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파문의 정점에 선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종교로 국가를 지배하려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불거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온 우주’ 발언, 취임식에 쓰인 오방낭(오색 복주머니), 대통령이 즐겨 입는 오방색 한복, 변형된 태극 무늬 정부 상징물, 새누리 당명 등이 이단·무속신앙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과 함께 최씨가 이에 개입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씨와 그녀의 부친 고 최태민(영세교 창설자)으로부터 박 대통령에 이르는 퍼즐을 맞춰 나갈수록 의문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정말 그들은 무속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을까. 오방색의 정체는 뭘까. (CNB=도기천 기자)
▲최근 18년 만에 바뀐 국정원 로고(오른쪽)와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재단법인 미르의 로고(왼쪽)가 빼닮았다. 모두 용을 형상화 했다.
국가로고→최순실표 무속색채로 변형국정원과 미르, 두곳 상징로고 빼닮아
문체부 쥐락펴락, 종교국가 개조 시도
오방색은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색을 이른다.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을 생성했다는 음양오행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속인들은 오방색으로 이뤄진 비단 복주머니(오방낭)가 우주와 인간을 잇는 기운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취임식 당시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에서 오방낭을 여는 행사를 했는데, 이 행사에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취임식 행사 총감독을 맡았던 윤호진 교수(홍익대)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최씨 PC에서 발견된 ‘오방낭’ 프로그램은 최씨 측근이 기획했는데, 그는 숭례문 전체를 대형 오방색 천으로 감싼 뒤 제막하는 행사를 하겠다고 고집했다”고 밝혔다. 윤 교수 주장대로라면 최씨가 측근을 통해 대통령 취임식을 거대한 무속행사로 기획했다는 얘기가 된다.
박 대통령이 즐겨 입는 한복에서도 오방색이 두드러진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 해외순방 등 중요한 국가행사 때마다 한복을 착용했는데 주로 색깔이 오방색을 상징하는 황색과 적색 계통이었다. 박 대통령의 행사 의상은 최씨가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의 잇단 종교적 발언도 최씨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박 대통령은 2015년 4월 브라질 경제인 초청 행사와 지난해 5월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서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에는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등 동양의 기(氣) 철학을 연상시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역사학계는 ‘최씨 영향을 받은 교과서’라며 분개하고 있다.
▲올해 3월 확정된 정부상징. 문양과 색깔이 최순실 씨가 대통령 취임식 때 선택한 엠블럼(오른쪽)과 상당히 비슷하다.
최씨 일당 집권 시나리오는?
최씨가 각종 국가상징물에 무속 색채를 넣으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 부처별로 각각 다른 로고를 통일하기 위해 ‘정부상징 체계 교체 사업’을 2014년 9월부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최씨의 측근인 차은택씨가 문체부 문화융성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된 직후였다.
문체부는 당시 설문조사에서 무궁화·태극 문양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72.4%에 달한다고 밝혔지만, 올해 3월 무궁화를 뺀 태극 문양으로 정부상징을 확정했다. 색깔은 오방색을 연상시키는 적·청·백색이 반영됐다.
이 문양과 색깔은 최씨가 대통령 취임식 때 선택한 엠블럼과 상당히 비슷하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취임식 업체 선정부터 행사기획, 대통령 우표, 도장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따라서 최씨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정부상징이 만들어 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지난 6월 18년 만에 교체된 국가정보원의 상징(GI)도 이런 점에서 의심받고 있다. 기존 나침반과 횃불을 형상화했던 국정원의 상징은 태극 문양 안에 횃불이 타오르고 청룡과 백호가 이를 둘러싼 그림으로 바뀌었는데, 최씨가 실소유주란 의혹이 제기된 재단법인 미르의 상징과 많이 닮았다. 특히 국정원 로고의 청룡과 미르재단 로고에 그려진 용의 머리 부분이 거의 일치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박 대통령 왼쪽)의 70년대 모습. 두 사람의 인연은 박정희 대통령과 최태민씨가 관계를 맺고 있던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씨가 이처럼 무속을 통해 나랏일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에는 부친인 고 최태민 씨가 배경이 되고 있다.
최태민 씨는 1950년대 경남 동래군 금화사의 승려로 시작해 전국불교청년회 임원을 거쳐 박정희 정권의 핵심부에 진출한 인물이다.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를 혼합한 영세교를 창설했으며, 박정희의 통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씨는 이런 부친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최태민 씨는 단순히 정치에만 관여한 게 아니라 박정희가(家)와 정신적으로 깊이 교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씨 또한 수십년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다.
수없이 쏟아지고 있는 각종 루머와 증언은 하나같이 ‘박정희-최태민-최순실-정윤회(최순실의 전 남편)-박근혜’라는 연결고리를 지목하고 있다.
▲2013년 취임식 당시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왼쪽). 박 대통령의 뒤의 나무 조형물에 여러 개의 오방낭(오색 복주머니)이 달려 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공중파 예능 ‘무한도전’에서 오방낭을 풍자하고 있다.
개신교 일각 “기성 교단도 반성해야”
최씨와 박 대통령의 특정종교 관련설은 진위 여부를 떠나 공중파 예능프로에서 풍자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30일 지상파 인기예능 프로인 ‘무한도전’ ‘슈퍼맨이 돌아왔다’ ‘런닝맨’과 주말극 ‘옥중화’에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비꼬는 듯한 ‘온 우주’(런닝맨) ‘오방색 풍선’(무한도전) ‘오방낭’(옥중화) 등이 자막과 연출을 통해 일제히 등장했다. SNS에는 최씨와 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이 연일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세월호 사건 당일 날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두고 굿판을 벌인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대중문화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2일 CNB에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사이비 종교 앞에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온 국민이 분노를 넘어 슬프고 허탈해 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 전체가 거듭나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50년 전으로 후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개신교단의 김신일 목사(성서대전 사무국장)는 “나라가 무속인들에게 의해 지배당할 때까지 기성 교회가 침묵 내지는 동조했다는 점에서 뼈아프게 생각하고 회개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정의를 지킬 때 세상도 맑아진다는 것을 새삼 되새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