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면세점들이 치열한 경쟁체제에 돌입하면서 공항면세점이 계륵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최근 몇년 새 시내면세점을 크게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입지조건이 좋지 않은 공항면세점이 ‘계륵’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김해와 김포국제공항의 면세구역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이 각각 오는 12일, 13일 마감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앞서 진행된 입찰도 전부 유찰됐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면세점이 왜 이런 처지로 전락한 걸까. (CNB=도기천 기자)
시내면세점 몰리며 공항 ‘썰렁’
묻지마 사재기→똑똑한 쇼핑
“남 주기는 싫고”…계륵 처지
‘닭의 갈비’라는 뜻의 계륵(鷄肋)은 ‘큰 쓸모는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이르는 고사성어다. 공항면세점이 딱 그 처지다.
두 차례나 유찰된 김해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의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3차 입찰이 진행 중이지만 분위기는 싸늘하다.
지난 2일 한국공항공사 부산지역본부에서 진행된 김해공항 면세사업자 3차 입찰 설명회에는 롯데, 신라, 두산, 시티플러스, 탑솔라 등 5개사만 참석했다.
앞서 진행된 1~2차 입찰 설명회 때는 롯데, 호텔신라, 한화, 두산, 패션그룹 형지, 에스엠, 정남쇼핑 등 7개사가 관심을 보였지만 본 입찰에는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한국공항공사는 임대료를 낮춰주는 등 파격적인 유인책을 제시한 상태다.
김포국제공항 면세점 입찰도 비슷한 분위기다. 앞서 두 번 유찰된 가운데 세 번째 입찰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29일 한국공항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김포공항 면세점 설명회에 대기업군은 롯데, 신라, 신세계, 두산, 한화갤러리아가, 중소기업군은 탑솔라, 시티플러스, 듀프리가 참석했지만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공항공사는 유찰을 막기 위해 김포처럼 임대료 인하는 아니더라도 일정부분 매출실적에 따라 사용료 등을 산정하는 방식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서울 시내면세점을 계속 늘리면서 면세점 기업들의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면세점들이 입점해 있는 건물 전경.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동대문 두산타워,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용산 아이파크몰(HDC신라면세점), 여의도 63빌딩(한화갤러리아면세점) (사진=CNB포토뱅크, 연합뉴스)
오락가락 정책 ‘불안’
공항면세점이 기업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면세점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데다, 정부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있어 ‘지속가능성’을 보장받기 힘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10년이던 특허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고 경쟁입찰로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하는 현행 관세법은 2013년에 마련됐다. 그러자 기존 사업자의 탈락에 따른 대규모 실직 사태 등 여러 문제들이 대두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월 면세점 특허 기간을 다시 10년으로 연장하고, 특허 기간이 끝나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동 갱신을 허용하는 등의 개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야당이 재벌 특혜라며 반대하고 있는데다, 이번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형성 되면서 법 개정은 안개속이다.
정부가 면세점을 계속 늘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관세청은 지난해에만 한화갤러리아, HDC신라, 두산, 신세계, SM(하나투어) 등 서울시내 신규사업자 5곳을 선정했다. 지난달에는 추가로 4곳을 더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롯데(소공·잠실 2개), 신라, HDC신라, 동화, 한화, 두산, SM, 신세계 등 9개다. 앞으로 4개가 추가되면 서울에만 13개의 면세점이 자리 잡게 된다. 국내 면세점 수는 계속 늘어나 3~4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정부는 외국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0만명 이상 증가하면 새로 면세점을 허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앞으로도 계속 면세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의 공격적인 면세시장 정책도 부담이 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면세시장 확장을 위해 수입관세를 인하했다. 일본은 면세대상 금액 기준을 대폭 완화 하는 등 면세쇼핑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다.
초라한 성적표…주가 내리막길
이처럼 면세시장이 안팎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면서 면세점 기업들의 실적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지난 1분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이 19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2.6%나 감소했다. 이는 인천공항 면세점의 비용 증가 등 핵심 사업인 면세점이 부진했던 탓이다.
새로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하나투어의 1분기 매출은 전년비 26.1%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43%나 급감했다. 증권사들은 “서울 시내면세점이 큰 폭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이 전체실적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면세점 사업의 부진은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호텔신라 등 지난해 신규사업자로 선정된 기업들의 주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기대감을 한 몸에 받으며 10만원대 후반까지 치솟았던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주가는 현재 6만원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호텔신라, 두산 등도 정부가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하향세가 뚜렷해졌다.
한국관광의 관문…아직은 매력 있어
면세점 시장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적자폭이 더 큰 공항면세점은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시내면세점 증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수백억원 규모의 임대료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롯데, 신라 등 상위 업체들은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 시내면세점 쪽으로 눈을 돌린 상태다.
그렇더라도 유통기업들이 공항면세점을 무시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다. 한국관광의 관문인 공항면세점을 통해 상품인지도를 높임과 동시에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해외 공항 면세점 입찰 참여 때, 면세점 경영 경험이 주요 평가항목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외국인들이 공항에서 ‘묻지만 쇼핑’을 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시내면세점을 찾아다닌다. 상대적으로 공항면세점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글로벌시장에서의 브랜드 홍보효과 등을 생각하면 관심을 안둘 수도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