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서울시에 제시한 광화문광장 태극기 게양대 예상도. (보훈처 제공)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설치 문제와 관련한 보훈단체들의 면담요구를 뒤늦게 수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단체들은 시의 면담 거부에 항의해 기자회견, 서울시 항의방문을 이어갈 계획이었으나 극적으로 면담이 성사되면서 이를 일단 철회했다. 지난해 행정조정 신청으로 일단락되는듯 했던 ‘태극기 논란’이 다시 점화될지 주목된다. (CNB=도기천 기자)
광화문광장 태극기 설치 1년간 줄다리기
보훈단체들, 협의회 구성해 서울시 압박
행정부시장-보훈단체대표단 면담 성사
서울시 등에 따르면 류경기 행정1부시장과 김덕남 대한민국상이군경회(이하 상군회) 회장을 비롯한 보훈단체 대표단이 10일 오전 면담을 갖기로 했다.
이번 면담이 주목 받는 것은 그동안 ‘광화문 광장 태극기 상시게양’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보훈단체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태극기 게양을 건의하려 했으나 시는 만남 자체를 거부해 왔다.
이번 면담은 대한민국상이군경회와 4.19민주혁명회 등 14개 국가보훈단체 협의체인 중앙보훈단체안보협의회(회장 김덕남)가 지난달 24일 서울시에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요청’ 제하의 공문을 발송하면서 비롯됐다.
협의회는 상군회를 비롯, 국가보훈처 산하 보훈단체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전몰군경유족회,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6.25참전유공자회, 월남전참전자회 등 국가로부터 유공자로 인정된 군·경·민과 유가족단체가 총망라된 기구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합동총회를 열어 김덕남 상군회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했으며, 태극기 상시게양 등을 주요사업으로 내걸었다.
공문에 명시된 면담 안건 또한 ‘광화문광장 태극기 게양대 설치’였다. 협의회는 공문발송 5일후인 지난달 29일까지 면담여부를 회신해 달라고 공문에 명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29일 이후에도 답변이 없다가 지난 7~8일경에서야 시장 면담을 추진했으며, 이후 류 부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됐다. 시가 정부 산하 단체의 요청에 이처럼 늦게 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한 보훈단체 관계자는 CNB에 “보훈 담당인 서울시 복지정책과와 광화문 광장 관리를 맡고 있는 자치행정과가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아무런 답변이 없다가 부시장 선에서 면담이 가능하다고 통보해 왔다. 박원순 시장과 만나려고 했지만 시 입장을 고려해 양보했다”고 전했다.
▲CNB가 단독입수한 광화문 태극기 게양과 관련된 각종 공문들. 대한민국상이군경회를 비롯한 14개 국가보훈단체가 지난달 24일 서울시에 보낸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요청’ 공문(왼쪽)과 서울시가 보훈단체들의 ‘광화문광장 태극기 상시 게양 요구’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공문(오른쪽).
서울시 “한시적” vs 보훈처 “상시게양”
시가 그동안 선뜻 면담에 응하지 못했던 것은 태극기 문제가 상당히 민감한 논란거리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광화문광장에 높이 45.815m의 대형 태극기를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시는 지난해 연말 이를 거부하는 입장을 보훈처에 최종 통보했다.
보훈처는 한국전쟁 중 ‘9.28 서울 수복’ 때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는데, 당시 중앙청 자리(현 광화문)와 가장 가까운 곳이 광화문 광장이라 상징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는 태극기를 광화문광장 옆 시민열린마당에 한시적으로 설치할 수 있으며, 영구적인 설치는 정부 서울청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같은 국가 소유 시설 부지에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는 보훈단체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광화문광장은 시민참여와 소통이 가능한 ‘비움’ ‘열린’ 공간의 취지에 따라 영구시설물 설치를 일관되게 지양해 왔다. 경복궁과 북악산의 조망권, 시민들의 이용편의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비췄다.
그러자 보훈처는 국무조정실 산하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행정조정을 신청했다. 행정협의조정위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업무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을 때 이를 조정하는 기구다.
보훈처는 지난해 6월 서울시와 체결한 ‘광화문 광장 대형태극기 설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근거로, 서울시가 약속을 뒤집었다는 입장이다.
보훈처와 보훈단체들은 상시게양을 주장한 반면 시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지난해까지만 한시적으로 게양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광화문광장) 태극기 설치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다. 다만 항구적으로 광장에 뭔가 설치하는 건 조심해야 하며 한시적으로 설치하거나 이동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시가 보훈단체장들의 면담요구에 대해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광화문 태극기 게양 건이 현재 행정조정 중인 상황에서 면담요구에 응하면 다시 논란이 일게 된다. 그렇다고 면담을 거부한다고 통보하면 보수단체들이 이를 이용해 정치적 공세를 펼 수 있다. 그래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CNB에 “(태극기 문제가 면담 안건이라서) 일상적인 면담 요청이 아니다보니 어느 부서에서 이를 진행해야 할지 혼선이 있었다”고 말했다.
시는 ‘태극기 문제를 면담 주제에 넣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훈단체들을 만나기로 한 상태지만, 당초 면담 요청의 목적이 태극기 문제였던 만큼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보훈단체의 한 관계자는 “양측 면담의 표면적인 명분은 신임 (보훈단체)협의회 회장의 인사 방문이지만 협의회 출범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태극기 상시 게양’이었던 만큼 자연스럽게 그 문제가 논의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협의회 소속 보훈단체들은 시가 광화문광장의 태극기 상시게양에 반대할 경우 기자회견, 전단지 배포, 집회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