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들의 비정규직 현황을 의무 공시토록 하면서 건설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전망이 어두워 허리띠를 졸라매야할 상황에서 정규직 채용을 자발적으로 늘리라는 압박까지 받게 됐기 때문이다. 건설업 특성상 단기 근로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CNB=손강훈 기자)
대기업들 ‘비정규직 현황’ 의무공시
임시직 많은 대형건설사들 울상
노동계 “환영” vs 사측 “보완 필요”
정부가 ‘고용형태 공시제’를 개정해 대기업이 스스로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제도 개선 의지를 드러낸 것.
고용형태 공시제는 300인 이상 상시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가 근로형태를 공시토록 하는 제도다. 정규직과 기간제, 용역·파견·도급 등 간접고용 근로자의 규모를 각각 공시해야 한다.
공시제가 개정되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한 종업원 1000명 이상인 대기업은 왜 비정규직을 고용했는지 청소, 경비, 건축 등 주요 업무를 공시해야 한다.
정부는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면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행태에도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조치가 반가울리 없다. 특히 공사 현장에서 수시로 임시직을 채용해야 하는 건설업체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한 대기업 건설사 관계자는 CNB와의 통화에서 “건설업의 경우 프로젝트 별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하나의 공사와 계약하는 단기근로자를 쓰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무작정 계약직을 줄이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실제 CNB가 10대 건설사의 지난해 9월30일 기준 비정규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직원의 26.2%가 비정규직이었다.
건설사 별로 살펴보면 GS건설 13.5%, 삼성물산(건설부문) 17.6%, SK건설 18.2%를 기록했다. 대림산업 20.6%, 롯데건설 27.8%, 현대엔지니어링 27.9%를, 대우건설·포스코건설·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은 30%대였다.
더구나 시장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다.
규제 중심 부동산 정책,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 등 주택구매 욕구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해 분양시장 전망은 안개속이다. 건설사 최고경영자들이 신년사에서 ‘내실’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이번 공시제 개정이 건설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CNB에 “업종의 특징이 있는 만큼 기업 스스로 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쪽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번 공시제도 개선을 통해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을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노동계는 이번 제도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감춰져있던 비정규직 현황에 대한 정보 공개가 비정규직을 줄이는데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산업연맹 관계자는 CNB에 “이번 제도 개선이 건설사 스스로 비정규직 채용을 자제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또한 정확한 비정규직 현황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정규직 현황 정보 공개가 더욱 빛을 받을 수 있도록 비정규직 관련 법과 제도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보 공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