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늑장공시 사태 이후 일부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공매도 폐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한미약품 본사 건물과 함께 보이는 빨간불이 현재 한미약품 상황을 설명해준다. (사진=연합뉴스)
한미약품 늑장공시 사태 이후 ‘공매도’가 화제다. 개미(일반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원흉이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와 정상적 시장기능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 논란의 중심에 선 공매도를 CNB가 살펴봤다. (CNB=손강훈 기자)
싸게 빌려 비싸게 파는 공매도
세력들 자금 없이도 작전 가능
정보 부족한 개미들만 속수무책
거래활성 주장 맞서 폐지론 부상
공매도란 말 그대로 ‘없는 걸 판다’는 뜻이다.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으로 주가가 떨어질 것을 예상할 때 시세 차익을 노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주당 50만원인 A사가 인수합병으로 인해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고 하자. A사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투자자는 일단 주당 50만원에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다. 이후 주가가 40만원까지 떨어졌다면 투자자는 40만원에 주식을 사서 결제한다. 그러면 주당 10만원의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비싸게 팔고 싸게 사서 갚는 원리다.
반면 인수합병이 A사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돼 주가가 60만원으로 오른다면 공매도를 한 투자자는 주당 10만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원래 50만원 짜리였던 것을 60만원에 사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식을 빌려준 사람은 아무런 손해 없이 통상 연간 1~2%의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경우 공매도 수수료로 190억원 가량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공매도는 투자방법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만 투기성이 짙다. 특히 주가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특정세력이 ‘작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공매도한 금액보다 주가가 떨어져야 차익을 얻기 때문. 작전에 휘말리면 손실은 일반투자자들이 떠안게 되는 구조다. 이런 우려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발생한 ‘한미약품 사태’는 이런 공매도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지난달 29일 한미약품은 미국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표적 항암제 기술추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1조원이란 금액은 한미약품 지난해 매출액 1조3175억원의 76% 달하는 것으로 엄청난 호재였다.
실제 다음날인 30일, 한미약품 주가는 9시 장시작과 함께 전날 종가(62만원)보다 5.48% 상승한 65만4000원까지 오르며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9시30분경 베링거인겔하임이 한미약품의 ‘올무티닙’ 기술개발 권리를 반환했다는 악재가 전해지며 오후 2시30분경엔 50만2000원까지 떨어졌고 결국 18.06% 급락한 50만8000원으로 마감됐다.
이날 개미들은 엄청난 손실을 봤지만 공매도 세력은 큰 이득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들이 최고가였던 65만4000원에 공매도한 후 최저가였던 50만2000원에 주식을 다시 샀다면 주당 15만2000원, 30.28% 차익을 얻는다. 29일과 30일의 종가로만 계산해도 주당 11만8000원, 22.05% 수익을 본 셈이다.
▲검찰은 17일 한미약품 본사를 시작으로 19일 13곳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이 든 상자를 차에 싣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폐지냐 유지냐, 찬반 팽팽
특히 논란이 된 것은 공매도에 작전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다.
9월 30일 한미약품의 공매도 수량은 10만4327주. 이중 48.37%에 달하는 5만471주가 오전 9시와 9시29분 사이에 이뤄졌다. 올해 하루 평균 공매도량은 4850주에 불과하다. 호재만 알려져 있고 악재는 전해지지 않았던 시간에 평균의 10배가 넘는 공매도가 이뤄졌다는 것을 두고 사전에 정보가 샜을 것이란 의심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서울남부지방검찰정 소속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 17일 한미약품 본사를, 19일에는 한미약품 공매도 거래량이 많았던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유안타증권, 하이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KB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등 13곳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압수수색했다.
공매도로 인해 매도 주문이 쏟아지면 주가는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시장구조다. 이리되면 정보에 취약한 소액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공매도 비중은 외국인 투자자 70~80%, 기관투자자 20~30%, 개인투자자 2~3%로 개인투자자 비중이 월등히 낮았다. 이는 공매도가 가능한 자금규모와 신용도, 정보력을 개인이 갖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손실을 본 개미들은 공매도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증권사들을 비판하고 있다. 증권사가 직접 공매도 작전에 참여한 건 아니지만 수수료 이익을 위해 전체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문제 삼은 것.
이들은 공매도 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진투자증권, LIG투자증권 등 공매도 거래가 없는 증권사로 주식 이관을 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27일 CNB와의 통화에서 “공매도 때문에 개인투자자가 받는 피해는 극심한 상황”이라며 “공매도 폐지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시장 감시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손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증권업계는 공매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한미약품 사태는 ‘내부정보 사전 유출’이란 불공정 거래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공매도 제도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주가 안정화, 주식시장 거래 활성화, 새로운 투자기회 제공 등의 공매도의 장점이 여전히 커 우리 증권시장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매도를 악용한 불공정 거래 행위는 악착같이 막아야 하고 철저히 단속해야 하지만,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시장 기능의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며 “역기능을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