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계약 철회권이 시행되면서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탈사 등이 치열한 대출금리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대출은 받으면 끝’이라는 말이 옛말이 됐다. ‘대출계약 철회권’이 전 금융권에서 시행되면서 시중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 카드사, 캐피탈사 등 모근 금융업종이 치열한 대출금리 경쟁을 벌여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반면 ‘똑똑한 소비자’는 이자를 한 푼이라도 더 줄일 수 있게 됐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제 대출 장사로는 돈 벌기 힘들게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CNB=손강훈 기자)
대출계약 철회권…대출 반품 가능
싼이자로 유혹…보이스피싱 우려
금융권 “대출로 돈 벌던 시절 끝”
지난해 10월 28일 은행권을 시작으로 지난달 19일 제2금융권 및 대부업권까지 대출계약 철회권이 시행됐다.
대출계약 철회권은 대출 후 14일 이내에 불이익 없이 대출을 물릴 수 있는 제도다. 기존에는 대출 계약을 취소할 때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야 했지만 지금은 수수료 없이 물건처럼 반품이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대출기록마저 무효가 되기 때문에 신용등급 하락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단, 잦은 대출 남발을 막기 위해 반품 횟수는 연간 2회, 월 1회로 제한을 뒀다. 또 금융사가 역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 ‘4000만원 이하의 신용대출과 2억원 이하의 담보대출’에 한해 이 제도가 적용된다. 리스(시설대여), 단기가트대출(현금서비스),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리볼빙) 상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금융사 간 대출금리 경쟁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 갈아타기’가 사실상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은행의 경우 신한, KB국민, 우리, KEB하나, NH농협은행을 비롯한 가계대출을 다루는 모든 은행이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저축은행은 79곳, 카드사·캐피탈사를 포함한 여신전문금융사는 52곳, 20곳의 상위 대부업체와 상호금융에도 적용된다.
이는 최근 새로 형성되고 있는 ‘중금리 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중금리는 저축은행·대부업과 은행권으로 양분된 금리의 중간지대를 이른다. 양측의 중간 정도 금리인 10%안팎의 대출상품들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여기다 카드사들까지 중금리 시장에 가세한 상태다.
이렇게 되면 하루 다르게 금리가 다른 새로운 대출상품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늘 한 금융사와 대출계약 했다가도 다음날 더 낮은 금리의 상품이 나오면 즉시 갈아탈 수 있다. 이리되면 금융사들은 제 살 깎아먹기식 출혈경쟁을 벌여야한다.
자동차 대출시장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신차를 구매할 때 이용하는 ‘신차대출’의 경우 신한은행 ‘써니마이카’, KB국민은행 ‘KB모바일 매직카 대출’, 우리은행 ‘위비 모바일 오토론’, NH농협은행 ‘NH간편 오토론’ 등이 3~5%대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카드, 삼성카드, KB국민카드, 우리카드 역시 포인트 적립, 캐시백 등의 혜택을 내세워 3~5%대 금리를 적용한 자체 신차할부 대출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보다 금리가 높은 캐피털사(약 7%대)는 경쟁에서 도태될 우려가 있다. 대출비교사이트가 활성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 갈아타기’가 손쉽게 된 만큼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금융사는 버티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캐피털사는 장기할부(72개월), 유예할부(특정기간 동안 이자만 납부), 잔가보장형(중고차 가치 뺀 금액을 할부) 등 다양한 할부상품을 내세워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지는 의문인 상황이다.
▲대출계약 철회권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이 크지만, 보이스피싱 사기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 똑똑해졌지만…보이스피싱 주의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환영할만한 일이다. 좀 더 확실히 금리비교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대출 후에도 14일이나 생겼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 대출을 받았더라도 이후 금리 정보를 꼼꼼히 찾아 손해 없이 갈아타기를 할 수 있다.
대출금리는 이용자의 신용등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각 사마다 책정하는 기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금융사별 금리 정보는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코스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갈아타기 혜택에 너무 집착하다가 ‘보이스피싱’에 당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저금리 대출상품’으로 유혹하는 수법이 가장 대표적인 보이스피싱 사례이기 때문이다.
가령, ‘대출계약 철회권’이 시행되기 전에는 “싼 대출상품을 소개하겠다”는 전화를 받더라도 상환수수료가 무서워 대출계약을 철회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대출갈아타기가 수수료 없이 가능해진 현재는 ‘싼 대출상품 소개’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이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유혹에 말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현재 대부분 금융사들이 저금리대출을 내세워 대면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 갈아타기를 종용하는 전화는 ‘100% 보이스피싱’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CNB가 은행, 카드, 저축은행 등의 금융사에 확인해본 결과 홈페이지, 사전설명, 대출약관 등을 통해 대출상품 안내가 이뤄질 뿐, 맨투맨식 대출영업은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김범수 팀장은 CNB와 통화에서 “개인정보 활용동의를 하지 않은 금융사에서 보다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탈 것을 제안하는 전화가 온다면 보이스피싱일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