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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서울의 깊은 밤…잠 못 이루는 은행원들

1개구 당 4개씩 사라진 은행점포, 수익 늘었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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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1.13 10:49:44

▲6대 시중은행의 수장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도진 기업은행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은행장,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사진=각 사, 연합뉴스)

“회사와 후배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퇴직을 결심했다. 조그만 문화재단 사무국장 자리에 응시했는데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모 시중은행 임원 윤모씨, 53세) 

금융권에 감원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최근 2800여명을 감축한 것을 시작으로 새해 벽두부터 직장을 떠나는 금융맨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점포 수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사람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핀테크(금융+IT) 혁명’은 인터넷전문은행 개점 등과 맞물려 올해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100세 시대 돌파구는 없는 걸까? (CNB=도기천 기자)

시중은행 당기순익 5년 만에 최고
체력 튼튼해졌지만 희망퇴직 급증
비대면 90%넘어 사람 역할 사라져 
기계에 밀린 행원 자존심 땅속으로

25년째 같은 은행에 몸담고 있는 정모(49) 씨는 “예전처럼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지만, 달라진 세태에 밀려 스스로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스마트폰·인터넷뱅킹으로 인해 대면거래가 크게 줄면서 ‘월급받기 미안해진’ 이들이 제2의 인생을 찾아 직장 문을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은 지난달 19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2800여명의 직원이 퇴직을 신청했다. 국민은행 전체 직원 수가 2만500명인데 14%에 해당하는 인원이 짐을 싼 것. 

농협은행도 작년 말 40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으며 SC제일은행도 연말에 66명이 나갔다. KEB하나은행도 지난달 742명이 회사를 떠났다. 대략 지난해 은행권에서 6천여명이 사직서를 썼다.    

떠나는 이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젊어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임금피크제에 걸려 퇴직하는 관리자급의 수는 과거와 별 차이가 없지만, 30~40대 여성 직원과 과·차장급이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따른 업무 부담이 커진데다, 준정년특별퇴직제도를 도입해 수십개월치 급여를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한 영향이 컸다. 

저금리 추세가 계속되면서 역마진 위기에 처한 보험업계도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신한생명은 최근 20년 이상 근무한 48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해 2월과 10월에 희망퇴직을 단행해 160여명이 직장을 떠났으며,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등도 최근 퇴직 신청을 받았다. 

올해도 감원한파는 계속될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오는 16일까지 부지점장급 이상 직원 30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데 금융권에서는 이를 올해 구조조정의 첫 신호탄으로 여기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은행 점포가 점차 사라지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사진은 한국씨티은행이 차세대 금융센터로 리뉴얼한 씨티골드 반포지점의 스마트존 내부 모습. 스마트존에서는 터치스크린, 디지털서명 등으로 다양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사람(은행원)의 역할은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상최대 수익에도 구조조정 가속 

최근 은행권 구조조정의 원인이 수익성 측면보다 환경변화에 방점이 찍혔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지난해 3분기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조2000억원으로 2015년 3분기 1조3000억원보다 무려 1조9000억원이나 증가했다. 4년 6개월 만에 최대 수준이다. 3분기 누적 순이익 규모는 4조4000억원으로 2015년 전체 순익인 3조4000억원을 이미 초과 달성했다. 

추세상으로도 뚜렷한 상승곡선이다. 총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57%로 전년 동기(0.24%)대비 0.33%포인트 늘었다. 경영효율성 지표인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은 7.71%로 전년 동기(3.14%) 보다 2배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국내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54%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은행수익의 핵심지표인 순이자마진은 2005년 2.81% 2008년 2.30%, 2010년 2.32%, 2012년 2.10%, 2014년 1.79%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순이자마진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예금과 대출 간의 금리차이에서 발생하는 예대마진이 크게 줄었기 때문. 2008년경부터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계속 내려가 현재는 사상최저인 연1.25%다. 이에 따른 대출금리도 낮아져 수익성이 악화됐다.   

▲행들의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이 직전연도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달라진 금융환경으로 인해 인력감축이 계속되고 있다. (자료=금융감독원 제공)


이런 상황에서 ‘어닝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이 나온 데는 전적으로 비이자부문의 사업성이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작년 3분기 비이자이익은 전년 동기 8000억원에 비해 2배나 증가한 1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비대면거래에 따른 수수료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2~15년 인터넷 및 모바일 이용 건수는 연평균 26.7% 증가하는 등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비대면거래가 전체 거래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90%를 넘어섰다. 

이처럼 비대면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문 닫는 점포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는 2015년 말 5096곳에서 작년 말 4919곳으로 1년 만에 177곳(3.47%)이 줄었다. 2015년에는 2014년 말에 견줘 58곳이 줄었는데, 이때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177곳 가운데 95곳(53.6%)이 서울지역이었다. 서울시 한 개 구에서 평균 3.8곳씩 사라진 셈. 구별로는 강남구가 가장 많은 12곳이 줄었다. 모바일 사용 빈도수가 높은 젊은층이 많이 사는데다가 임대료가 높고, 점포 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맞지 않았단 얘기다. 

▲은행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점포수는 줄고 있다. 5대 은행 점포수 현황. (각 시중은행 제공)


디지털수수료, 이자수익 앞질러

은행들이 실적개선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데는 이런 달라진 금융환경이 배경이 되고 있다. 각종 뱅킹수수료,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료 등이 이자수익을 앞지르면서 사람이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된 것. 

더욱이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검토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추세로 볼때 고금리 시대는 끝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똑똑한 대출비교사이트의 등장에다 별도 수수료 없이 대출을 물건처럼 반품(14일 이내) 할 수 있는 ‘대출계약 철회권’까지 시행되면서 시중은행들은 과거처럼 ‘대출 장사’에 의존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디지털 금융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윤종규 KB금융 회장), “비금융과의 제휴를 통해 고객의 디지털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핀테크의 무한 경쟁은 이제 본격화했다”(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등 금융권 수장들의 올해 신년사에도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이 최근 출범하면서 영업점 중심의 업무가 모바일 등 디지털 분야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점은 시중은행들을 더 조급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컴퓨터, 모바일 등 전자 장치를 통해 예적금·대출 등 금융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정부 시책에 따라 KT, 카카오 등 ICT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올해도 대부분 시중은행들이 인력감축에 들어갔거나 실시를 검토하고 있어, 감원한파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사진=이성호 기자)


컴퓨터가 ‘사람 일’ 대신해  

이런 상황으로 인해 시스템 개혁은 갈수록 속도를 내고 있다.   

실례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에 이어 농협은행과 KEB하나은행도 올해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을 도입한다. 허브는 바퀴, 스포크는 바퀴살이란 의미로 허브 센터와 스포크 영업점으로 구성된 클러스터를 구축해 영업점 간 시너지를 창출하는 협업모델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점포수를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사들이 최후 수단인 인력 감축을 선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CNB에 “이자 마진 감소분을 인건비 감축으로 해소하려고 하고 있다”며 “감원은 시장논리를 떠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구조조정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되고 있다. 떠나는 자와 남은 자 모두 ‘1등 신랑(신부)감 은행원’의 긍지는 땅속 깊이 묻은 지 오래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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