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강세를 기록하자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업체의 수출 환차익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금리인상 후 달러 가치가 치솟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수출기업에게 달러 인상은 환차익을 높일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원재료를 수입하는 기업의 경우 ‘재료비 상승’이란 악재가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산업 환경이 달라진 만큼 이런 과거 공식이 적용되기 힘들다는 견해도 나온다. 환율 상승은 우리경제에 독일까 약일까. (CNB=손강훈 기자)
환율 급등에 기업별 ‘희비쌍곡선’
물가상승 불구 수출 환차익 기대
달라진 글로벌 환경 ‘시계 제로’
지난 15일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0.50~0.75%로 결정하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1200원을 넘어서는 등 오름세가 지속 중이다.
이를 두고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수출 중심인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등의 업종은 환차익을 노릴 수 있어 표정이 밝다. 반면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는 항공, 정유, 해운, 택배 등 분야는 ‘비용 증가’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일 때 수출하던 국내 기업은 1달러어치의 물건을 팔면 1100원을 받지만, 환율이 달러당 1200원으로 올라가면 1달러를 팔면 1200원을 받게 돼 수익성이 개선된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환율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던 것도 은근히 달러 강세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통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이번 달러 강세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8.2%(11월 기준)에 머물고 있는 점유율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선된 수익(환차익)의 일부를 가격경쟁력 개선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일 때 1만달러짜리 차를 팔면 우리돈 1100만원이 매출로 잡히지만, 환율이 1300원이 되면 1300만원으로 매출이 올라가는 셈이 된다. 이렇게 늘어난 수익의 일부를 차 가격을 내리는데 사용하게 되면 경쟁력이 높아진다.
그동안 우리 경제 성장을 주도하던 수출은 유가 급락, 세계 경기 침체 등으로 지난 7월까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세를 보였다. 8월 20개월 만에 반등에 성공했지만 9월과 10월 감소세를 다시 감소세를 보였고 11월에는 2.7% 늘어나는 등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미국 수출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수출 분야인 철강업종 역시 이런 맥락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자국 철강산업 보호기조로 인해 올해 최대 61%의 관세폭탄을 맞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사도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SK네트웍스, 삼성전자), 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도 달러가 강세일수록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반기는 분위기다.
반면 유류비, 해외 체류비, 항공기 리스비용 등을 달러로 지급하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업계와 역시 운임비용 등 지출이 달러로 이뤄지는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해운사, 차량배송으로 인해 기름값 영향을 많이 받는 한진택배 CJ대한통운 현대로지스틱스 등 물류업계,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GS칼텍스 SK이노베이션 등 정유업계는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발표 후 연일 상승세를 기록 중인 원/달러환율이 1200원을 돌파했다. 26일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 (사진=연합뉴스)
달라진 글로벌 환경…예단은 금물
하지만 달러 상승 효과를 예단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나온다. 글로벌 산업·경제 환경이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과거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
가령, 자동차나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의 경우 요즘은 현지 판매량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고 그 나라에서 직접 만들어지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더라도 영향이 제한적이다.
또한 달러 가치 상승은 필연적으로 유로화, 엔화 등 다른 나라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린다. 가령, 엔화 약세는 일본 제품도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 우리나라만 덕을 보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유럽이나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의 화폐 약세가 우리나라보다 더 클 경우, 이들 나라와의 무역에서 가격 경쟁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달러강세→물가상승→금리인상→대출금리 상승→가계부채 문제→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한국 경제의 침체가 길어질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번 달러 강세가 당장은 국내 경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수출과 내수 모두 침체의 늪에 빠져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최근의 달러 강세가 우리 경제에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현재 경기 상황이 워낙 나쁜 터라 수출기업의 수익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마주옥 한화증권 연구원은 “환율 상승이 국내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지만, 수출기업들이 거두는 효과를 고려하면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요인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