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맨 왼쪽)과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전남 목포시 평화광장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호남 맹주로서의 위상을 과시했지만 지역주의 언행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전남 목포)의 지나친 애향심이 논란을 빚고 있다. 총선 기간 동안 수차례 자신의 고향인 전남 진도에 내려가 이 지역 같은당 후보의 지지유세를 펼친데 이어,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지난 16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진도 관광을 홍보해 누리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가 자신의 고향 앞바다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여러 번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던 박 의원이지만, ‘진도 사랑’도 날을 가려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총선 지원유세 통해 호남 맹주 과시
세월호 애틋한 심경도 애향심에 묻혀
잦은 지역감정 유발…누리꾼들 ‘부글’
박지원 의원은 지난 16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진도는 보배의 섬! 풍광이 좋아 관광객이 많습니다. 국립남도국악원 군립민속예술단의 국악 공연도 명품! 바닷가 'OO식당'에서 쫄복탕을 잡수셔야 진도관광 진수입니다. 진도로 오세요. OO식당 쫄복탕을 잡수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많은 누리꾼들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오늘 같은 날 맛집 자랑이라니” 등 박 의원을 향한 비난을 쏟아냈다.
16일은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쫄복(졸복)은 ‘작은 복어’의 일종. 참사가 일어났던 바다에서 잡힌 물고기를 추모일에 먹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글은 SNS를 통해 급속히 퍼졌다.
하지만 박 의원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월호 참사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이날 새벽 6시20분경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지만 우리는 잊어가고 있습니다. 여소야대 20대국회에서 약속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글을 SNS에 남겼다.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해석된다.
또 오전 11시경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잊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팽목항의 세월호 2주기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해수장관, 전남지사, 진도군수,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등 국민의당 광주·전남 국회의원당선자 뿐입니다. 이렇게 잊어서는 안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바르게 처리돼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날을 잊지 말자고 또 한번 강조한 것이다.
문제의 ‘쫄복 홍보 글’은 50여분이 지난 11시48분에 올라왔다.
이날 올라온 글들을 하나로 묶어서 연결해보면 ‘잊지 않으려면 많은 이들이 진도에 찾아와야하고, 사람들이 오게 하는 유인책 중의 하나가 관광’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진도 관광을 연결시킨 건 누가 보더라도 부적절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세월호 참사로 이 지역의 관광수입이 크게 줄어든데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그의 마음은 이날 올린 다른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쫄복탕을 소개하기 40여분 전에 그는 페이스북에서 진도 인근의 한 맛집을 소개했다.
그는 “목포 원도심에 위치한 42년 전통의 ‘OO식당’에서 콩나물 해장국과 콩물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에 손님들이 북적북적 특히 배달을 많이 한답니다. 목포로 오세요 ‘OO식당’에서 맛의 진수를 느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세월호 2주기인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진도 관광을 홍보하는 글을 올려 누리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출처=박지원 의원 트위터)
앞뒤 잘린 ‘쫄복탕 글’ 자업자득
박 의원의 현재 지역구는 전라남도 목포지만 그는 ‘호남의 전국구’로 통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제2대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실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을 지내며 호남 맹주로 자리 잡은 인물이다.
특히 목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진도가 그의 고향이다. 그러다보니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진상규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쫄복탕 논란처럼 지나친 애향심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여러 번 있다. 최근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보다 진도에서 출마한 국민의당 후보를 지원하는데 더 공을 들이다 ‘지역주의 선거’라는 비난을 받았다.
박 의원은 국민의당에 영입돼 처음 출마한 윤영일 후보를 돕기 위해 13일간의 공식선거운동 기간 중 3번씩이나 진도·해남 지역을 찾아 지원유세를 펼쳤다.
이곳은 한때 그와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영록 의원의 지역구였지만, 아랑곳 않고 정치신인인 윤 후보 지원에 힘을 쏟았다. 김 의원과 초박빙승부를 펼치던 윤 후보는 54.4%를 득표해 완승했다. 누가 봐도 박 의원의 영향이 컸다.
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자서전 내용에 대한 그의 비판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문 전 대표는 최근 출간된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부산의 양말 공장에서 양말을 구입해 전남지역 판매상들에게 공급해 주는 사업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장사하면서 외상 미수금만 잔뜩 쌓였다. 여러 곳에서 부도를 맞아 빚만 잔뜩 지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자 박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전 대표가 오늘 광주에 온답니다. ‘호남사람 때문에’ 등 자서전에 쓴 내용을 해명바랍니다”라는 글을 게재해 지역 감정을 촉발시켰다.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호남의 영세업체들에게 양말 납품하다가 그 업체들이 부도나는 바람에 미수금 못 받아 망했다는 게 호남 차별인가?”라며 박 의원을 비난했다.
이번 ‘쫄복탕 홍보’에 대한 비난이 글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쏟아진 것도 이런 전작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역감정을 부추겨온 그의 행보가 누리꾼들이 앞뒤 배경을 자르고 ‘쫄복탕 글’을 퍼 나르게 한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다.
전남 목포에서 평생 살고 있다는 오하선(74) 씨는 “(목포) 문태고의 수재였고,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그는 목포가 낳은 최고의 인물임은 분명하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겠지만 이제 시대가 바뀐 만큼 호남의 국회의원이 아닌 대한민국의 큰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