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동향 연차보고서’. 관세청은 문제부가 매년 발행하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면세점 정책을 결정한다.
검찰이 면세점사업자 특혜 의혹과 관련해 유통대기업들을 수사 중인 가운데, 관세청이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급증한 시기에 롯데와 SK의 면세점 특허권을 회수한 것으로 CNB 취재결과 확인됐다. 이들이 낙마하자 정부는 다시 면세점사업자 모집에 나서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CNB=도기천 기자)
‘유커 급증’ 알고도 롯데·SK 특허취소
5개월 뒤 특허연장 등 파격안 발표
‘같은 보고서’로 상반된 두 가지 결정
관세청의 ‘보세판매장(면세점) 운영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0만명 이상 증가한 광역(특별)시에 한해 관세청장은 신규 면세점 특허신청 공고를 낼 수 있다.
관광객 통계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발행하는 ‘관광동향 연차보고서’ 기준이다. 보고서에는 지자체별 관광사업 현황, 외국인관광객 방문 통계, 관광수입 현황, 문제점과 정책대안 등 500~6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자료가 담겨있다.
문체부는 주로 하반기에 전년도 현황을 분석해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올해는 9월초에 ‘2015년 관광동향 연차보고서’가 나왔다.
그런데 이 보고서 통계로 보면, 가장 외국관광객이 급증한 시기에 서울 시내 두 곳의 면세점이 허가가 취소됐다.
지난해 11월 관세청은 연말에 특허기간이 끝나는 롯데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의 연장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이 두 곳과 롯데의 소공점이 특허만료를 앞두고 있었는데, 소공점만 수명이 연장됐다. 월드타워점과 워커힐의 후임 사업자로는 신세계(명동점)와 두산(두타면세점)이 낙점됐다. 현대백화점, 이랜드, 유진기업은 입찰에 참여했다가 탈락했다.
▲지난해 11월 관세청은 연말에 특허기간이 끝나는 롯데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의 연장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급증한 시기에 롯데와 SK의 면세점 특허권을 회수해 의문이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왼쪽)와 서울 중구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진=연합뉴스)
심사 과정 ‘미스터리’
후속사업자를 발표할 당시의 가장 최근 보고서는 ‘2014년 관광동향 연차보고서(2015년 10월 발행)’다.
CNB가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관광객은 1420만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6.6%나 증가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전체 외국인관광객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매년 20%이상씩 증가하다 2014년에는 전년에 비해 무려 43%나 늘었다.
서울시 통계도 같은 흐름이다. CNB가 시로부터 입수한 ‘서울방문 외국인 관광객 현황’에 따르면 서울을 찾은 외국인은 2013년 985만명에서 2014년에는 1142만명으로 15.9% 증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중 약 80% 가량이 서울을 경유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인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23년간 영업해온 워커힐과 면세업계 독보적인 1위였던 롯데를 탈락시킨 것이다.
업계에서는 당시 상황을 이변으로 받아들였다. 월드타워점은 직전년도에 6000억원, 워커힐은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심사과정과 기준은 물론 심사위원까지 공개하지 않아 의문은 더 커졌다. 관리역량(300점)과 경영능력(25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환경요소(150점) 등 5개 영역으로 구성된 1000점짜리 ‘평가기준표’만이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경우 신동빈·신동주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말만 돌았다. 롯데는 그렇다 치더라도 23년간 한 자리에서 영업해 온 워커힐면세점은 탈락 이유를 짐작조차하기 힘들었다.
더 이상한 점은 불과 몇 달 뒤 360도 달라진 정부의 태도다. 지난 3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신규 면세점 확대와 특허기간 연장이 결정된다. 고용안정과 면세업계 경쟁력 강화가 이유였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관세청은 최대 5곳의 신규 면세점을 추가하고, 면세점 특허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며, 특허 기간이 끝나도 일정 심사 기준을 충족하면 자동 갱신을 허용하겠다는 파격안을 발표한다. 월드타워점과 워커힐이 탈락하지 불과 5개월 만이다.
당시 발표 때 근거가 된 통계자료 또한 ‘2014년 연차보고서’다. 관세청 관계자는 CNB에 “(발표 당시인 4월은) ‘2015년 보고서’가 아직 발행되기 전이라 ‘2014년 보고서’를 기준으로 면세점 신규 확장을 결정했다”며 “전년도(2013년)에 비해 서울을 찾은 외국인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앞뒤 퍼즐을 맞춰보면, 동일한 한 개의 보고서가 면세점 ‘특허 취소’와 ‘특허 연장’이라는 상반된 두 경우에 각각 적용된 셈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24일 오후 면세점 사업 관련 의혹과 관련해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를 압수수색 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파면 팔수록 의문… 朴대통령 개입설
신규면세점 확대를 서둘러 발표한 점도 의문이다. 지난해는 메르스로 외국인관광객이 크게 감소했다. 관세청 발표 당시인 지난 4월은 문체부가 감소분이 적용된 ‘2015년 보고서’의 초안을 잡고 있던 시기였다.
만일 2015년 보고서가 나온 뒤였다면 면세점 확대를 공표할 수 없게 된다. 한국방문객이 전년(2014년)에 비해 6.8%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발표를 서두른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수개월만 기다리면 전년도 관광객 숫자가 나오는데 그 전에 신규면세점을 모집했다”고 지적했다.
면세점 심사과정이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됐음에도 발표 직전에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치솟은 점도 물음표로 남아 있다.
지난해 7월 신규사업자 발표는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오후 5시에 이뤄졌지만 사업자로 선정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호텔신라(신라면세점)의 당일 주가가 급등했다. 월드타워점과 워커힐의 후속 사업자로 신세계와 두산이 낙점될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이런 과정에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기획재정부 최상목 1차관실과 관세국제조세정책관실·정책조정국장실, 대전의 관세청 수출입물류과 사무실, 심지어 김낙회 전 관세청장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 수사의 향배에 따라 면세점 사업에 진출한 유통대기업 전체로 사안이 번질 수도 있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와 워커힐의 탈락 심사와 이후 있은 추가 선정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며 “외국인방문객이 크게 늘었다면 기존사업자를 연장해주고 새사업자를 추가로 선정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 유통대기업의 임원은 “15년 만에 갑자기 신규면세점을 허가하겠다고 발표한 지난해 7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인해 유통업계 전반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면세 시장이 포화 상태라 수익이 예전만 못한 상태에서 최순실 의혹까지 더해져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