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제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담고 있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제약업계와 의료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김영란법은 약사법에서 규정하는 금액 상한선과 다를뿐더러, 개인병원 의사는 김영란법에 적용받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대학병원 의사들과의 형평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CNB=김유림 기자)
제약업계 약사법-김영란법 혼란
시범케이스 될라 ‘몸 사리기’ 급급
그들만의 리그 이번엔 끝날지 주목
오는 28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사 등이 특정 금액 이상의 금품과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법이다.
이해당사자로부터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수취하면 직무 연관성과 관계없이 준 사람·받은 사람 모두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 처벌된다. 1회당 금액은 직무 연관성이 있을 경우에 한해 1인 기준으로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까지 허용하고 있다.
의료계의 경우, 국공립 의과대학 교수, 지방의료원과 보건소 의사, 공중보건의, 학교법인이 설립한 병원의 교수 및 봉직의 등이 적용 대상이다.
제약사의 영업 직원이 불법 리베이트를 의사에게 제공했다면, 회사 역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제약사들은 김영란법에 적발되면 기업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까 사전 예방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김영란법에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조항이 많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없어, 제약사들은 자체적으로 지침을 만들어 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약사가 대표적으로 가장 혼란을 겪고 있는 부분은 ‘제품설명회’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소비자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제약사들은 처방권을 갖고 있는 의사들을 상대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홍보수단이 제품설명회다.
제품설명회는 호텔이나 컨벤션센터, 고급 식당 등에서 진행되는데 식사는 필수적이다. 대부분 행사장들이 별도의 대관료를 받지 않고 식사비에 대관료를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서는 1인당 3만원 이상 식사 대접을 금지하고 있는데, 대형행사를 할 수 있는 대규모 식당(호텔 등)에서는 3만원 이하 식사를 찾기가 힘들다. 현행 약사법은 이런 점을 고려해 제품설명회에 한해 1인당 10만원까지 식음료 제공을 허용하고 있다.
서로 다른 규정을 담고 있는 약사법과 김영란법 사이에서 제약업계는 우왕좌왕했고, 결국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달 초 제품설명회 참석자에 대한 10만원 이하 식사 제공은 인정하기로 했다.
권익위가 제품설명회 참석자들의 식사제공을 10만원까지 허용한 것은 해당 행사가 ‘공식성'을 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식성을 가진 행사’에서의 접대는 예외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식성’의 규정 범위가 모호해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개발 중인 신약의 최신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한 간담회도 ‘공식성’에 포함할 것인지 여부 △제약사의 이해관계가 있는 의료인만 초대해 제품설명회를 여는 경우 △제품설명회와 구분하기 힘든 홍보성 행사 등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에서는 의사의 외부강의료 및 자문료에 대한 김영란법상 금액규정이 사립대와 국립대가 달라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국립대학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교수들이 강의를 할 경우 1시간 최대 40만원, 2시간 6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직급에 따라 10만~20만원씩 낮은 강연료가 책정된다.
반면 사립대학병원 교수들은 직급 구분 없이 1시간당 100만원, 2시간이면 2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약사가 심포지엄을 개최해 대형병원 교수에게 학술 강연을 요청했다면, 서울대병원(국립) 교수는 1시간당 40만원, 연세대병원(사립) 교수는 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다 개인병원 의사와 공익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의 의사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 아예 상한선이 없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CNB에 “김영란법에서 명확한 해석이 안되는 부분에 대해 제약사들은 물론 제약협회도 권익위에 정확한 해석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권익위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아 당분간 시행착오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초 적발된 제약사나 개인이 행정소송을 걸어 법원 판례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며 “다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처럼 김영란법은 시행을 목전에 두고서 심각한 결함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제약업계의 고질병인 리베이트 관행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사실 그동안 식약처의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늘 있어왔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3년부터 최근까지 총 681개 의약품이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판매금지 등 행정처분을 받았다.
관련된 제약사는 삼진제약, 대웅제약, 동화약품, 일동제약, 현대약품, CJ제일제당(현 CJ헬스케어), JW중외제약, 삼일제약, 제일약품, 영진약품공업, 근화제약, 영일제약, 파마킹, 영풍제약, 대원제약, 대한뉴팜, 진양제약, 한미약품, 광동제약, 종근당, 한독,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안국약품, 씨엠지제약, 비엘엔에이치, 제삼바이오잠, 브라코이미징코리아, 한국릴리, 칼자이스, 동아에스티,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유영제약, 한올바이오파마, 한국피엠지제약, 국제약품공업, 서울제약, 한국노바티스, 이연제약, 명문제약 등 무려 39곳이다. 특히 대웅제약은 2014년을 제외하고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불법 리베이트 처분을 받은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이들 제약사들은 판매정지를 받게 되면, 판매정지가 시행되기 직전에 도매상이나 약국에 미리 대규모로 의약품을 공급하는 수법으로 손실을 비껴갔다. 가령 1월에 불법사실이 적발돼 3월부터 판매정지 조치가 내려졌다면 2월에 약국 등에 대규모로 물량을 밀어넣는 식이다.
실제로 동화약품은 지난 7월 15개 의약품에 대해 1개월 판매중지 처벌을 받았을 당시 “시중에 판매 중인 물량이 존재하는 만큼 유통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은 온 국민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법 시행 이후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는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장기적으로 어려움과 혼란이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선물, 접대 등이 줄어드는 문화로 바뀐다면, 제약업계의 리베이트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