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포스코에 '스포츠단 창단' 압력을 행사했지만 포스코는 소신을 지켜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연합뉴스)
포스코가 청와대가 요구한 배드민턴단 창단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압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킨 것. 이같은 사실은 K스포츠재단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간의 회의록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청와대가 기업들을 상대로 강제모금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압력을 행사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CNB=손강훈 기자)
安, 포스코에 ‘스포츠단 창단’ 압력
“철강업 위기…여력 없다” 끝내 거부
경영원칙 지킨 모범사례로 평가받아
지난 2일 노컷뉴스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당시 경제수석)과 K스포츠재단 정현식 전 사무총장이 회동한 회의록을 공개했다.
이 회의록에는 정 전 사무총장과 안 전 수석이 포스코를 어떤 식으로 압박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2월 26일 정 전 사무총장은 “포스코 사장(황은연)과의 미팅에서 고압적인 태도와 체육은 관심 밖이란 태도를 느꼈고 배드민턴단 창단보다는 본인의 관심사인 바둑을 주제로 이야기 했다”고 안 수석에게 보고했다.
이에 안 전 수석은 “포스코 회장(권오준)에게 얘기한 내용이 사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거 같다”며 “즉시 조치를 취하겠다. 포스코에 있는 여러 종목을 모아 스포츠단을 창단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안 전 수석은 포스코 측에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포스코는 끝내 안 전 수석과 K스포츠재단의 요구를 거부했다.
포스코가 이들의 요구를 거부한 이유는 당시 철강업계가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지난해에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되는 국내외 19개 계열사(해외 연결법인 13개사 포함)를 정리했다.
안 전 수석 등이 배드민턴단 창단을 요구한 지난 2월은 강력한 자구책이 포함된 새해 사업계획이 막 수립된 때였다. 수십개의 계열사를 매각·통폐합하는 등 비상경영체제를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배드민턴단 창당 요구가 있기 약 한달 전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포항제철소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구매부터, 생산, 기술개발, 나아가 경영자원 관리까지 조직 운영의 모든 부분이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일대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포스코로서는 이런 시기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스포츠단을 창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이미 ‘전남드래곤스’라는 프로축구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새 스포츠단을 통해 홍보할 의미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3일 CNB와의 통화에서 “이미 프로팀을 운영하고 있는데다가 구조조정 등 조직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스포츠단을 창단할 여력도 생각도 없었다”며 “배드민턴팀 창단과 관련돼 진행된 일은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의 이런 태도는 당시 여러 기업들이 최순실 씨와 안 전 수석에게 휘둘렸던 것에 비하면 나름 기업운영의 원칙과 소신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종범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이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4일 새벽 수사를 마치고 손에 수갑을 찬 채 서초동 중앙지검 별관 구치소로 이송되는 안 전 수석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회의록이 작성된 시기는 미르재단 등을 통해 최씨 일당이 기업들에게 모금을 진행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앞뒤 정황으로 볼 때, 최씨와 안 전 수석은 K스포츠재단을 통해 대기업 스포츠단들을 관장하고 이를 구실로 협찬이나 기금 등을 요구하려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현재 기업들에게 돈을 뜯어 낸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재계관계자는 “당시 상당수 기업들이 압력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코”라며 “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이면서도 정경유착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