화했지만, 싼커(散客)라 불리는 개별 자유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이 같은 수치가 나온 것이다.
실제로 춘절 연휴기간 동안 주요 관광지에서 볼 수 있었던 깃발부대를 이룬 유커(遊客·단체관광객) 무리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서울 강남 번화가에서 명품 쇼핑을 하거나 맛집 탐방을 다니는 싼커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싼커의 특징은 중장년층 위주의 유커와 달리 젊은 세대 여성이 주를 이루며, 직접 숙박을 예약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특색 있는 여행을 선호한다.
▲올해 춘절 기간 중국인 개별관광객(싼커) 비중. (사진=한경TV)
내공 쌓인 롯데 ‘표정관리’
이처럼 중국인의 여행 패턴이 ‘단체’에서 ‘개별’로 바뀌면서 춘절 대목에서도 관련 업계의 희비가 뚜렷하게 엇갈렸다.
단체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면세업계는 매출 감소세가 뚜렷했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서울 신세계면세점은 연휴 직전까지 일 평균 매출 25억원을 기록했지만, 춘절기간에는 일 평균 매출 17억원으로 되레 하락세를 나타냈다. 한화갤러리아면세점63과 신라아이파크면세점 역시 ‘춘절 특수’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업력이 30년 이상에 달하는 면세점 터줏대감들의 매출은 증가했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동안 중국인 매출이 작년보다 23% 상승했고, 신라면세점 서울점의 중국인 매출도 10% 늘어났다. 두 면세점 매출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70%를 웃돈다.
관광객이 증가했음에도 면세점 별로 희비가 엇갈린 이유는 명품 브랜드 입점 여부 때문이다. 면세점의 꽃이라 불리는 샤넬·에르메스·루이비통을 포함한 해외 브랜드 매출 비중은 전체 60%에 달한다. 특히 한국에 쇼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싼커들은 신규면세점보다 다양한 브랜드가 들어서있는 기존면세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면세점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명품’ 쇼핑이기 때문에 브랜드 유치가 사업 성패를 가를 만큼 중요하다”며 “하지만 2015~2016년에 오픈 한 서울 시내 신규면세점들의 명품 입점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과도한 송객수수료도 한몫하고 있다. 송객수수료는 면세점들이 관광객을 데려온 여행사 및 가이드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인센티브’다. 공식 기준이 없다 보니 경험이 부족한 신규면세점이 더 많이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 신규면세점들이 여행사에 지급하는 송객수수료율은 기존 면세점(17.6~25.7%)보다 훨씬 높은 26.1~31.0% 수준이다. 이는 신규면세점들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가이드가 데려오는 단체관광객에게 매출을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춘절때 서울을 방문한 싼커들. (사진=연합뉴스)
단체관광 줄어 여행사 ‘울상’
백화점과 호텔도 희비가 엇갈렸다.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춘절 기간 싼커를 겨냥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면서, 중국인 여행객 매출이 크게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은 1월 20일부터 29일까지 중국인 매출이 작년 춘제 기간(1월 31일~2월 9일)보다 무려 82.5% 증가했으며, 강남점 매출은 150% 급증했다. 현대백화점도 지난달 20~31일 중국인 매출이 27% 늘었으며, 무역센터점은 싼커 매출이 70.3% 급증했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은 중국인 매출이 16.5%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CNB에 “현대백화점 지점은 강남권에 있다 보니 원래 중국인 단체관광객보다 개별관광객의 발길이 많았다”며 “특히 고가의 수입의류나 명품관의 단독 한정 상품쇼핑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합리적인 여행을 선호하는 싼커의 특성은 호텔을 고를 때도 두드러졌다. 씀씀이가 크지만 숙박비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으며, 단체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동 호텔 대신 조용한 부띠끄 호텔을 선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명동 일대의 특급 호텔들은 울상이다. 롯데호텔서울과 롯데시티호텔명동, L7명동의 이번 춘절 중국인 예약 건수는 20% 감소했으며, 전체 고객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5% 줄었다. 명동에 위치한 세종호텔도 지난달 20~31일 중국인 투숙객이 19% 줄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개별여행객이 많이 머무는 강남권의 잠실 롯데호텔은 이번 춘절의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와 비슷했다. 반면 명동에 위치한 지점들은 서울 여행 패키지 코스인 경복궁, 인사동 등과 가까워 중국인 단체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드 영향으로 인해 매출감소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 되기 전인 지난해 10월 국경절에 한국을 방문한 유커들. (사진=연합뉴스)
또 중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관광) 여행사들은 회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이번 연휴 기간의 패키지여행객 수가 지난해보다 20~50%씩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자유여행(싼커)을 선호하면서 여행사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 여행사 관계자는 “유커 고객 수요가 작년 춘절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특히 건당 월급을 받는 소속 가이드에게 일감을 주지 못하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4년 세월호 사고에 이어 2015년 메르스, 이번에는 사드 배치 논란까지 장사가 될만하면 항상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봄 이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5월 노동절까지 타격을 받는다면 문 닫을 위기에 놓이는 여행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라고 전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