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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올라도 내려도 죽는 소리 ‘기름 이야기’

저유가의 저주? 기업에는 ‘독’, 서민에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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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8.03 14:02:19

▲공급 과잉과 달러 강세로 국제유가가 다시 추락하면서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주요 정유사들 로고. (사진=CNB포토뱅크)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가 다시 급락하면서 업종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기름으로 움직이는 항공·자동차·운송업계에는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지만,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 중인 조선업계는 악재를 만났다. 기름값이 적당한 선에서 유지돼주길 바랬던 정유사들도 셈법이 복잡하다. 너무 내려도, 너무 올라도 문제가 되는 복잡한 ‘기름 이야기’다. (CNB=도기천 기자)

국제유가 유턴…다시 폭락세 
기업들, 업종별로 희비쌍곡선
정부 반색에 전문가들 ‘글쎄요’

국제유가가 가파른 속도로 추락하는 중이다. 6월 한때 배럴당 50달러를 넘겼던 유가는 지난달부터 급락을 거듭하다 30달러 대에 진입했다. 

7월 한 달 동안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하락 폭은 13.9%를 기록해 지난 1년 사이에 가장 컸다. 같은 기간 북해산 브렌트유도 14.5% 내려 올해 들어 최대 낙폭을 보였다. 2일(현지시간) WTI는 전날보다 55센트(1.4%) 내린 배럴당 39.5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연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동결 불발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배럴당 20달러 중반까지 떨어졌던 유가는 3∼5월 캐나다 산불과 나이지리아 송유관 파손 등에 힘입어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최근 다시 급락한 것은 그간의 공급 차질 문제가 해결된 데다 원유·휘발유 재고 증가, 달러 강세 등이 겹친 데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달러가 문제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27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대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리인상은 미국 경기의 회복 신호를 뜻하는데 이에 따라 달러 가치가 상승해 상대적으로 유가는 하락하게 된다는 것. 

경제학자 출신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CNB기자와 만나 “세계경기 악화, 달러 강세 등으로 인해 유가는 하향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블룸버그가 40개 투자은행(IB)을 대상으로 집계한 올해 3분기 WTI 가격 전망 평균치는 47.16달러이며, 올 연말에는 50.56달러까지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모건스탠리는 달러 강세를 이유로 들며 “유가가 배럴당 20∼25달러까지 떨어지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기존 원유를 대체하는 셰일가스 생산 기술의 발달로 저유가 국면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주유소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운송업계 ‘화색’, 건설·수출 ‘먹구름’

이처럼 가격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기름값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때 저유가는 원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업 입장에선 유가가 내리면 공장 가동 등에 필요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기업의 생산비용 절감으로 물건값이 떨어져 소비 주체인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커진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선순환하게 된다는 것.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유가 하락이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국제유가가 35% 하락할 경우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5조2천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를 인구 수로 나누면 1인당 35만원 정도의 가계지출이 줄어든다.  

실제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기름값이 내려가 지갑 사정이 다소나마 좋아졌다. 차량판매 호조로 이어져 불경기임에도 현대기아차 등의 매출이 꾸준하다. 원유가격 영향을 직접 느끼는 대한항공·아시아나를 비롯한 항공업계, 수천대의 운송차량을 운용하고 있는 한진·CJ대한통운·현대로지스틱스 등 빅3 물류사들도 화색이 돌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유가 하락은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저유가가 산유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를 어렵게 하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이 타격을 받게 된 것. 

저유가로 심각한 재정난에 처한 중동 산유국들은 각종 기반사업을 줄이거나 취소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20억 달러 규모의 라스 타누라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의 재입찰을 잠정 중단했고, 카타르는 85억 달러 규모의 알카라나 석유화학 콤플렉스 프로젝트 발주를 연기했다. 중동 경기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미청구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하는 건설사들도 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국내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총 152억1809만 달러(약16조9400억원)로 지난 3년(2013~2015년) 상반기 평균인 313억 달러의 절반에 그쳤다. 특히 지난해 중동 지역 수주액은 147억2600만 달러로 2014년에 비해 무려 52%나 줄었다. 이는 200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20개 건설사 중 해외에 진출한 건설사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SK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한화건설, 두산중공업, 한라, 금호산업, 코오롱글로벌, 쌍용건설 등 16개사다.  

▲현대오일뱅크 대산 BTX 공장 전경. (제공=현대오일뱅크)


기사회생 조선업계 ‘타격’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조선·해운업계도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글로벌 시추업체들의 발주 및 계약 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 

유류업계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가 되면 생산·개발비를 건지기도 힘들다고 본다. 원유 발굴·생산을 위한 해양플랜트와 선박 주문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이 영향으로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의 적자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8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조선업계는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향후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선박 생산량이 늘 것’이라는 주장으로 채권은행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는 유가급락세가 계속되면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운업계도 유가 하락 영향으로 일감이 줄어 선박 발주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내 2대 국적 선사는 최근 연이어 채권단 자율협약 신청을 결정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사재를 출연하고 경영권을 내놨다. 

산유국들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투자했던 ‘오일 머니’ 회수에 나서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제유가의 주요기준이 되는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를 생산하고 있는 미국 텍사스 주 오데사 지역 유정. (사진=연합뉴스)


정유4사 봄·겨울 오락가락

국내 정유업계는 유가가 너무 올라도, 너무 내려도 문제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는 원유를 사들여 정제한 뒤 석유제품을 다시 내다 파는 수출형 리파이너리(Refinery)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유가가 상승하면 비싼 가격에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해야 한다. 정제마진이 높아지더라도 수입단가 상승은 부담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유가가 폭락하면 산유국들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대형 정제설비의 가동을 늘릴 수 있다. 석유완제품을 만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정제에 나선다는 것. 또 이미 보유한 원유와 석유제품 가치가 확 떨어져 손실을 보게 된다. 

통상 정유회사 수익성의 척도가 되는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선에서 손익분기점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회사로서는 안정된 가격에 원유를 수입해 일정한 정제마진을 남기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국제유가의 급등락으로 인해 안정적인 펀더멘탈을 유지하기 힘들게 됐다”며 “수익이 늘고 줄고를 떠나 예측가능한 재무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름값은 복잡한 셈법에 포위돼 있다. 정부는 큰 틀에서 보면 유가 하락은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 생각은 다르다. 현대경제연구원 정민 연구위원은 3일 CNB에 “저유가가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소비 하락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디플레이션 환경이 극복되지 않으면 기름값이 내려도 소비확대로 연결되긴 힘들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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