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주계와 친노계 간의 갈등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 2002년 대선 정국에서 구민주계는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노무현 대선 후보를 정몽준 의원으로 교체하려 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양 진영의 앙금은 최근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창당과 호남 석권으로 다시 점화됐다. 2002년 11월15일,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에 합의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왼쪽)가 포장마차에서 소주 원샷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가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서 친노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사실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 등 여권 지도부조차 이날 행사에서 환영받는 분위기였지만 유독 국민의당 지도부만 험한 꼴을 당해 그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친노 지지자, 유독 ‘국민의당’만 거부
‘안철수=구민주계=호남’ 인식 팽배
야권 지도부 “배타주의 극복해야”
이날 추도식의 핵심 주제는 ‘화합과 통합’이었다.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은 추도사에서 시종일관 노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였던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는 과거에는 순차적으로 면담 했던 관행을 깨고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지도부와 동시에 면담했다. 화합의 정신을 강조하려는 취지였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입장할 때는 일부 참가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는 모습도 보였다.
비노(비노무현) 인사들을 향한 물 세례 등 마찰이 빚어졌던 지난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하지만 국민의당 지도부가 입장할 때는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안 대표 일행이 추도식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사저로 들어가려 하자 일부 참석자들이 “무슨 자격으로 왔나” “물러가라”고 소리 쳤고, “개XX”, “양아치” 등 노골적인 욕설도 나왔다. 박지원 원내대표에게도 “호남으로 가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노무현재단 측 관계자들이 자제를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부 참석자들은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국민의당 지도부는 추도식 후 경호를 받으며 쫓기듯 현장을 떠나야 했다. 경호원들은 우산을 준비해 혹시나 모르는 물세례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정청래 의원 등 친노 핵심인사들이 추도식장에 들어설 때는 곳곳에서 “문재인, 안희정, 정청래”를 연호하며 환영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걷고 있다. 곳곳에서 안 대표를 향한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혹시 모를 ‘물 세례’를 막기 위해 경호팀이 우산을 펼쳐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년전 후단협 악몽 살아나”
친노 지지자들이 유독 국민의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구민주계와 친노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배경이 되고 있다.
양 세력 간의 갈등은 2002년 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15%대로 주저앉자 당내 반노(반노무현)·비노(비노무현)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몽준 의원으로 후보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미 노무현 후보가 국민 경선을 통해 야권을 대표하는 주자로 선발된 상황이었음에도, 정몽준 의원을 밀어주기 위한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가 출범하자, 오늘날 친노 세력의 전신인 노사모 그룹 등이 크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집단 탈당 사태가 빚어지는 등 민주당은 엄청난 내홍에 휩싸였다.
중도파가 나서서 “일단 당이 단합해 노 후보를 지원하고, 그래도 지지도가 오르지 않으면 후보 양보를 요구하자”는 중재안을 내면서 가까스로 사태가 봉합되는 듯 했다.
하지만 대선 당일 정몽준 의원이 노 후보에 대한 지지철회를 선언하면서 결국 친노와 비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3년 말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내 개혁파인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김영춘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노 대통령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 우리당에 입당했다. 현재의 ‘586’(당시 486)으로 불리는 운동권 출신들과 친노계가 당의 주도권을 잡았다.
구민주계는 새년천민주당에 남아 명맥을 이어갔지만, 9석짜리 ‘꼬마 민주당’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한 것을 문제 삼아 한나라당과 손잡고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2008년 양측이 다시 손잡고 ‘통합민주당’을 출범시켰지만 갈등이 봉합되진 못했다. 민주통합당, 새정치연합(안철수신당),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치며 모였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 결국 지난 2월 구민주계 중심의 국민의당과 친노계 중심의 더불어민주당으로 갈라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맨 왼쪽)가 친노 지지층을 의식한 듯 ‘님을 위한 행진곡’을 주먹을 쥔 채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친노 vs 구민주 “화합 불가”
이 과정에서 안철수 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이 참패한 뒤 문재인 대표 책임론이 불거지자 안 대표가 앞장서서 문 대표 공격을 주도했다.
문 대표 등 친노계가 끝까지 사퇴를 거부하자 탈당해 신당을 창당했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친노계는 문 대표를 흔드는 안철수세력과 구민주계를 13년 전의 ‘후단협’에 비유하며 비난했고, 구민주계는 ‘친노패권주의’라며 맞섰다.
안철수·천정배·박지원·김한길 등을 중심으로 지난 2월 창당한 국민의당은 두 달 뒤 열린 총선에서 호남 지역을 석권하며 38석을 확보해 원내 제3당 자리를 굳혔다.
이처럼 ‘안철수=구민주계=호남’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이번 추도식에서 안 대표가 친노 지지층의 돌팔매를 맞게 된 것이다.
또한 최근 국민의당 원내대표에 선출돼 제2전성기를 맞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도 이번에 친노 참석자들의 주 타깃이 됐다.
그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제2대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실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을 지내며 호남 맹주로 자리 잡은 인물이다. 과거 민주당(2010∼2011년), 민주통합당(2012년) 시절 각각 원내대표를 두 차례 역임한 바 있어, 사상 처음으로 원내대표 3선의 진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2월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당권 대결을 벌여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으며, 이후 당내 패권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다 올해 초 더민주를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2002년부터 14년 간 한결같이 친노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CNB에 “친노와 구민주계는 한 순간도 화합을 이루지 못하며 대립해왔다. 구민주계가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부활하자 상대적으로 노무현 지지층이 반발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때 노사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친노 지지층이 (구민주계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노 대통령의 생전 유지였던 국민통합 정신에 어긋난다”며 “오죽하면 친노 수장격인 문재인 전 대표조차 (어제 추도식에서) ‘친노라는 말로 그 분(노무현)을 현실정치에 끌어들이지 말아달라’고 당부 했겠는가”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