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 되면서, 대우조선에 대해 수조원대 공적자금 지원을 결정한 ‘청와대 서별관회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비밀회의에서 천문학적 자금 지원이 결정된 배경을 두고 여러 의문이 나온다. 청와대가 대우조선의 부실을 감지하고도 지원을 결정했는지, 회사 측의 허위 보고에 속은 것인지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청와대→산업은행→대우조선으로 연결된 ‘낙하산 인사’가 부른 참극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날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CNB=도기천 기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원대 지원이 결정된 청와대 서별관회의의 참석자들. 이들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지원을 결정했는지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사진=연합뉴스, CNB포토뱅크)
비밀회의는 왜 알려졌나
서별관회의는 행정부 경제사령탑(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주축으로 열리는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를 이른다. 청와대 본관 서쪽의 회의용 건물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경제정책 조율을 목적으로 시작돼 노무현 정부 때에 이르러 정례화 됐다.
회의 내용은 철저히 보안에 부쳐진다. 회의록, 문건 등은 물론 참석자 명단조차 남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랬던 서별관회의가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불거지면서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의 입을 통해 지난달 세상에 알려졌다. 홍 전 회장이 대우조선에 대한 관리책임, 부당한 금융지원 등으로 인해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자 ‘본인은 들러리였다’는 취지로 언론에 회의내용을 폭로한 것.
대우조선은 그동안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등을 통해 7조원대의 공적자금을 수혈 받았지만 매년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고 있는 부실기업의 대명사다.
검찰은 대우조선이 영업이익을 과대 계상하는 수법의 분식회계를 통해 산업은행으로부터 계속 자금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회계조작을 통해 재무구조를 허위로 꾸민 뒤 산은과 함께 정한 경영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예정원가를 조작했다는 것.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은 재임 중이던 2012∼2014년 해양플랜트 사업이나 선박 사업에서 예정된 원가를 임의로 축소한 뒤 매출액을 과대 계상하라고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분식회계를 거쳐 부풀려진 금액은 매년 공시된 회사 사업보고서 등에 자기자본인 것처럼 반영됐는데, 규모가 3년간 5조4천억원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의 관리 책임론이 불거지자 홍 전 회장이 입을 연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대 부실을 회계조작으로 감췄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직 대표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4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하고 있는 고재호 전 사장(왼쪽).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남상태 전 사장(오른쪽)이 검찰에 소환됐다. (사진=연합뉴스)
홍기택 혼자만 살겠다?
홍 전 회장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2일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별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산업은행 등을 통해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유상증자와 출자전환 포함)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홍 전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이미 지원을 결정한 사안이며,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고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 문건에는 은행별 지원 금액까지 적혀 있었다. 그저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
이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 결정이 국책은행의 의견을 묻지 않고 협의 없이 진행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으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도 “채권단의 협의를 거친 것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홍 전 회장은 해명 자료를 통해 “관계기관 간 협의조정을 통해 이루어진 사항이다.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한발 물러섰다.
홍 전 회장의 오락가락했던 태도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들을 낳고 있다.
대우조선에 3조원 이상의 부실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 시장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7월경이었다. 서별관회의는 이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 열렸다. 그 3개월 동안 산은이 실사를 진행하며 구조조정 방향을 검토했다.
당시 산은은 해외 자회사를 포함해 대우조선에 대한 대규모 실사를 하면서 추가 부실 가능성과 규모를 따져보고, 필요한 지원의 방식과 크기 등 회생 방안을 검토했다. 뒤이어 수출입은행도 별도 실사에 돌입했다. 당시 이들 은행이 파악한 대우조선의 부실규모는 4조원 대에 이르렀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당시 채권단은 대우조선에 대해 인력구조조정, 자산매각, 임금삭감, 노사자율협약 등 강력한 자구안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자구안 수용이 전제가 돼야 추가 자금 투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돌연 서별관회의에서 4조2천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홍 전 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서별관회의에서 정부 방침을 처음 알았다. 산은에서 얼마, 수은에서 얼마 하는 것까지 정해져서 왔다”며 윗선에서 미리 모든 걸 정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당시 서별관회의의 문건에 ‘대우조선에 5조원 이상의 부실이 현재화되어 사실 관계 규명을 위해 감리가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분식회계 가능성을 미리 눈치 채고도 지원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자구안의 핵심인 노사협약이 청와대 결정이 있고 난 이후에 추진된 점도 의문을 더한다. 쟁의행위 금지, 임금동결 등을 골자로 하는 노조 측의 동의안은 청와대 회의 나흘 뒤에야 채권단에 제출됐다.
이는 대우조선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놓인 ‘조선 빅3’의 구조조정 플랜과 비교해도 형평에 맞지 않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경우,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재무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게 채권단과 당국의 현재 입장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단 한 푼의 공적자금도 지원받지 못한 채 전 직원의 10%(약 3000명) 감축, 알짜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 매각 등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업계 고위관계자는 CNB기자와 만나 “대우조선은 채권단과의 자구안이 합의되기도 전에 수조원대 공적자금 지원이 결정 됐는데, 다른 조선사들은 아무런 정부지원 없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며 “왜 유독 대우조선에 대해서만 정부·채권단이 관대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남문 앞 점심시간 풍경. 그동안 회사가 회계 조작을 통해 부실을 감춰온 터라 실제 부실 규모는 예측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친박 입김은 실제 있었나
이처럼 정부가 서둘러 대우조선을 살리고자 결정했던 이유는 뭘까. 이는 당시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우조선이 위치한 거제조선소는 부산과 거가대교로 연결돼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다. 대우조선 종사자는 1만3700여명(2015년 6월기준)인데, 하청·협력업체 종사자 및 가족까지 합치면 수십만명에 이른다.
부산지역의 국회의원 의석수는 18석. 거제와 통영을 합치면 20석에 이른다. 서별관회의가 열릴 당시 이 지역 대부분 의석은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었고, 부산에 지역구를 둔 5선의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 대표였다.
당시 부산·거제 지역에서는 대우조선에 대한 조속한 정부지원을 요구하는 민원이 봇물을 이뤘고, 서별관회의의 결정은 4.13총선을 6개월여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
정치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부산지역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회의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친박 실세들이 대거 참여한 점도 이런 의혹을 더한다.
부산 정가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무너지면 선거를 접어야 할 판인데 이 지역 의원들이 가만있었겠나. 워낙 부실이 큰 기업이라 대놓고 지원요청은 못했지만 물밑에서 정부에 상당한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전했다.
한 중진의원은 CNB에 “의원들 간에 서로의 지역민원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신사협정이 있다. 연말에 정부예산 수립 때 쪽지예산(쪽지에 써서 지역구 예산을 밀어 넣는 행위)을 묵인해주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대우조선의 지원 결정에 정치권이 크게 반발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차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상남도 거제 출신으로 부산에 지역구를 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대우조선 노조와의 간담회에서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3년에는 STX조선해양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부산·경남 지역구 의원 7명이 금융위원장을 불러 ‘신속한 자금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전 사장(왼쪽)과 김갑중 대우조선해양 전 부사장.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의 김 전 부사장은 이번 대우조선 사태로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에 구속됐다. 산업은행 퇴직임원들이 대우조선 요직에 등용 되면서 대우조선의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관치(官治)’ 꼭지점은 누구?
한편으로는 서별관회의의 결정을 ‘낙하산 인사가 부른 비극’으로 규정짓는 시각도 있다. 산은이 청와대·정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가 오늘날 대우조선 사태를 불러왔다는 해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국감 때 산은으로부터 제출받은 ‘대우조선해양 자문 및 고문현황’에 따르면, 대우조선 부실의 큰 책임이 있는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을 비롯해 산업은행과 정부고위관료 출신 인사 등 60명이 2000년 이후 대우조선과 대우조선 자회사들의 고문, 상담역, 자문역을 역임했었다. 이들은 이름만 올려놓고 억대 연봉과 차량, 법인카드, 자녀학자금까지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산은 출신들이 대우조선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김유훈 전 산업은행 재무관리본부장, 이윤우 전 산업은행 부총재, 김갑중 전 부행장, 허종욱 전 이사 등이 고문·자문역 등을 역임했다. 산은에서 기업금융4실장을 지낸 권영민 씨는 대우조선의 감사위원을 역임했다.
이들 중 김갑중 전 부행장은 최근까지 대우조선의 재경실장(부사장급)을 맡고 있다가 이번 대우조선 사태로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에 구속됐다.
대우조선의 윗선인 산은의 인사권은 청와대가 쥐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불리며 금융계 4대천황으로 불리던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그의 뒤를 이어 2013년 취임한 홍기택 전 회장 모두 낙하산 논란에 휩싸여 금융노조와 시민단체로부터 거센 사퇴 요구를 받았던 인물들이다.
결과적으로 퍼즐을 조합해보면 정부가 산은을 통제하고, 산은은 대우조선에 낙하산으로 퇴직임원들을 내려 보냈다. 이런 가운데 천문학적인 회계조작이 이뤄졌고, 금융당국은 산은을 통해 다시 4조원대 추가 지원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청와대(금융당국)→산업은행→대우조선→산업은행’으로 연결된 고리 속에서 수조원대의 국민세금이 증발한 것. 검찰 수사가 대우조선 직원들의 분식회계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과거 여러차례 대기업 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는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교수(수원대 경제금융학과)는 5일 CNB와 만나 “이번 대우조선 사태는 관치금융과 정치권의 모럴헤저드가 낳은 총체적 부정·부패의 결과”라며 “법·제도 개혁 이전에 관피아·금피아 모두를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의지와 실행이 중요하다. 대충 넘어갔다간 제2,제3의 대우조선은 한국사회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