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5일 식목일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공무원들이 청와대 경내 녹지원을 걷고 있다. 왼쪽에서 박 대통령을 뒤따르고 있는 인물이 박흥렬 대통령경호실장이다. 만약 특검이 박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에 나선다면 대통령경호실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로 수사에 탄력을 받게 된 특검이 조만간 박 대통령의 신병 확보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특검을 지휘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미 ‘대면조사’를 천명한 만큼 박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경우, 강제구인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촛불 민심도 ‘퇴진’에서 ‘구속’으로 바뀌고 있다. 사상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 가능성을 CNB가 따져봤다. (CNB=도기천 기자)
촛불 민심 ‘퇴진’에서 ‘체포’로
박영수 특검 “반드시 대면조사”
朴대통령 강제구인 가능하지만
대통령경호실과 유혈충돌 가능성
형사소송법상 체포는 피의자의 신체를 구속하는 강제처분을 이른다. 검사가 피의자를 체포한 때는 10일 이내에 공소를 제기하지 못하면 석방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최장 10일간 구속 수사가 가능하단 얘기다.
특검은 박 대통령을 사실상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한 상태다. 현재 박 대통령에게 적용된 범죄혐의는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강요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 기밀문서 등 180건의 청와대 내부 문건을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최순실 씨에게 유출했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10개 그룹 총수들과 독대한 자리에서 최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해 줄 것을 요구했다.
특검은 이미 확정된 혐의 외에도 박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추가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또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방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영수 특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 말을 하다 보면 그 말에서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고 단서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며 대면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수의를 입고 쇠사슬에 묶인 박근혜 대통령 모형.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촛불 민심이 ‘퇴진’에서 ‘체포’로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대통령 체포 카드 특검 재량”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이 헌법상 불소추특권을 갖고 있지만 수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기소할 수 없지만 조사는 이와 별개라는 것. 일각에서는 검찰의 체포영장 청구나 법원의 영장 발부도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 특검팀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CNB에 “현직 대통령의 대면조사는 유례가 없는 일인 만큼 임의수사, 강제수사 등 방식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며 “이는 달리 말하면 전적으로 특검의 의지에 달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을 통해 “지금처럼 수사를 거부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체포나 구속 같은 강제 수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오는 20일 ‘현직 대통령 강제수사 허용범위’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 변호사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특검의 대통령 대면수사에 법리적 명분을 실어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귀뜸했다.
촛불 민심이 ‘퇴진’에서 ‘체포’로 강도가 높아진 점도 특검 수사에 힘을 보태고 있다. 탄핵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지난 10일 열린 촛불집회에 전국적으로 100만 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했는데 ‘하야’ ‘퇴진’이 주를 이뤘던 이전 집회와 달리 ‘체포’ ‘구속’ ‘처벌’이라는 단어가 전면에 등장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최근 박 대통령 강제수사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강제수사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74.5%로, ‘반대한다’는 응답(17.9%)보다 4배 이상 높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특검 진행과 맞물려 있다는 점도 수사를 서두르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판결)해야 박 대통령이 해임되는데, 재판과 증거조사 등에 적어도 3~4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특검이 탄핵안에 명시된 박 대통령의 여러 범죄 혐의를 헌재보다 앞서 입증한다면 판결이 빨라질 수 있다. 빠른 판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수사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만약 박 대통령이 대면조사를 거부한다면 특검이 강제구인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해놓고 수차례 대면조사 요구에 응하지 않은 전력이 있어 이런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역사상 대통령경호실과 다른 기관의 공무원들이 유혈 충돌한 일은 1979년 10.26사태가 유일하다. 1979년 12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뒤 공개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함께 행동했던 직속부하 박흥주와 박선호에게 뭔가 말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37년 만에 역사 되풀이되나
만약 특검의 체포작전이 시행된다면 박 대통령은 순순히 응할까.
박 대통령은 직무는 정지된 상태지만 관저 생활, 관용차·전용기 이용, 경호 등 대통령에 관한 예우는 변함없이 적용받고 있다. 헌재에서 탄핵 심판을 결론짓기 전까지는 대통령 신분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검이 강제구인에 나설 경우, 대통령경호실이 이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호실장은 경호업무의 수행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경호구역을 지정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다.
박흥렬 경호실장은 “대통령 경호로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국회의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증인출석을 거부할 정도로 박 대통령에게 충직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박 실장에게 지시해 특검의 출입을 막는다면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총격전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역사상 대통령경호실이 다른 기관의 공무원들과 유혈 충돌한 일은 딱 한 번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경호원들을 저격한 1979년 10.26사태다.
당시 김재규는 박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각각 2발씩을 쏘아 절명시켰다. 동시에 김재규의 직속부하 박흥주·박선호 등은 청와대 경호원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경호원들과 특검이 충돌하게 된다면 37년 만에 역사가 되풀이 되는 셈이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차량 행렬이 지난 11일 광화문 광장을 지나고 있다.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유혈충돌 상상으로 끝나야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상상으로 끝나야 한다. 헌재가 이미 밝혀진 혐의만으로 신속히 판결(탄핵 인용)을 내려준다면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해임되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판결과 동시에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되므로 불소추특권 또한 적용받지 않는다. 범죄 사실이 중하기 때문에 곧바로 구속기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능성은 낮지만 박 대통령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도 있다. 헌재 판결과 상관없이 국민여론을 받아들여 자진사퇴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는 국민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뒤집을 경우, 박 대통령은 다시 업무에 복귀하게 되고 특검 수사도 흐지부지될 수 있겠지만 이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지금까지 입증된 혐의만으로도 충분히 대통령을 사법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몇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경우가 됐건 박 대통령이 인신구속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