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 당시 은행과 증권사들의 고객유치 홍보 사진들. 금융사들은 고금리 수익을 앞세웠지만 막상 실상을 보니 저축은행 특판 금리 보다 예금 수익률이 낮았다. (사진=각사 제공)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열풍이 금융권을 강타하며 가입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시중 은행들이 내놓은 ISA 연결상품의 대부분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인 것으로 CNB 취재결과 확인됐다. 시중 금리가 역대급 최저 수준인데다, 주식시장 정체로 원금손실 우려까지 나오면서 예치금이 1만원도 안 되는 깡통계좌만 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증시·금리 내리막…투자 매력 사라져
ISA예금, 제2금융권 특판 보다 못해
매일 상품 변동…은행 수시로 방문해야
금융감독원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실에 제출한 ‘ISA 금융사 가입금액별 계좌 현황 자료’를 보면 처음으로 ISA가 출시된 지난 3월 14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1개월간 은행권에서 개설된 ISA는 136만 2800개에 달했다.
시중 6개 주요은행(신한·KB국민·우리·NH농협·KEB하나·IBK기업)의 ISA 목표 계좌수가 각각 30~100만개 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최소 200만개 이상의 계좌가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계좌의 74.3%가 예치금액이 1만원도 되지 않는 ‘깡통계좌’였다.
이는 치열한 계좌 유치경쟁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CNB가 23일 시중 은행들의 ISA상품을 비교해본 결과, 서로 간에 차별성을 찾기 힘들었다.
우선 예금상품의 경우, 대부분 은행들이 시중금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ISA의 운용 원칙이 타사 금융상품을 가져와서 파는 형태다보니, 이미 시중에 공개된 금융상품들이 주를 이뤘다.
신한은행의 경우, 우리 국민 하나 기업 농협 부산 경남 대구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을 팔고 있는데 금리가 연1.4~1.6% 수준에 불과했다. IBK저축은행과 KB저축은행의 예금상품도 취급하고 있는데 연1.7% 수준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현재 연1.5%다. 예금상품의 금리가 기준금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하나·국민·우리 등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부분 은행들의 ISA정기예금 금리가 연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제2금융권의 특판예금은 2%를 넘고 있다.
OK저축은행은 최근 배구단 2년 연속 우승을 기념해 연 2.3% 특판예금을 출시한 바 있으며, SBI저축은행 서울 종로·마포지점은 연 2.2~2.3%의 예금상품을 판매 중이다. 일부 신협과 새마을금고의 특판금리도 2.2~2.3%선이다.
따라서 ISA계좌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 특판예금을 찾는 것이 수익률 면에서 더 유리한 상황이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가입 경쟁에 휩싸인 여의도 금융가. (사진=CNB포토뱅크)
미끼 상품들 자취 감춰
금융사들이 ISA 가입 초기에 내놨던 원금보장형 ELB(주가연계사채), 특판 RP(환매조건부 채권) 등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일부 은행과 증권사들을 지난 3월 ISA 사전예약 고객을 대상으로 코스피200 지수에 연동해 연 3%대 금리를 보장하는 ELB와 특판 RP를 1인당 500~1000만원 한도로 판매했지만, 현재는 한도액을 다 채워 판매하는 금융사를 찾기 힘들다.
아직 일부 금융사가 취급하고는 있지만 가입 금액이 500만원 안팎으로 한정 된데다, 전체 설정액이 수억원 대에 불과해 며칠이면 판매가 종료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NB에 “고금리 RP와 원금보장형 주가연계 상품은 자주 나오지 않으며 판매금액이 한정돼 있어 일찍 소진 된다”며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 상품 성격”이라고 털어놨다.
결국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ISA 상품은 대부분이 주식형 펀드다. 주식시장이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어 이 상품들에서 수익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ISA가 도입된 지난 3월 14일 종합주가지수는 1972포인트였는데 현재는 1955(23일 종가기준)로 소폭 내려간 상태다. 코스피 우량주나 종합지주지수에 연동된 펀드에 가입했다면 현재 시점에서 손실을 입었을 수도 있다.
금융정보업체 애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내주식형 펀드의 총 수익률은 -11.39%였다. 펀드에서 수익을 내기가 힘든 상황이 계속돼 온 것이다.
더구나 일임형 ISA의 경우, 투자 위험도에 따라 0.1%~1%의 계좌운용수수료를 받고 있다.
신탁형은 고객이 지정한 금융상품으로 운영되므로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적지만 일임형은 투자를 위탁받은 금융사가 알아서 자금을 굴려주므로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일임형의 경우, 수수료를 감안하면 최소 3.5%이상의 수익이 나와야 제2금융권 예금금리 수준이 된다고 지적한다. 저축은행 특판금리가 2%대 중반이므로 수수료를 감안하면 3.5% 수익은 나야 제2금융권 예금보다 조금 낫게 된다는 얘기다.
▲서울시내 한 은행의 ISA 판매 창구. (사진=연합뉴스)
사실상 실패한 금융정책?
투자금 운용을 위해 매번 은행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시중은행들 중에서 인터넷뱅킹을 통해 ISA와 연계된 금융상품에 가입 또는 변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은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나머지 은행들은 직접 내방해서 상품에 가입·변경 할 수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CNB에 “예금, 적금, 펀드 상품들이 수시로 바뀌는데다, 규정상 투자성향분석에 고객이 동의한 후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어 고객들에게 직접 방문해서 상품에 가입해 달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익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면 수시로 은행을 방문해 상품을 자주 변경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수익규모가 미미하다. 금융당국이 정한 ISA의 투자 한도는 연간 2000만원씩 5년간 최대 1억원까지다. 재형저축(연1200만원 한도), 소득공제장기펀드(소장펀드, 연600만원 한도)와 함께 통합 적용되므로, 재형저축과 소장펀드 한도액을 다 채웠다면 ISA에 넣을 수 있는 돈은 1년에 200만원 뿐이다.
연간 최대 한도인 2000만을 넣어 연 3%의 수익을 거뒀다고 가정해도 수익금이 60만원에 불과하다. 이자소득세 15.4%가 감면되므로 세금 혜택은 9만2400원 수준이다. 은행을 들락거리는 번거로움,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몇 만원 혜택보자고 상당한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원금손실 우려도 있다. 계좌수가 수백만 개에 이르지만 금액은 늘지 않고 있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직장인 정의성(44) 씨는 “원금이 보장되면서 은행이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여유자금이 있으면 (1인당 5000만원까지) 원금과 이자가 보장 되는 제2금융권 특판 예·적금에 드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