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과 관련, 의료계와 보험사계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열린 제도개선 정책세미나. (사진=연합뉴스)
금감원이 과잉진료비 청구에 대한 제재에 나서면서 환자와 보험사, 병원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자신이 받은 진료가 과잉진료가 돼 보험금을 받지 못하거나 자칫 ‘보험사기’로 오해받을 수 있는데다,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두고 병원-보험사가 서로 맞서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모두 윈윈하는 전략은 없는 걸까. (CNB=손강훈 기자)
횟수·금액 늘리고 미용치료도 청구
보험대상 항목 두고 병원·보험사 갈등
금감원 허위청구 제재 나섰지만 논란통상 보험사를 통해 가입하는 민간의료보험은 실손보험으로 불린다. 병·의원 및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최대 90%까지 보상하는 보험으로 ‘실제 손실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줄여서 ‘실손’으로 불린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실제 손실’(실손)이냐다. 이를 두고 환자(보험소비자)와 병원 간의 갈등은 지난 수십년 간 계속돼 왔다. 환자는 정당한 치료 목적으로 각종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았다며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하지만 보험사는 이 중 일부는 병의 치료와 관계없는 불필요한 진료서비스로 규정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 분쟁이 계속돼 왔다.
대표적인 분쟁 항목이 도수치료(물리치료사 맨손 통증 치료), 프롤로테라피((인체에 무해한 주사액 주입해 흉터조직 재생), 체외충격파치료(환부에 충격파 전달), 초음파치료, 고주파치료, 치료목적의 성형술 등이다.
금감원 칼끝 어디로?결국 금융감독원이 직접 나섰다. 금감원이 개입한 건 병원과 환자가 공모해 허위영수증을 발급하는 수법이 비일비재하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은 이런 행위를 사실상 보험사기라고 판단, 적발해 검찰에 고발조치 하고 있다.
금감원이 최근 적발한 대표적인 사례는 이렇다. 경기도 A의원은 무릎관절염으로 26일간 입원한 환자 B씨의 진료비 영수증을 체외충격파치료 177회, 프롤로테라피 주사치료 25회 등 횟수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발급했다가 금감원에 적발됐다.
A의원의 경우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을 유치한 후 고액의 시술 또는 약물치료 횟수나 금액을 과다하게 늘려 허위진료비 영수증을 발급, 환자들이 부풀려진 보험금을 타내도록 도와줬다.
B씨는 이 허위진료비 영수증으로 보험금을 받은 후 실제 치료비를 제외한 차액은 생활비 등에 사용했다. A의원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환자 소개비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 “금감원 조치는 눈가리고 아웅”이처럼 과잉·허위진료로 인한 보험금 편취가 문제가 되자 금감원은 최근 “질병치료 목적으로 보기 어렵거나 치료 효과 없이 반복적으로 시행된 도수치료는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고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료가 과잉청구 될 경우 전체 보험료 인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선량한 다수 보험가입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보험사의 지출(보험료 지급)이 증가되면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단 얘기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과다한 보험료 지급 등으로 인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보험사들의 손해율은 100%를 넘은지 오래다. 손해율은 수입보험료에서 지급되는 보험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며 100% 넘으면 ‘적자’를 의미한다.
2015년 기준 현대해상의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153.9%에 달했으며, 흥국화재 153.1%, 한화손보 148.8%, 롯데손보 136.4%, 메리츠화재 133.7%, 동부화재 130.5%, KB손보 128.8%, AIG손보 126.5% MG손보 119.9%, 삼성화재 105.8%, 농협손보 88.8% 순이었다. 손보사(손해보험사)의 경우 농협손보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 모두 손해율이 100%를 넘었다.
생보사(생명보험사)의 경우 손보사에 비해 실손의료보험 판매기간이 짧아 손해율이 낮게 나왔지만 전반적으로 손해율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흥국생명 108.7%, 신한생명 107.8%, KDB생명 104.3%, 동양생명 103.9%, 동부생명 101.8%, DGB생명 101.7%로 100%가 넘었고 삼성생명, 농협생명, 한화생명, 알리안츠생명, 현대라이프, 미래에셋은 90%를 넘었다. KB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88.8%, 87.9%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금감원은 실손보험금 과잉청구 기준 강화, 금융위는 실손보험 보장범위를 줄이는 방식의 구조 개선 등의 방안을 내놓았지만 보험업계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CNB에 “실손보험은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고 있는 사업부문이며, 보험사들은 그동안 상당히 손해를 봤다”며 “보험료를 현실성에 맞게 올릴 수 있도록 하고 비급여(보장대상 제외) 진료 항목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10년간 재미 봐놓고 딴소리”하지만 의료계는 금감원 조치(과잉 도수치료 보험금 지급 제외) 등에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지난 16일 열린 실손의료보험 제도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실손보험의 설계에 대한 진단 없이 의료기관의 잘못으로 전가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며 “보험사들이 10년 동안 의료보험을 판매하면서 수익을 보고나서 이제 와 손해가 발생하니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비급여 진료비를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실손의료보험은 현재 가입자가 3200만명을 넘어서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고 불릴 만큼 대중적인 보험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치료와 과잉진료 간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금융·의료당국 간 긴밀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고 있지만 워낙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해 접점을 못 찾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CNB와의 통화에서 “실손의료보험 관련 문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보험사와 의료계의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하지만 양측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