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사업비 3조원에 이르는 매머드급 주상복합 단지인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개발사업과 관련된 검찰의 특혜·로비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정관계가 긴장하고 있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이어 부산 최대 친박 조직의 전 간부가 구속되면서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씨의 개입설까지 나돌고 있다. 다른 건설사들이 포기한 이 사업을 왜 포스코건설은 책임시공까지 약속하며 맡게 됐을까. (CNB=도기천 기자)
▲구속 기소된 황제계 계원들. (왼쪽부터) 최순실씨, 엘시티 시행사 실질 소유주 이영복 회장, 이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사진=연합뉴스)
朴대통령, 친박계 겨냥 수사지시 의문
로비 귀재 이영복, 각종규제 한방에 해결
포스코건설 책임시공 맡으며 사업 활기
입다문 이 회장…꼬리자르기로 끝날수도
엘시티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최근 한 달 새 이 사업과 연루된 핵심인물들을 줄줄이 사법처리했다.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온 이영복(66) 청안건설 회장이 회삿돈 약 5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달 검찰에 구속기소된 것을 시작으로, 이 회장으로부터 법인카드와 상품권 등을 제공받고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현기환(57)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9일 구속기소 됐다.
지난주에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최측근이자 부산 최대 친박 조직인 포럼부산비전의 전 사무국장 김모 씨(64)가 이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
검찰은 또 배덕광 의원(해운대을) 등 부산지역 새누리당 국회의원 2명에 대해서도 계좌 추적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여권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시간대별로 보면 시행사(이영복)→청와대(현기환)→부산시(서병수)→친박계(새누리당)로 혐의가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엘시티 비리 의혹을 두고 “가능한 수사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김현웅 법무부장관에게 지시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돼 대국민사과(2차 대국민담화)를 한 직후였다. 대통령 본인이 검찰 수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적반하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물타기 성격의 정치적 꼼수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점에서 부산 지역 비박계 의원들이 주목 받았다. 평소 ‘배신의 정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이었기에, 여권 내에서 반기를 든 비박계를 타깃으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비박계 수장격인 이 지역 5선 의원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타깃 대상 ‘0순위’에 회자됐다.
부산의 권력 지도를 보면 비박과 친박이 거의 반반씩 지역을 가르고 있다. 친박 의원은 4선의 유기준 의원(부산 서동구)을 비롯해 배덕광(부산 해운대을), 윤상직(부산 기장), 이헌승 의원(부산진을) 등 4명이다.
비박계는 김무성 의원(부산 영도)을 비롯해 이진복(부산 동래), 김세연(부산 금정), 하태경(부산 해운대갑), 장제원(부산 사상) 등 5명이다. 이들은 탄핵 정국에서 친박계와 맞서다가 최근 신당(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한 상태다. 따라서 김무성 의원 등이 엘시티와 관련해 검찰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었다.
▲부산 해운대 앞 엘시티 공사현장 모습. (사진=부산광역시 제공)
마천루 부활 과정 의문투성이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니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엘시티와 관련돼 비리 혐의를 받게 된 인물들은 비박계가 아닌 친박계였다.
특히 부산 최대 친박 외곽조직인 포럼부산비전의 실체가 드러났다. 2006년 11월 만들어진 포럼부산비전에는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시의원 등이 대거 가입해 있으며 회원만 1000여명에 이른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창립을 주도했으며, 2007년 ‘박근혜 대 이명박’ 경선에서 박 대통령을 전폭 지원했다. 박 대통령은 매년 11월 창립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왔다.
여기다 이 회장과 최순실, 현 전 수석이 같은 황제계 계원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엘시티 사업에 최씨와 청와대가 관여했을 가능성까지 대두된 상황이다.
검찰이 엘시티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사업이 오랜 세월 표류하다가 몇 년전 이 회장이 시행을 맡으면서 순조롭게 풀렸기 때문이다.
엘시티 공사는 해운대해수욕장 앞 6만5934㎡부지에 101층 고급아파트와 7성급 호텔 등을 짓는 총사업비 2조7천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다. 애초 대우건설과 중국 굴지의 건설사가 시공을 맡았지만, 워낙 덩치가 큰데다 각종 규제 때문에 사업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 회장이 나서자 해운대 관광특구 고도제한이 풀렸고, 주거사업 승인이 났다. 교통영향평가도 한 번에 통과했다. 법무부가 엘시티를 부동산 투자 이민구역으로 지정해줬고, 금융사들은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댔다. 정관계 인사들의 도움 없이는 이런 일이 불가능 하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포스코건설 “수익성만 따졌다”
이렇다보니 시공사인 포스코건설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됐다. 좌초될 위기에 처했던 이 사업이 다시 재개될 수 있었던 데는 포스코건설이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포스코건설이 지난해 책임준공보증을 전제로 시공을 맡기로 하면서 공사에 탄력이 붙었고, 이 덕분에 대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성사됐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인 사유를 제외하고는 준공일에 맞춰 공사를 완료하겠다는 의미다.
은행 입장에서는 사실상 특수목적법인(SPC)에 불과한 시행사를 믿고 거액을 빌려주기 힘들다. 하지만 포스코건설이 나서면서 부산은행 8500억원, 경남은행 2500억원 등 모두 1조7800억원의 금융권 자금지원이 이뤄졌다.
이는 사업이 실패하면 책임준공을 약속한 포스코건설이 빚을 일부 떠안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우건설 등이 사업을 포기했던 이유도 이런 리스크가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현 전 수석은 포스코건설이 엘시티 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하도록 알선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PF 대출 과정에 외압이 없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산지방검찰청의 엘시티(LCT) 개발사업과 관련된 특혜·로비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여권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물통 이 회장, 입 열까
하지만 포스코건설 측은 수익성을 보고 판단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포스코건설은 최근 해명자료를 통해 “엘시티는 시공사 입장에서 보면 공사비 확보가 용이한, 사업성이 매우 높은 사업”이라며 “책임준공보증은 시공사가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보증”이라고 주장했다. 또 “현재 아파트 분양률이 90%에 육박해 공사비 전액을 지급받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업성만 보고 참여했을 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검찰의 판단은 다르다. 포스코건설이 이명박 정권 시절 각종 권력형 이권사업에 연루돼 사법처리 된 전력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검은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사건 전모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회장은 핵심 인물을 로비할 때 직접 차를 몰고, 차량으로 이동할 때만 중요한 전화통화를 하는 등 치밀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부산에서는 “이영복은 절대 불지 않기 때문에 그의 돈은 먹어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입이 무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이 회장의 자금 유용 사실은 밝혔지만 용처를 입증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편 박 대통령이 엘시티 수사를 직접 언급한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촛불 민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물타기라는 얘기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본인이 깨끗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설도 나온다. 최순실 등 측근 챙기기가 도마에 오르자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친박 연루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