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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재벌가 낙하산 사외이사 ‘양날의 칼’

주총 시험대 오른 ‘고위관료 영입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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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3.15 17:38:20

▲지난 11일 주주총회를 연 기업들의 대표들. (왼쪽부터) 권오준 포스코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각각 정기주주총회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이례적으로 표 대결이 벌어지면서 ‘낙하산 사외이사’의 ‘묻지마 통과’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는 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회사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어 주주들의 판단은 둘로 나뉜다. 권력형 사외이사의 두 얼굴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입법로비·동향파악 등 ‘대관’ 수행
‘경제사령탑’ 출신 몸값 천정부지
고위관료 영입이 총수 영향력 척도

지난 11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이례적으로 전자 표결이 진행됐다. 일부 주주가 송광수(전 검찰총장)·박재완(전 기획재정부 장관)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총장의 표결은 2005년 당시 참여연대의 반대의사 표명으로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을 두고 찬반 대결을 벌인 이래 11년 만이다.

일부 주주들은 송 후보가 삼성전자 경쟁사 소송을 수임한 적이 있는 법무법인 김앤장 소속임을 문제 삼았다. 그동안 김앤장은 삼성전자와 타 기업 간의 주요소송에서 상대방의 변호를 맡았기에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박 후보는 삼성그룹이 지배하는 성균관대의 교수직을 맡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현행 상법에선 계열사 임직원의 사외이사 선임을 금지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계열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배를 받고 있어 박 후보의 독립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날 주총 직전에 “송광수·박재완 사외이사 후보가 독립성 결여 및 이해상충의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이들의 선임에 대해 주주들이 반대해 줄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주주들은 윤부근·신종균 대표이사, 이상훈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전자 표결이 진행돼 약 9200만주의 찬성과 약 580만주의 반대로 안건이 통과됐다. 세 번이나 표결이 진행되면서 이날 주총은 3시간을 넘겨서야 끝났다. 삼성 측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10대 그룹 신임(재선임) 사외이사 숫자. <단위: 명, %, ( )장·차관 출신> (자료=재벌닷컴)


고위관료들 ‘썩어도 준치’ 

이처럼 일부 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힘있는 사람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는 이유는 뭘까? 

이는 이들이 풍부한 인맥과 경험을 통해 기업에 유리한 정책입안에 영향을 끼치는 데다, 사정기관 동향파악 등 사실상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획재정부 출신 등 전직 경제사령탑은 퇴직 후에도 영향력이 적지 않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지휘하면서 만들었던 인맥을 통해 해당기업에 유리한 정책이 입안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기업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또 국세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의 동향파악을 통해 조사·검사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10월 시행된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다.  

불법 보조금과 요금제에 따른 차별을 규제하기 위해 시행된 이 법의 최대수혜자는 이통3사였다. 결과적으로 보조금이 크게 줄게 돼 소비자들은 비싸게 단말기를 구매하게 됐고, 반대로 이통3사의 수익은 크게 늘었다.   

단통법 시행 1년 후인 지난해 이동통신 3사의 실적을 집계한 결과, 2014년에 비해 마케팅비는  9600억원이 줄었고 영업이익은 1조 6천억원 가까이 늘었다. 

단통법 시행 당시 이통3사의 사외이사들은 상당수가 권력기관 출신이었다. 올해 주총에서도 SK텔레콤은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KT는 송도균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LG유플러스는 정병두 전 춘천지검장을 사외이사로 새로 추천했다.

당장은 득(得), 길게 보면 실(失)

이러다보니 기업들은 해마다 주총시즌이면 앞다퉈 권력기관 출신의 사외이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위 관료를 얼마나 사외이사로 영입했는지가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이례적으로 표 대결이 벌어진 지난 11일 삼성전자 주총 모습. 삼성전자 권오현 이사회 의장(대표이사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3월 주총의 경우, 주요 대기업들이 사외이사의 절반가량을 정부관료 출신들로 채웠거나 채울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이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GS 한진 한화 두산 등 10대그룹의 3월 주총 안건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신규 혹은 재선임 예정인 사외이사 140명 중 정부 고위관료, 금감원, 국세청, 판·검사, 공정거래위원회 등 소위 권력기관 출신 인사가 61명으로 전체의 43.6%나 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치권과 정부부처 등을 상대하는 이른바 ‘대관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려면 영향력 있는 전직 고위 관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이 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에 급급하다 보니, 재벌총수나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하는 본연의 책무에 충실하기는 힘든 구조다.   

CEO스코어가 2014년 기준 37개 그룹 167개 기업의 사외이사 활동내역을 조사한 결과 692명의 사외이사들이 3774건의 안건에 대해 99.7%의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2010~2012년 100개 기업의 이사회 안건 9101개 중에서 사외이사가 한 명이라도 반대한 경우는 33건(0.4%)에 불과했다. ‘거수기’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분석 전문가인 강명재 경영학 박사(씨케이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는 “(권력형 사외이사가) 당장은 기업에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총수 일가의 독주를 견제할 수단이 사라지게 돼 경영승계, 지배구조 개편, 계열사 간 지급보증 등을 방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길게 보면 결코 기업에 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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