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유착한 김앤장을 빗댄 포스터. 재벌책임공동행동이 제작했으며, SNS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 로펌이자 글로벌 100대 로펌 중 7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앤장(Kim & Chang)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변론 과정에서 증거를 왜곡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야당과 노동·시민단체들이 김앤장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앤장에게 법률대리를 맡겼다가 총수가 중형을 선고받은 일부 대기업들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CNB=도기천 기자)
총수재판 연간 수임료 100억 호가
옥시 변론조작 의혹 등 연일 구설수
그래도 믿을건 ‘전관파워’ 김앤장 뿐
김앤장은 7백여명의 변호사가 소속된 국내 최대 로펌 기업이다. 변호사 1인당 매출액도 가장 높다. 1973년 김영무 대표변호사가 설립했으며, 같은해 장수길 변호사가 합류해 ‘김앤장’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김앤장은 법적으로는 ‘합동 변호사 사무실’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실제 업무에 있어서는 로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대부분의 변호사 사무실이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 일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사무실이 광화문 인근에 있는 점도 특이하다.
지난해 미국 법률 전문지인 ‘아메리칸 로이어’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로펌 순위에서 국내 로펌 중 유일하게 71위에 올랐으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잘나가던 김앤장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가해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변론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다 구설수에 올랐다.
독성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포함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은 지난 2000~2011년 제조돼 600여만 개가 판매됐고, 사망자 73명을 포함해 총181명의 피해자를 냈다.
하지만 2011년 옥시의 의뢰로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 평가’ 연구 용역이 이뤄졌는데, 그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는 취지의 보고서가 나왔다. 검찰은 옥시로부터 뒷돈을 받고 보고서를 작성한 조모 서울대 교수를 증거 조작 혐의로 구속했다.
조 교수는 “옥시 측에 문제의 살균제가 전신독성 유발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김앤장이 재판에 유리한 부분만 발췌해서 법원에 제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자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김앤장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300여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재벌이 문제야! 재벌이 책임져! 공동행동(재벌책임공동행동)’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김앤장 본사 앞에서 “재벌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김앤장은 대한민국을 재벌 천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며 김앤장의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집회와 거리캠페인을 이어갈 방침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들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관계자들이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김앤장 본사 앞에서 김앤장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 의혹이 있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부 대기업들 “김앤장 못미더워”
여론이 들끓자 옥시는 김앤장과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피해자 단체 등에 따르면 옥시는 최근 진행 중인 피해보상 협의 과정에서 김앤장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기업인 옥시는 국내 최대 로펌을 통해 이른바 ‘김앤장 효과’를 기대했지만 전직 대표이사와 임직원이 무더기로 구속된 데다, 연구보고서 조작 의혹까지 불거지자 결국 옥시와 갈라선 것이다.
총수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일부 대기업들도 김앤장에 대한 감정이 좋은 편은 아니다. 3년 전 배임·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CJ 이재현 회장이 구속기소 되자, CJ 측은 변론을 김앤장에 맡겼다. 하지만 엄청난 변호사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에게 중형이 선고되자 난감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CJ 측은 “워낙 사건 초기부터 김앤장이 사건을 맡아와 이제 와서 바꾸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CJ는 핵심적인 대응은 여전히 김앤장에게 맡기고 있지만 사안별로 광장이나 화우 등 해당 분야에 강점이 있는 로펌을 그때그때 보완 배치하는 식으로 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조석래 회장이 탈세·횡령·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뒤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효성도 사건 초기에는 김앤장 만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가 이후 태평양을 추가 선임했다. 김앤장 입장에서는 연속적으로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법무팀 “김앤장 없인 못살아”
하지만 신동빈 회장과 핵심계열사 임원들이 사법처리 될 위기에 놓인 롯데그룹은 최근 김앤장에게 변론을 일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앤장은 검찰 수사의 핵심 표적이자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본부와 신 회장 부자에 대한 변호를 맡을 예정이다.
김앤장 외에도 태평양, 광장, 세종 등으로 구성된 매머드급 변호인단이 꾸려졌는데, 태평양과 세종은 롯데쇼핑과 롯데홈쇼핑, 롯데케미칼 등 핵심 계열사들을 나눠 맡고, 광장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장남 회사를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기업 입장에선 김앤장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막강한 ‘전관 파워’를 앞세우고 있어 김앤장을 배제하고 재판을 벌이기는 부담이다. 기업 법무팀 입장에선 설령 일이 잘못되더라도 김앤장이 있으면 방패막이가 돼 줄 수 있지만, 김앤장 없이 재판을 진행했다가 행여 잘못될 경우 책임이 고스란히 자신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각종 구설에도 불구하고 김앤장의 몸값은 천문학적이다. 대기업 총수들 재판의 경우 연간 선임료가 1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21일 CNB에 “옥시 사건 등으로 김앤장의 체면에 손상이 간 것은 맞지만, 최고 로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재벌들의 절박한 심리 때문에 여전히 김앤장의 독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교수(수원대 경제금융학과)는 CNB에 “태생이 금수저인 재벌가 오너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감옥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심리를 이용해 김앤장이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며 “결국 이런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재벌과 유착한 김앤장의 도덕성을 끊임없이 질타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한층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