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부국장)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았다.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
2012년 9월 박형규 목사의 민청학련 재심사건 때 ‘백지 구형’ 방침을 어기고 논고문을 읽었다는 이유로 당시 서른여덟의 임은정 검사는 정직 4개월 처분을 받았다.
자신의 안위 보다 대의(大義)를 택했던 이들의 삶은 고난했다. 1990년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은 양심선언 후 2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체포돼 2년간 군형무소에 갇혔다. 그의 용기로 보안사는 불법사찰 근절을 다짐하며 부대 명칭을 기무사령부로 바꿨다.
이지문 중위는 1992년 14대 총선을 이틀 앞두고 군부재자투표의 실상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공개투표, 투표용지 검열 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기자회견 직후 헌병대에 체포된 그는 모진 고초를 겪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그의 양심선언 이후 부재자 투표소가 부대 바깥에 설치됐다.
“재벌 부동산에 대한 감사가 외압에 의해 중단됐다”고 언론에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은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되는 등 고난을 겪었지만 그의 용기는 잠자고 있던 공직사회를 일깨운 단초가 됐다.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도 한 사람의 양심에서 비롯됐다. 박군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법의학과장은 검찰 조사에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라고 고백했다. 서슬퍼런 군부통치 시절에 행해진 그의 고백은 시민항쟁을 불러왔다.
멀게는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맞서 ‘언론자유’를 선언했다가 수백명의 기자들이 강제해고 된 ‘동아투위’ 사건에서부터, 가깝게는 “국정원 댓글조작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현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국민주주의 역사는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권력 간의 충돌로 점철돼 왔다.
예나 지금이나 “제발 앞에 나서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어머니의 애원은 비운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또 사고(?)를 친 사람이 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직권 남용 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을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우 수석과 관련된 의혹은 아들 군대보직 특혜, 부동산 비리 의혹 등 차고 넘치지만, 박심(朴心)이 우 수석에게 있는 터라 여당과 사법당국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친인척 및 수석비서관 이상의 공무원을 감찰하는 권한을 가진 차관급 공무원이다. 2014년 제정된 특별감찰관법에 의거,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며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지명하고 인사청문회도 거친다.
이 감찰관은 법대로 감찰을 했고, 결과에 따라 대통령의 동생과 수석비서관을 사법처리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되레 이 감찰관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한 언론사에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이다. 청와대가 이를 두고 “국기 문란 행위”라고 주장하자, 새누리당은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거들었다.
▲대통령의 여동생과 민정수석을 검찰에 각각 고발·수사의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
뭣이 중한지 모르는 검찰
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주객이 전도된 과거 권력형 사건들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2014년 현 정권의 ‘비선(秘線) 실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졌을 때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국기 문란’으로 규정해 수사를 지시했다. 대통령이 만들어준 가이드라인에 충실했던 검찰은 국정농단은 사실무근으로, 문건 유출에 대해서만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거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해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해 논란이 일었을 때도 박 대통령은 ‘대화록 원본 실종’ 만을 문제 삼았다. 검찰은 대통령의 심중에 따라 참여정부 관계자들을 ‘사초(史草) 유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박 대통령은 이번 수사에도 답안지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수사팀의 위계질서상 수사 과정이 청와대에 보고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우병우는 무죄, 이석수는 유죄’로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말까지 들린다.
그렇더라도 “살아있는 권력이든 뭐든 검사로서 주어진 일을 하겠다”는 윤갑근 특별수사팀장의 말을 아직은 믿고 싶다. 검찰은 외압에 굴하지 않고 양심의 지켰던 여러 선배공직자들을 되새기길 바란다.
임은정 검사는 박형규 목사가 유명을 달리한 다음날인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날(2012년 재판 당시) 논고문을 읽을 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양심적인 젊은 검사들이 더 이상 법조계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건 선배 검사들의 몫이다. 청와대의 구원투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민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CNB=도기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