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저소득·저신용 서민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대출의 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의 대출 광고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가계부채가 사상최대인 1300조원에 육박한 가운데, 제2금융권과 카드사의 수익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서민들이 카드론 등 고금리대출에 몰렸기 때문.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로 내려간 상황이지만 금융사들은 여전히 높은 금리에 돈을 빌려주고 있어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조달금리 사상최저, 대출금리 그대로
은행 문턱 높아지자 저축銀 ‘호황’
‘수박 겉핥기식’ 대책 “약발 안먹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79곳의 올해 상반기 잠정 순이익은 4837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74.1%나 늘었다.
정부의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저신용 서민층이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으로 넘어간 영향으로 분석된다. 대출금이 증가하면서 늘어난 이자이익이 순이익을 끌어올렸다. 저축은행들의 상반기 이자이익은 1조 492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6% 늘었다.
이런 추세는 카드사도 마찬가지다.
카드사들이 공시한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신한과 삼성, 현대, KB국민, 롯데, 우리, 하나 등 7개 전업계 카드사의 상반기 카드론 수익은 총 1조574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1조4231억원)보다 1514억원(10.64%) 늘어난 수준이다. 신한카드의 카드론 수익이 382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카드(2819억원)와 현대카드(2531억원)가 뒤를 이었다.
카드론 실적 등에 힘입어 카드사의 대출 규모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상반기 대출 취급액은 43조2000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6000억원 증가한 수치로, 지난 2005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다.
특히 카드 대출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현금서비스의 경우, 저신용·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출의 질’이 우려되고 있다.
이달 초 발표된 한국금융연구원의 ‘신용카드 이용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수준 1분위(하위 20%)에서 현금서비스 이용이 2009∼2016년 사이에 연평균 6.2% 늘었다. 신용등급별로는 낮은 등급인 7등급에서 연평균 8.9%, 8등급에서 7.6% 증가했다.
▲주요 카드사들의 상반기 카드론 실적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호실적에는 사상최저인 금리 덕분에 예대마진(예금-대출간 발생이익)이 개선된 점도 한 몫 했다.
2008년 5%대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계속 내려가 현재는 사상최저인 1.25%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의 조달 금리도 1.5~2%선까지 내려갔다.
특히 수시입출금식예금(요구불예금)을 이용해 대출을 할 경우, 조달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예금액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요구불예금의 금리는 0.1~1%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축은행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약23%다.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 이자율도 7~8등급의 경우 20%를 넘고 있으며, 카드론 금리는 평균 10~15%선이다.
금융사들은 연1%도 되지 않는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두자릿수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다. 연체 등에 따른 대손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금리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는 서민들이 월소득의 상당부분을 빚 갚는데 사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 경기순환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10조40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88.4%다. 13년째 비교 대상 신흥국 중 1위다. 지난 1년 새 가계부채 증가 폭도 신흥국 중 가장 컸다.
가을 이사 시즌과 추석이 끼어있는 3분기에도 증가세가 뚜렷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신용카드 이용액 등을 포함한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의 대출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개인들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규모는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자료=한국은행, 그래픽=연합뉴스)
정부대책 반응 시큰둥 “왜”
하지만 정부대책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미국 금리 인상에 대비해 여러 대책을 내놓으며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부는 지난 5월 가계대출에 대한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전국으로 확대 적용한데 이어, 지난달엔 주택공급을 축소하는 8·25 대책을 내놓았고 이달 초엔 집단대출 요건을 강화했다.
이같은 대책이 대부분 주택구매와 관련된 담보대출을 규제하는 성격이다 보니 서민들의 신용대출 증가세를 꺾는 데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중금리시장의 활성화, 싼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전환대출 확대 등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지원책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사의 대출 담당자는 “은행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자 수요자가 제2금융권에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으며, 기존 은행 고객들도 마이너스통장대출을 활용하는 사례가 최근들어 급증하고 있다”며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등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외국어대 강명재 경영학부 겸임교수는 16일 CNB에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을 주고, 금융사들에게는 상당한 수익을 안겨주는 지금의 대출구조 하에서는 가계부채의 질이 계속 나빠질 수밖에 없다”며 “은행문턱을 낮추고 저금리 신용대출을 활성화하는 한편 크라우드펀딩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도입해 서민들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