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인도네시아 대기업인 코린도그룹이 열대우림 방화 의혹에 휘말리면서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로 불똥이 튀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은 최근 들어 앞다퉈 거대 신흥시장인 인도네시아 시장을 공략 중이며, 이 중 일부는 코린도와 합작회사를 세운 상태다. 코린도의 팜유 사업에 투자한 효성,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포스코대우 등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CNB=도기천 기자)
▲한국계 기업 코린도의 인도네시아 팜유 농장 개발 모습. 환경단체들은 코린도가 농장 확장을 위해 열대우림을 고의적으로 불태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마이티)
인도네시아 거대 신흥시장 부상
국내 대기업들 앞다퉈 印尼 진출
한국계 코린도, 열대림 방화 의혹
이미지 실추되랴 기업들 전전긍긍
미국의 환경운동단체 마이티(MIGHTY)와 국내 시민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은 코린도가 인도네시아 파푸아와 북말루쿠 지역에서 팜유 플랜테이션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화재를 내는 등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일 현지 시민단체들과 함께 코린도의 대규모 벌목, 방화 등과 관련된 위성사진, 동영상 등을 담은 조사보고서 ‘불타는 천국’(Burning Paradise)을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사법당국에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린도는 팜유 농장 건설을 위해 현재까지 파푸아와 북 말루쿠에서 5만ha 이상의 열대우림 지역을 정리했다. 이는 서울시 면적과 맞먹는 규모다. 유독 이 시기 화재가 빈번했고, 화재가 난 뒤에는 코린도그룹의 농장이 들어섰다. 농장이 조성된 뒤에는 화재가 거의 없었다.
▲미국의 환경운동단체 마이티(MIGHTY)가 드론으로 촬영한 코린도그룹 소유 농장 PT PAL의 모습. 마이티와 환경운동연합 등은 코린도의 대규모 벌목, 방화와 관련된 증거사진 등을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사법당국에 제출했다. (사진=마이티)
파푸아 섬은 인간의 손이 닿은 적 없는 천연 열대우림을 자랑하는 ‘인류의 보고(寶庫)’로 꼽히는 지역이다. 세계의 허파로 불리며,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최근 몇 년 새 파푸아의 열대우림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코린도가 팜 야자 농장을 확장하면서 숲을 파괴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코린도그룹은 파푸아 섬에서 가장 많은 팜 야자 농장을 갖고 있다.
코린도 측은 자신들 소유의 토지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적 방화는 아니라며 반박하고 있다. 코린도는 여러 언론에 보낸 해명자료에서 “슈퍼 엘니뇨 등 자연현상에 의한 화재가 대부분이며 인도네시아 정부 규정을 준수해 적절한 중장비를 사용해 농장을 확장해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코린도의 환경 파괴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팜유 취급 업체인 윌마(Wilmar)와 무심마스(Musim Mas)는 환경단체들이 제시한 증거를 근거로 최근 코린도그룹과 거래를 중단했다. ‘팜유는 열대우림 파괴나 인근 주민들에게 인권침해를 하지 않고 생산되어야 한다’는 NDPE(No Deforestation, No Peat, No Exploitation) 정책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인도네시아 당국도 환경단체들의 폭로가 있은 직후 정부 차원의 조사에 착수했다.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팀 김혜린 간사는 29일 CNB에 “2년전 인도네시아 정권이 바뀌면서 현 정부는 인권·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지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 10월 사상 처음으로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했다. 서민 출신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부정부패 척결 등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계 기업 코린도의 인도네시아 팜유 농장 개발 모습. (사진=마이티)
환경단체, 효성·포스코대우 압박
코린도그룹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은 이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은 물론 인도네시아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코린도 측은 “100% 인도네시아 기업”이라며 한국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승은호 회장은 인도네시아 한인회장 및 동남아 한상연합회장을 지냈다.
회사 경영진도 대부분 한인들이다. 2011년에는 한국 증시 상장을 추진한 적이 있어 국내 자본시장에도 잘 알려진 기업이다. 승 회장은 코린도가 동남아 한류기업임을 내세워 기업홍보에 활용하기도 했다.
코린도그룹은 지난 197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에서 목재사업으로 시작해 현재는 인도네시아 재계서열 20위권에 오르내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자원과 제지, 중공업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1990년대 말에는 금융업에 진출해 내로라하는 금융회사들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기업들과 음으로 양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코린도와 가장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국내 대기업은 효성이다. 효성은 2년 전 코린도의 팜오일 농장 지분 15%(약 111억원)를 사들이며 팜유 사업에 진출했다. 효성은 다양한 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미래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분야를 확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코린도의 환경파괴 논란이 불거지며 불똥을 맞고 있다. 최근 환경운동연합은 관련 기업들을 방문해 재발방지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팜유 공급 라인을 갖고 있는 윌마 등이 NDPE 정책을 내세워 코린도와의 거래를 중단한 것도 악재다. NDPE 정책을 채택한 기업들의 세계 팜유 거래량 점유율은 90%에 이른다. 코린도는 윌마 등과의 거래가 끊기자 일부 팜유 농장의 개발을 중단했다.
코린도의 매출 급감이 예상되는 가운데 여기에 투자한 효성도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파푸아 섬 인근에 팜유 플랜테이션을 갖고 있는 포스코대우(POSCO Daewoo)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코린도와 포스코대우는 기술교류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환경단체들은 포스코대우도 코린도와 마찬가지로 열대우림 방화에 개입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환경운동연합은 이 문제에 대해 포스코대우 측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노르웨이 연기금(Norwegian Pension Fund)은 포스코대우가 산림파괴 의혹을 받자 투자를 철회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가 거대 신흥시장으로 부상하면서 국내 금융사들이 앞다퉈 현지에 진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코린도그룹의 환경파괴 의혹으로 한국기업들의 이미지 실추가 우려되고 있다. 지난 5월 신한인도네시아은행 출범식에 참석한 조용병 신한은행장(가운데)과 임원진. (사진=신한은행)
한국금융사들, 코린도 사태 곤혹
인도네시아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계획인 금융사들도 기업이미지 실추가 우려되고 있다.
인구 2억5000만명의 인도네시아는 거대 신흥시장으로 부상한 상태다. 중산층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주식투자 인구는 50여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금융환경이 낙후돼 있어, 국내 금융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NH투자증권이다. 2009년 코린도그룹과 손잡고 합작회사인 NH코린도증권을 설립했으며, 최근에는 국내 증권사 최초로 현지에서 주식 온라인 매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 상반기에는 인도네시아 사모펀드(PEF) 시장에 진출했다. 1000억원 안팎의 사모펀드를 조성해 유망기업에 투자하는 프로젝트다. 현지 법인인 NH코린도증권, 현지 운용사 등과 손잡고 이르면 올해 안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코린도의 환경파괴 논란으로 사업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메리츠화재와 코린도그룹의 합작법인인 메리츠코린도보험도 ‘코린도’라는 사명 때문에 타격이 예상된다. 앞서 2008년에는 신한캐피탈, 우리투자증권 등이 코린도그룹과 손잡고 인도네시아 현지에 합작회사를 설립한 바 있다.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사진)은 인도네시아 한인회장 및 동남아 한상연합회장을 지냈다. 이런 탓에 현지에서는 코린도가 한국기업으로 각인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린도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인도네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다른 금융사들도 기업이미지 실추가 우려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2년간 은행과 카드·증권의 ‘삼각편대’를 인도네시아 시장에 구축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인수한 인도네시아 은행인 뱅크메트로익스프레스(BME)의 이름을 ‘신한인도네시아은행’으로 바꾸고 최근 재출범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 12월 자기자본 2000억 루피아(약168억원) 규모인 인도네시아 M증권을 인수했다.
NH농협금융그룹은 지난 3월 인도네시아 만디리은행과 상호협력 및 농업금융 발전을 위한 합작사업을 시작했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은 2007년 인도네시아 최대 온라인증권사인 이트레이딩증권의 지분 19.9%를 취득한 뒤 2013년에 보유 지분을 80%까지 늘리면서 현지법인으로 전환했다. 현재 이 현지법인은 인도네시아 1위 증권사로 올라선 상태다.
키움증권은 키움자산운용과 함께 1990년대 후반부터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했고, 한국투자증권은 자카르타에 주재사무소를 설치해 인수 매물을 물색 중이다.
이들은 코린도그룹과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코린도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한국기업으로 각인돼 있어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자칫 유탄(流彈)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혜린 간사는 “파푸아 섬 환경파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기업들이 전부 한국계 기업(코린도, 효성, 포스코대우)이라는 점에서 현지 교민사회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한국기업이 열대우림 파괴자라는 사실이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연평균 6~7%의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신흥시장인데 이번 코린도 사태로 우리 기업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코린도 스스로 조속히 해결책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환경운동연합은 코린도 및 코린도와 연계된 국내대기업들로부터 ‘환경파괴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낼 때까지 마이티 등과 연대해 ‘파푸아 섬 살리기 캠페인’을 계속 벌여나갈 계획이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