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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재벌들, 굳게 닫힌 ‘곳간 문’ 열지 않는 이유

금리 내려도 예금 되레 증가…투자·소비 ‘꽁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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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7.04 11:43:10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시중 은행에 뭉칫돈 예치금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CNB포토뱅크,연합뉴스)

정부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렸지만 갈 곳 없는 자금이 은행으로 계속 몰리고 있다. 기업과 개인 모두 경기 불안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은행에 돈을 쌓고 있는 것.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저금리 정책의 당초 취지는 무색해진지 오래다. 한국경제가 이미 디플레이션(경기·물가 정체)에 접어든 걸까. (CNB=도기천 기자)

더커진 디플레 공포…은행에 돈 몰려
투자·소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악화 
주식·부동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한국은행이 지난달 9일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1.25%로 내린 뒤, 주요 은행들도 수신상품 금리를 일제히 내렸지만 은행 예금은 오히려 늘어나 금융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린 지 일주일 만에 주요 대형은행의 수신액은 10조원 넘게 순증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원화예수금 잔액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지난 9일 973조6249억원에서 5영업일 만인 16일 984조401억원으로 10조4152억원 증가했다. 

이 중 조달 원가가 낮아 은행의 핵심 이익으로 간주되는 요구불예금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 예금은 예금주가 지급을 원하면 은행이 언제든지 예금액을 지불해야 해 금리가 연 0.1% 이하 수준으로 낮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같은 기간 383조1222억원에서 390조124억원으로 6조9802억원 증가했다. 

농협은행이 3조7684억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KEB하나(1조4820억원), 우리(1조2900억원), 신한(9721억원), KB국민은행(5323억원) 순으로 증가했다. 

특히 10억원 이상의 고액 예금 계좌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권에서 10억원이 넘는 금전신탁·저축성예금·양도성예금증서의 계좌 잔액은 총 547조4820억원에 이른다. 이는 2014년 491조1510억원 대비 11.5%(56조3310억원)나 늘어난 수치다. 

10억원 이상 계좌의 대부분이 기업자금이라는 점에서, 최근 몇년 간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크게 증가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내유보금은 직접적인 생산 투자에 쓰이지 않는 잉여 자산을 이른다.

김현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835개 상장사 전체 사내유보금은 2008년 326조원에서 2014년 845조원으로 7년간 519조원(158.6%)이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0대 재벌들의 사내유보금은 549조6326억원(2015년 말 기준)으로 1년 전보다 46조원이나 늘었다. 
 

▲투자할 곳이 마땅찮은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사내유보금이 급증하고 있다. 경제시민단체들은 사내유보금을 투자·생산활동에 사용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선·해운·철강…굴뚝산업 신화 사라져  

이런 지표들을 종합해보면, 기업·개인 할 것 없이 투자·생산활동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 접어들었지만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은행에 목돈을 맡기는 ‘파킹’ 현상만 강화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저금리 정책을 통해 예치된 자금을 부동산·주식·기업투자 등으로 유도하겠다는 당국의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에서 기업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이 설비·건설·무형자산에 투자한 액수를 뜻하는 총고정자본형성 비중은 지난해 GDP 대비 29.1%로 전년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1976년(26.4%) 이후 3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투자 비중은 2008년(31.4%) 세계 금융위기 이후 7년 연속 내리막길이다.  

소비 심리는 외환위기(IMF사태) 때보다 더 얼어붙었다.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49.8%)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절반 이하(49.5%)로 내려왔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나라 안팎의 심각한 경제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는 조선·해운·철강 분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부동산·건설 경기가 냉각되고 있다.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가 인력감축 등 강도 높은 자구책 시행에 돌입했으며, 이미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사태로 더 불확실성이 커졌다. 지방에서는 미분양이 증가하면서 건설사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도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영국의 브렉시트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 중국 경제 불안 등으로 인해 국내외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9일 기준금리를 1.25%로 전격 인하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의 대출 광고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특히 가계부채 증가는 한은의 통화팽창 정책을 무색케 하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올 1분기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223조 7000억 원으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가계빚 증가는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며 돈을 풀어 소비를 촉진(통화팽창)하려던 금융당국의 생각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돈이 돌지 않아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디플레이션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4일 CNB에 “적절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개인과 기업이 은행에 돈을 묶어 두고 있는데, 이런 투자·소비 위축은 ‘성장률 하락→기업투자 감소→고용 감소→가계소득 감소→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며 “금리정책으로는 한계가 뚜렷해진 만큼 미래먹거리산업 활성화 등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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