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의 모든 일을 떠맡게 될 거라는 불길한 미래예측이, 가뜩이나 불행이 가득한 한반도 상공 위를 떠돌고 있다.
로봇이 인간 일을 인수인계 받는 미래를 얘기하면서, ‘인간의 필요없다(Humans Need Not Apply)'의 저자 제리 카플란은, 1960년대 초 미국에서 벌어진 재밌는 얘기를 하나 들려준다.
당시 IBM은 인공 지능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IBM으로부터 비싼 컴퓨터를 사들이는 기업 고객의 고위 임원들이 “인공지능이라는 게 나오면 결국 우리가 머리를 써서 하는 일까지 빼앗는 거 아니냐”고 걱정부터 하기에 IBM이 바로 인공지능 연구팀을 해체했다는 얘기다. 물론 그 뒤에도 인공지능 연구는 계속돼 왔지만, 대개 로봇은 정신노동자보다는 근로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해온 게 최근까지 수십 년간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로봇이 기자 일 같은 정신노동의 영역마저 침범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통신사 블룸버그에선 이미 간단한 기사를 로봇이 출고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이나 연구소가 내놓는 보도자료-보고서를 기자들이 기사 투로 고쳐내는 방식을 컴퓨터에 입력해 놓으면, 사람 기자가 없어도 로봇 기자가 기사를 척척 써낸다고 한다. 경영진 입장에선 복지후생에 신경 안 써도 되고, 24시간 일 시킬 수 있는 로봇 기자가 사랑스러울 만도 하다.
"로봇 부수면 된다고? 부술 대상이 있어야 부수지"
로봇 또는 컴퓨터가 인간의 일을 빼앗는 사태를 맞아 영국의 산업화 초기에 방적기계 등을 부순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카플란은 “방적기계는 실체가 있었으니 망치로 부술 수라도 있었지만, 당신의 일을 빼앗는 상대가 기계가 아니라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같은 거라면 어쩔 거냐?”고 반문한다. 실체가 없으니 부술 수도 없다는 전문가의 조언이다.
인공지능을 가장 앞서 개발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관련 서적도 잇달아 출간되는 형편이라고 한다.
세계화 시대에, 거의 완전개방 무역국가인 한국에선 어떨까. 소수 재벌이 경제의 거의 전부를 쥐고 흔들며, 세습 재벌이 돈의 힘으로 언론과 사법, 정치, 행정까지 거의 전 분야를 주무르는 나라이기에, 법과 정치의 힘으로, 이런 ‘인간의 일자리를 로봇에 뺏어가는’ 현상을 막을 힘이 있기 힘들다.
산업화 시대에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착취’가 문제됐었다. 그러나 이제 정보화 시대에는 ‘착취될 기회조차 박탈당한’, 즉 일자리에 대한 접근 자체가 차단된 잉여 인간의 문제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일수록 이처럼 ‘착취 못 당하는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법과 상식, 복지제도가 그래도 일자리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일자리 현황을 보면, 가장 인권이 잘 보장되는 일본이 그래도 한국과 중국보다는 일자리 보전 현상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점에서도 이런 현상이 확인된다.
그래서 결국 화두는 경제민주화로 모여질 수밖에 없다. ‘1인 1표’라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무리 확립된다 해도, ‘1원 1표’라는 자본주의 논리가 세상을 완전 지배하면, 일자리에서 머슴밖에 안 되는 사람이, 즉 직장에서 쫓겨날까 안절부절못하거나 아예 직장 접근권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투표 현장에서만 온건한 정신을 발휘해 한 표를 행사할 거라 기대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정치적 민주주의는 초보적이나마 안착됐다고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아직도 멀었다. 그리고 인간이 도저히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달려 나가는 ‘인공지능의 초고속 일자리 차지’ 시대에는, 경제민주화의 기본토대를 갖지 못한 나라의 ‘궁민’들은 고통의 질곡으로 몰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2년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고 국민들은 투표로 선택을 했다. 그런데,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한국인 대다수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경제민주화를 1등으로 꼽는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여전히 충족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땟거리 없어져야 궁둥이 움직인다는 인간인지라…
옛날부터 사람은 엉덩이가 무거운지라, 땟거리(매 끼의 식사거리)가 궁해져야 궁둥이를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분당이니 합당이니 하는 것도, “땟거리가 궁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간은 어떤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던 제1야당으로서 2등자리가 보장됐지만, 이제 그 자리마저 위협받으니 비로소 몸이 움직이면서 정치적 이합집산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무섭게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요구를 과연 어느 정치세력이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설득함으로써, 멀리서 불어오는 인공지능 태풍의 전조에 밥그릇이 까딱까딱 흔들리는 걸 감지하기 시작한 한국인들의 표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지 바야흐로 흥미진진한 승부가 다가옴이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