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승인 심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방송 공정성 등을 우려하는 시민단체들의 승인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래부 주최로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관련 공청회가 열린 지난달 24일, 방송통신실천행동 회원들이 공청회장 밖에서 인수합병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승인 여부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가 승인 저지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방송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며칠 전 등장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이통 시장 평가 보고서’는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이십여년 전 국가통신망(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업계 1위로 성장한 SK텔레콤이 이번에도 온갖 복병을 물리치고 ‘거사’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CNB=도기천 기자)
SK發 헬로비전 인수전 ‘뜨거운 감자’
KT·LG유플러스 승인 저지 ‘총력전’
‘총선 후 5월 국회’ 막판 최대복병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에는 여러 걸림돌이 작용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대기업의 방송통신 독과점이 시청자 선택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통신비(시청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심현덕 간사는 21일 CNB에 “대기업이 지역방송(케이블)을 장악하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이동통신 시장과 컨텐츠 유통시장의 독과점 뿐 아니라 여론 독과점을 의미한다. 방송 공정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PD연합회도 최근 성명을 통해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는 방송의 공정성‧공익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방송의 공적 영역이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지난해 통합방송법을 입법 발의했다. IPTV(전국유료방송)사업자는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사업자의 지분 3분의 1(33%)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SK브로드밴드를 소유한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을 인수할 수 없게 된다.
KT와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들은 이 법안의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법이 통과돼야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일방 독주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을 상대로 대관팀을 총동원해 설득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총선 일정에 밀려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최근 보고서를 놓고 경쟁사들은 SK텔레콤의 시장독과점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SK텔레콤 측은 결합상품 시장점유율이 높아진 것은 초고속인터넷 상품가입에 따른 것으로 ‘이통 시장 지배력의 결합상품 시장으로의 전이’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분수령은 4.13총선 이후에 열릴 임시국회다. 19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5월말까지인 만큼 이때 열릴 마지막 국회에 총력전을 펴겠다는 것. 과거에도 여야 이견이 없는 법안들은 선거 이후 무더기 통과된 전례가 있는 만큼 경쟁사들은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반대로 SK텔레콤 측은 법안 통과가 본격 논의되기 전에 인수합병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공정위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만큼 이르면 이달 안에 합병심사가 완료될 수 있도록 입장 설명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합병승인 심사는 미래부와 방통위, 공정위 등 3곳을 거쳐야 한다. 이중 한곳이라도 반대하면 합병이 성사되기 어렵다. SK텔레콤 측은 정치권의 촉각이 총선에 쏠려있는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이다.
정치권은 통합방송법 자체에는 여야 의견차가 크지 않지만 이번 사안과 이 법안을 연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둘로 나뉜다.
미래에 개정될 법률로 현재의 현상을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해석과 통합방송법의 취지를 살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승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우상호 간사(더불어민주당)는 “통합방송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 되고 있는 만큼 승인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보고서 해석 ‘아전인수’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등장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고서는 이통사들 간의 여론전에 불을 지폈다.
KISDI에 따르면 2015년 통신시장 경쟁평가 결과,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를 합친 ‘SK군’의 이동전화를 포함한 결합상품 시장점유율은 50.1%에 이르렀다.
결합상품은 이동통신, 유선방송,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 등의 방송통신서비스 가운데 몇 가지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상품을 이른다.
경쟁사들은 SK측의 시장점유율이 이미 절반을 넘은 상황에서 CJ헬로비전 마저 인수한다면 시장독과점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또 SK텔레콤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이통시장의 지배력이 결합상품으로 전이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지배력 전이’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반대의 핵심 논리 중 하나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이통시장 점유율은 지난 수년간 ‘5:3:2’ 수준인데, 이 공식이 결합상품시장으로까지 옮겨져 시장이 고착화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SK텔레콤은 결합시장점유율 50%는 2014년 48%에서 2% 가량 상승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또 이통시장 점유율 5:3:2에 견줘 볼 때, 결합시장에서의 50% 점유도 수치상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SK측은 “결합상품 내의 비중은 초고속인터넷이 68.4%로 가장 높고, 이동전화가 20.6%로 가장 낮다. 이는 초고속인터넷이 결합상품의 중심 요소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통시장 지배력을 통해 결합상품 점유율을 높인 게 아니라, 초고속인터넷이 결합상품을 이끈 만큼 지배력 전이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미래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KISDI의 이번 보고서는 이통기업들의 경쟁 상황을 분석해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근거 자료라는 점에서 이통사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6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 내용 중 각자 유리한 부분만 골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스트리밍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시작된 마당에 지역케이블방송이 경쟁력을 갖기가 쉽지 않다”며 “대기업의 방송시장 진출은 글로벌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방송공정성 훼손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시장경제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독과점을 방송통신이라는 특수한 분야에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