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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 동행취재기] “박근혜 하야” 100만 촛불 앞에 선 대한민국

분노 넘어 희망…‘시민혁명’ 대장정 닻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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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11.14 09:03:21

▲12일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한 초등학생이 아빠의 무등을 타고 “거짓말한 대통령 물러나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촛불집회에 무려 100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참가해 서울 도심을 메웠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였다. CNB는 집회가 시작된 12일 오후부터 13일 새벽까지 13시간 동안 시민들과 함께하면서 촛불 민심을 집중 취재했다. 분노가 거대한 물결을 이뤘지만 희망을 말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 세대와 성별, 지역을 초월한 ‘조용한 시민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다. (CNB=도기천 기자)

‘민주주의 광장’ 된 광화문
닻올린 시민혁명 ‘현재진행형’ 
이제는 대통령이 답할 차례

▲광화문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서대문역 사거리부터 도로가 텅 비어있다. 경찰이 평화행진을 보장하기 위해 차량 출입을 막았다. (사진=도기천 기자)

CNB는 촛불이 밝혀지기 몇 시간 전인 12일 오후 2시경 서울 신촌에서 도보로 출발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약 5km를 걸으며 시민들의 표정을 읽었다.  

신촌 현대백화점 뒷자락에서 이화여대 정문으로 향하는 거리에서는 몇몇 대학생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거나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길바닥에 최씨와 박 대통령의 풍자포스터를 대량으로 붙여놓고 밟고 지나가란다. 청춘들은 주저 없이 그 위를 걸었다. 어떤 이는 ‘스카이 콩콩’하듯 제자리 뛰기를 하고 간다. ‘청춘 지지율 0% 대통령’이 실감난다. 분노는 크고 깊어 보였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리기 2시간 전인 전인 12일 오후 2시경 서울 신촌 거리에서 행인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풍자 포스터를 밟으며 지나가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이대 앞 지하철역은 시청으로, 광화문으로 향하는 청년들로 북적였다. 5호선 서대문역에 이르자 벌써부터 사람들이 물결을 이뤘다. 광화문까지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지만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하차해 광화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청 방향으로 가는 차도가 통제됐다. 평화적인 행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교통경찰관 몇명 외에 경찰 병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때 경찰은 도로변에 거대한 차벽을 세워 집회참가자들이 도로로 내려오는 것을 막았다. 지하철이 시청 인근에서는 서지 않고 통과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교육부, 법무부, 행자부, 농축산부, 고용노동부 등 5개 장관 공동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불법집회에 엄정 대처 하겠다’며 국민을 겁박했다. 서울역, 시청, 대학로 등에서 단체별 사전대회를 연 참가자들이 수천~수만명 단위로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해 오자 경찰은 저지선을 치고 낮부터 물대포를 발사했다. 그날 농민 백남기씨는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고, 317일간 투병하다 숨졌다. 지금 경찰의 모습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12일 오후 3시30분경 서울시청 일대 모습. 이미 수십만명의 인파로 덮였다. (사진=도기천 기자)

오후 3시 30분경 세종로 사거리에 도착했다. 예정된 집회 시작은 4시부터였지만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넘쳤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가운데에 두고 동쪽으로는 종로·청계천, 남쪽으로는 시청·을지로, 북쪽으로는 광화문 앞까지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한 20대 청년은 “대통령의 퇴진이 전부가 아니다. ‘헬조선’을 ‘살만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자는 기대를 갖고 나왔다”고 말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주부 최모 씨는 “초등학생 다니는 막내 애가 ‘박근혜·최순실 사기 쳐서 우리나라가 이상하게 됐다’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보여주려고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농성장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위). 누군가 설치해놓은 게시판(아래). (사진=도기천 기자)

이날 집회의 정식 명칭은 ‘11.12 민중총궐기 대회’다. 해마다 11월이면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가 주축이 돼 집회를 열어왔다. 노동자·농민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다보니 일반시민들의 참석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이 청와대로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여기에다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위안부 문제 한일합의, 노동법 개악, 정부 주도 국정교과서, 쌀값 폭락, 금수저·흙수저론, 대통령의 사이비종교 연루설, 청년실업 등으로 각계각층의 민심이 폭발했다.  

역사상 최대 인파인 100만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26만명)이 모였다. 서울 말고도 부산 3만5000명, 광주 1만명, 제주 5000명, 대구 4000명 등 전국 10여개 지역에서 6만명이 집결했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세종로사거리(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 장군이 이날 집회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사진=도기천 기자)

특히 이날 행사의 참가단체수가 1500여개에 이른다. 주민모임부터 전국 규모의 노동자 단체까지 총망라됐고 진보-보수를 구분 짓기 무의미할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뭉쳤다. 

단체들마다 톡톡 튀는 풍자를 선보였다. 문화예술인들은 박근혜-최순실을 풍자한 즉석 공연과 판소리 등을 선사했다. 

전국 50여개 대학 총학생회와 각종 청년단체 회원 등 4000여명이 참여한 ‘2016 청년총궐기’에선 대중가요를 개사해 만든 “박근혜 하야, 좋아 좋아 좋아”라는 가사가 담긴 ‘하야송’이 울려 퍼졌다.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고 있다. 최순실씨를 빼닮은 한 예술인(오른쪽)은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도기천 기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등 정당들도 총출동 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개별적으로 몇몇 의원이 참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했던 전대협 세대(86세대)도 대거 집회에 나왔다. 이들은 트럭을 이용해 자유발언대를 설치했는데 초등학생부터 노년층까지 여러 사람들이 연단에 올라 시국을 성토했다. 한 초등학생은 “나쁜 짓한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쳐 어른들의 박수를 받았다. 

▲청소년들이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우리를 잊지 말라. 진실을 밝혀 달라”고 외쳤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잊지 않을께요”라며 호응했다. 각 단체들이 만든 형형색색의 풍선에는 하야·퇴진·구속 등의 구호가 적혔다.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이 ‘투쟁 경비’를 모금 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최씨의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와 올림머리를 하고 “우주의 기운 모아 퇴진” 등의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다니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박 대통령의 언어를 풍자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하야를 도와준다” 등의 포스터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 중에는 청소년들이 상당수 있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조직적으로 참가한 중고생이 4000여명이 이른다. 부모 손을 잡고 왔거나 개별적으로 참가한 이들까지 합치면 10대들만 수만 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한 일부 청소년들은 ‘박근혜 퇴진’, ‘청소년이 주인이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다녔다.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차비모금’에 나서기도 했다. 다음 주말 ‘상경 투쟁’을 위해 어른들의 도움을 요청한 것.   

해진 후에 열린 촛불문화제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신이 났다. 가족·친구·연인들의 손을 잡고 나온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가수 이승환과 정태춘, 방송인 김제동씨 등이 출연해 흥을 더했다. 이들은 “정치는 3류지만 국민은 1류”(김제동), “정치인들은 재지 말고 간보지 말고 국민들의 요청에 따라 달라”(이승환)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가수 조PD가 랩송 ‘풋 유어 캔들 하이어(Put your candle higher)’를 부를 때는 모두의 손에 쥔 촛불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출렁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우리를 잊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일부 지점에선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대치가 이어지기도 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인 경복궁역 인근 내자동 교차로에선 집회 참가자 수만 여명이 차벽으로 가로막은 경찰과 해질녘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대치상황을 이어갔다. 

▲가족과 함께 참가한 시민들. 초등학생들 손에 촛불이 들려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하지만 시민과 경찰 모두 선을 넘지 않았다. 경찰 차벽을 넘으려는 사람을 향해 시민들은 “내려와”를 외쳤고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 방패를 빼앗자 시민들이 다시 돌려줬다. 경찰도 진압보다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고, 충돌이 길어지자 병력을 차벽 뒤로 철수시키기도 했다. 경찰과 시민이 함께 “비폭력”을 외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일부 시민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 천막 옆에 텐트를 치고 ‘광화문 캠핑’을 하거나 토론하면서 밤을 새웠다. 몇몇 참가자들은 13일 아침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13일 새벽 3시경 광화문 광장 풍경. 전날 집회 참가자 중 일부가 밤을 새워 토론 하거나 노숙 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도올 김용옥 교수(한신대)는 이번 집회를 ‘새 역사를 쓰는 시민혁명’으로 규정했다.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왜곡, 남북의 대치, 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문화혁명, 역사혁명으로 승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촛불은 주말마다 타오를 예정이다. 시민들은 잠시 광장을 벗어났을 뿐 철수하지 않았다. 이는 대통령이 답해야 할 시간이 길지 않음을 의미한다. 도올의 말처럼 이미 혁명은 진행 중이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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