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들의 길어진 여름휴가가 경기 악화 탓에 '불안한 휴가'가 될 전망이다. 지난 9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경기도 가평 용추계곡의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직장인들이 7년 만에 가장 긴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게 됐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휴가가 늘어난 이유가 경기 악화 탓인데다 휴가비마저 줄었기 때문. 더구나 경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하기 힘든 상황이라 어느 때보다 ‘불안한 휴가’를 보내게 됐다. (CNB=손강훈 기자)
기업들 야근 없애고 휴가 독려
경기침체·구조조정 ‘비용 줄이기’
복지 향상 됐지만 마음 무거워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전국 5인 이상 529개 기업들의 여름휴가는 평균 4.4일로 지난해 4.1일보다 0.3일 늘어났다. 주말 등을 포함하면 실제 휴가일수는 일주일 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9년(4.4일) 이후로 가장 긴 휴가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된 이후 2011년(4.0일)까지 휴가일수가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이후 점차 늘어나 올해가 가장 길게 됐다.
직원 300인 이상 중견·대기업은 4.8일,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4.3일로 각각 작년과 비교해 0.2일, 0.4일 늘어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휴가가 길어졌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여름휴가를 맘 편히 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휴가가 늘어난 이유가 ‘복지 확대’가 아니라 ‘허리띠 졸라매기’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휴가 증가 이유로 ‘경제 불확실성 증대로 인한 생산량 감축’(32.1%), ‘연차수당 등 비용절감’(21.4%) 등을 주로 꼽았다. 절반이 넘는 기업이 기업 상황이 좋지 않아 여름휴가를 늘렸다는 것.
또한 여름 휴가비를 줄 예정이라고 답한 기업은 66.7%로 지난해 대비 3.4%포인트 줄었고, 평균 휴가비도 59만1000원으로 3만1000원 감소했다.
실제로 기업의 상황이 좋지 않은 지표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소속 1042개 계열사(금융회사 제외)의 재무상황을 분석한 결과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이거나 연간 영업손실을 낸 실적부진 기업은 모두 351곳으로 전체의 33.7%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은 기업들은 긴축재정에 들어갔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 전 계열사에 연차를 모두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해 연말 밀린 연차를 쓰느라 장기 휴가를 낸 삼성 직원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연차 15일 이상 무조건 사용(15일 이하 사용해도 금전보상 없음) △평일잔업, 휴일특근 작년실적대비 최대 50%까지만 허용 △임원은 1주일에 1회 반드시 휴무 등의 새 근로 가이드라인을 전직원에게 전달했다. 연차수당, 야근수당 등 비용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구조조정도 활발한 상황이다. 올 3월말 기준으로 매출 기준 100대 기업 중 51곳의 직원 수가 지난해 말보다 줄었다.
삼성SDI가 케미칼사업부 매각 등에 따른 사업부 축소로 1386명, 삼성물산 610명, 삼성엔지니어링 520명, SK하이닉스 517명, 이마트 441명, 현대중공업 394명, 대우조선해양 380명, 두산인프라코어 367명, LG이노텍 317명 순으로 3개월 사이 300명 이상 사라진 것.
게다가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조선·해운업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라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듯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길어진 휴가를 편한 마음으로 사용하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하다 보니 휴가증가, 야근금지 등 직원 복지가 향상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며 “여름휴가가 늘어난 속내를 본다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