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공사가 전세보증금을 줄이고 월세를 늘리는 방향으로 임대정책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임대아파트의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관리하는 임대주택의 월세 체납자와 체납액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SH공사가 전세보증금을 줄이고 월세(월임대료)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사실을 CNB가 단독 확인했다. 더구나 월세 이자율을 연 6.7%의 고금리로 책정해 가뜩이나 힘든 처지에 놓인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더 팍팍하게 됐다. (CNB=도기천 기자)
SH공사, 세입자에 '월세 정책 확대' 통보
서울시 “부채규모 커져 불가피한 조치”
금리 1.5%시대에 연6.7%로 월세 매겨
SH공사는 지난달 말~이달 초 약 17만호의 임대주택(국민·공공임대) 거주자들에게 앞으로 임대료의 60%까지만 ‘월세→전세’ 전환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그동안은 월세와 전세 간의 100% 상호전환이 가능했다.
가령 전세보증금 2천만원에 월10만원의 월세를 납부하고 있는 세대주 박모 씨의 경우 기존에는 월세 10만원을 전액 전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박씨가 월세 10만원을 모두 전세로 돌리면 추가 납부해야할 전세보증금은 1790만원이다. SH가 1790만원에 대한 연이자율을 6.7%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박씨에게 1790만원의 여유자금이 있다면 은행이 넣어둘 경우, 월 이자가 2만2000원(평균 예금금리 1.5% 적용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를 전세금으로 돌리면 매월 10만원씩 내는 월세가 사라지게 된다. 은행에 맡기는 것 보다 월 7만8000원(10만원―2만2000원) 이득인 셈이다.
하지만 SH는 이번에 월세의 전세 전환을 기본 월세의 60%까지만 가능하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이리되면 김씨의 경우 10만원의 월세 중 6만원(60%)까지만 전세전환이 가능하며, 나머지 4만원은 월세로 납부해야 한다. 여유자금이 있더라도 계속 일정부분의 월세를 내야한단 얘기다.
▲SH공사가 임대주택(국민·공공임대) 세대주들에게 통보한 내용. 앞으로 임대료의 60%까지만 ‘월세→전세’ 전환이 가능하다. 그동안은 월세와 전세 간의 100% 상호전환이 가능했다.
향후 상승분도 월세로 전환
이미 과거에 월세를 전부 전세(100%전세)로 전환한 경우에도 향후 임대료 상승분의 일부는 월세로 납부해야 한다.
국민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서아무개 씨의 경우, 전세보증금 4500만원에 월세 30만원 부담해오다 2년 전 월세를 전액 전세로 전환했다. 서씨가 추가로 납부한 보증금은 약 5500만원이었다.
서씨는 올해 연말에 SH공사와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연간소득이 기준금액 보다 다소 올라 할증료를 포함해 약 10%의 임대료를 더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략 전세보증금 450만원과 월세 3만원 가량을 더 부담해야 한다.
서씨는 이에 대비해 2년간 적금을 부어 1000만원 가량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추가 전세금 450만원과 함께 더 내게 된 월세 3만원을 전세로 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씨는 이번에 달라진 규정에 따라 상승분 중 월세 3만원은 전세로 돌릴 수 없게 됐다. SH가 서씨에게 발송한 안내문에는 “기존에 전세전환한 세대는 추후 임대료가 인상되면 인상분은 추가 전세전환이 불가하며, 월임대료(월세)로만 납부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서씨의 경우, 본인이 마련한 1000만원 중 추가전세금 450만원을 내고 남은 550만원은 그대로 은행에 두게 됐는데 은행이율이 연1.5% 안팎이라 한 달 이자가 7000원도 되지 않는다. 서씨는 당초 계획보다 매월 2만3000원(3만원―7000원)을 더 내는 셈이 됐다.
▲서울 강남구 SH공사 본관. (사진=연합뉴스)
도시 서민들, 월세 부담 커져
특히 이번 조치로 인해 월세부담이 가중되는 이들의 대부분이 하위 계층인 국민임대 거주 세대라는 점에서 ‘서민 옥죄기’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국민임대주택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70%이하인 서민을 대상으로 한 60m²(18평) 이하의 공동주택(아파트)을 이른다.
소득기준이 100%를 넘어도 입주가 가능한 장기전세주택(시프트·shift) 보다 월등히 소득수준이 낮은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다. 높은 경쟁률에 따른 청약가점 등을 고려하면 현재 대부분 거주자가 평균 소득의 50%이하로 추정되고 있다.
장기전세주택은 애초부터 전세로 입주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세로만 계약이 유지된다. 월세를 늘리기 위한 이번 조치와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이번 제도변경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 세입자는 대부분 국민임대주택 거주자다.
더구나 앞으로 전세전환 되지 않는 금액(추가인상분 포함)에는 6.7%의 월세가 적용되는 셈이 돼 고금리 논란이 일고 있다.
SH는 그동안 세입자가 전세로 전환할 때 전환금액의 금리를 6.7%로 적용해왔는데, 이는 현재의 저금리 상황을 고려하면 전환하는 게 훨씬 유리한 구조였다.
하지만 앞으로 임대료의 일정부분이 전세전환 되지 않게 되므로, 전세전환 안된 금액은 전세전환 된 부분과 비교하면 6.7%의 금리로 월세를 내는 셈이 된다.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3%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월세 부담이 커진 것이다.
그동안 연3~4%대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임대주택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는 상품을 판매해온 한 금융권 관계자는 CNB에 “시중 금리가 낮아지면서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전세를 월세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행태를 공기업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SH 측은 이번 제도변경에 대해 “임대(전세)보증금이 계속 늘어나면서 이 부분이 회계상 부채로 잡혀 공기업 부실 문제가 지적을 받아왔다”며 “최소한의 임대료 수입이 있어야 안정적인 임대주택 공급 및 관리가 가능하다. 임대주택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SH공사 임대주택의 월임대료 체납현황. 갈수록 체납가구가 늘고 있다. (자료=이찬열 의원실)
임대료 연체가구 더 늘듯
이처럼 서민들의 월세 부담이 커지게 되면, 임대료를 못내는 세대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찬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SH공사 임대주택의 체납가구는 전체 16만 4201호 중 2만 2767가구(13.8%)며 체납액은 84억 6400만원에 이르렀다. 임대료 연체 가구 수는 2010년 1만 5714가구에서 2011년 1만 7290가구, 2012년 2만 335가구, 2013년 2만 2035가구, 2014년 2만 2172가구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이찬열 의원은 9일 CNB와의 통화에서 “경기 불황과 일자리 부족으로 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거안정에 앞장서야할 서울시가 이윤이 나지 않는다고 최하위계층 서민들의 월세를 올리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번 사안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개선책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