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영정사진과 유골함이 30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검찰 출두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정책본부장)을 끝내 조문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人生歷程)이 주목받고 있다.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한 이 부회장은 43년 세월을 신 총괄회장과 함께 해왔다. 신 총괄회장은 그의 마지막 길을 왜 배웅하지 않은걸까. (CNB=도기천 기자)
이 부회장 죽음 원인·배경 ‘논란’
‘신동빈 중심 정상화’ 유지 남겨
롯데가 형제 갈등 더 악화될 듯
3일 간의 조문 기간 동안 수많은 롯데 계열사 임직원들이 이 부회장의 빈소를 찾은데 이어 30일 열린 장례식에도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진세 롯데그룹 대외협력단장을 비롯,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 김용수 롯데제과 대표, 오성엽 롯데정밀화학 대표, 김천주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대표,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대표 등 주요계열사 임원들이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켰다. 빈소를 두 번이나 찾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첫 조문 때 장시간 눈물을 흘려 보는 이를 숙연케 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과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끝내 빈소를 찾지 않았다.
이 부회장과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해온 신 총괄회장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지 않은 이유는 뭘까.
신 총괄회장 측은 표면적으로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최근 성년후견인 지정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그의 건강상태가 조문을 못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 12월 신 총괄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씨가 제출한 ‘성년후견인 지정 신청’을 받아들여 현재 심리가 마무리 단계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7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의 빈소에 조문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신 총괄회장과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산 역사’였다.
경북 경산 출신인 이 부회장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했다. 이후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으로 옮겨 관리이사와 영업본부장, 부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입사 24년 만인 1997년 쉰 살의 나이에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신 총괄회장은 무척 그를 아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90년대 롯데그룹이 거대유통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가신(家臣)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특히 신 총괄회장의 숙원인 ‘초고층랜드마크(롯데월드타워)’의 꿈을 현실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설을 조국에 남기겠다”던 신 총괄회장은 1988년 잠실 땅을 매입, 랜드마크 사업에 착수했지만 공군이 인근 서울공항 군용기와 충돌 가능성을 들어 반대하면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 변경 비용 등을 기부 채납하는 조건으로 건축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수완을 발휘했다.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그룹 콘트롤타워를 총괄하는 정책본부장(부회장)에 올랐다.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서 부회장에 오른 것은 롯데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높이 555m, 123층 규모로 건립된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는 세계에서 6번째,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롯데 측은 올해 말 완공되면 경제효과가 7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역사’이자 국내에만 12만명에 달하는 롯데 계열사 월급쟁이들의 ‘상징’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검찰 수사에서도 총수 일가와 그룹 차원의 횡령과 배임 혐의를 밝힐 핵심 인물로 꼽혀 소진세, 황각규 사장에 이어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달 18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신 총괄회장의 퇴원을 돕고 있다. 신격호·신동주 부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1년 넘게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인 뜻 따르자” 롯데사태 새국면
하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해 불거진 롯데가 형제들 간의 경영권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신 총괄회장과 결별했다.
롯데 사태는 신 총괄회장을 등에 업은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 간의 경영권 갈등에서 비롯됐다.
이들 형제는 2013년경부터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손해보험 롯데푸드 등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며 지분경쟁을 벌였다. 그러다 신 전 부회장이 실적 악화 등의 이유로 일본 롯데그룹의 주요 임원직에서 모두 해임되면서 분쟁이 마무리되는듯했다. 이전까지는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으로 힘의 균형이 유지됐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지난해 7월 신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의 측근들(일본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면서 다시 분쟁이 점화됐다.
이에 맞서 신 회장은 긴급이사회를 열어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회장에서 해임했으며, 신 총괄회장의 이사 해임 결정이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신 회장 편에 섰다. 이 부회장은 작년 8월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들의 ‘신 회장 지지 성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신 회장의 오른팔이 되면서 신 총괄회장과는 완전히 갈라섰다.
당시 이 부회장의 거취를 두고 ‘햇볕을 쫓아간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이 부회장의 판단 근저에는 롯데그룹의 미래를 생각한 측면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고령(95세)의 신 총괄회장과 한국 사정에 어두운 신 전 부회장에게 롯데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
이런 측면에서 이 부회장이 형제 분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형제 간 갈등에서 시작된 롯데 사태가 전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왔고 결국 오늘날 롯데 수사의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다. 아버지(신격호)를 사이에 두고 아들들 간의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검찰이 개입하게 됐다는 것.
롯데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이 없었다면 검찰이 개입할 일도, 이 부회장이 목숨을 버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영정사진과 시신이 30일 오전 롯데월드타워 앞을 지나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롯데 주주들, 마음 움직일까
따라서 이 부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자신이 평생 몸 담고 헌신했던 롯데가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주변 지인들은 “단순히 검찰 수사를 피하려고 그랬을 분이 아니다. 더 큰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롯데를 살리고자 했던 이 부회장의 뜻이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제대로 전달됐을지는 의문이다.
신 전 부회장은 물론 신 총괄회장까지 그의 빈소를 찾지 않은데서 보듯, 롯데 사태가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는 점에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 안팎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주총에서 연이어 패하면서 마지막 카드로 검찰에 신동빈 회장 측의 비리를 제보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며 “제보설은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신 전 부회장이 검찰 수사를 활용하려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한국와 일본을 오가며 롯데의 자정을 축구하는 등 반전 국면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신동빈 회장에 대해 “숫자지상주의가 지나치다. 조직에 왜곡이 생기고 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누나 신영자 이사장이 롯데면세점 입점 비리 의혹으로 구속되자 “만연돼 있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으로는 이 부회장의 희생이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 보트인 일본 롯데 측 임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경영권 분쟁이 조기에 끝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롯데계열사의 고위관계자는 “고인의 유지가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정상화였다는 점에서 일본롯데 주주들에게 큰 울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 부회장의 죽음은 경영권 분쟁의 향배를 떠나 반격을 노렸던 신 전 부회장에게는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신동빈 회장에게는 고인의 희생에 대해 답해야할 무거운 책무가 지워지게 됐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