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명운동에서 노동관련법 외에 주목받는 것은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과 서비스산업발전법(서발법)이다. 특히 서발법은 이미 대통령이 수차례 국회와 국민을 향해 필요성을 호소했던 법안이다. 대통령은 왜 이 법에 목을 매는 걸까? (CNB=도기천 기자)
‘노동5법’에 발목 잡혀 통과 지연
유통기업·청년구직자들 법안 절실
국회 공전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천만 서명운동의 대상이 된 법안은 경제 관련 2개, 노동 관련 5개 등 모두 7개 법안이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근로시간 단축과 파견제근로자에 대한 파견허용업무 확대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양산하는 법안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노동관련 법안들은 이처럼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다른 법안들은 분위기가 다르다.
‘원샷법’은 여야가 절충점을 찾으면서 사실상 통과가 확실시 되고 있다. 이 법은 기업이 사업재편과 인수·합병 등에 나설 때 관련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것이 핵심. 각종 규제와 세금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다는 의미로 ‘원샷’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성장한계에 직면한 재계는 이 법안이 절실하다. 대기업 계열사 3곳 중 1곳 이상이 대출 이자도 못 갚는 수준의 영업이익(이자보상배율 1 이하)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라 각종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줄이는 게 급선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 등 삼성계열사 4곳의 한화그룹 편입, 롯데의 삼성SDI의 케미컬 부문 합병,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 대기업들의 굵직한 사업재편이 많았다.
그동안 이 법은 대기업집단의 경영승계를 쉽게 하고 세금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야권의 반대에 부딪혀왔다. 하지만 여야가 원샷법 적용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기로 합의하면서 오는 29일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 되고 있다.
원샷법 합의했지만 서발법 ‘뒷전’
하지만 서발법은 새해 들어서만 2~3차례 여야가 머리를 맞댔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야당이 ‘서발법이 의료 민영화로 흐를 우려가 있다’며 법 적용 대상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할 것을 주장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서발법은 민관합동으로 ‘서비스산업선진화 위원회’를 만들어 5년마다 기본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연구개발 성과에 대해 정부인증과 자금, 세제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 중점육성 서비스산업을 선정해 규제를 개선해주고, 서비스산업 특성화 학교와 전문연구센터를 건립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2012년 7월 국회 제출 이후 4년 가까이 잠자고 있다.
서발법은 마지막 남은 경제 핵심법안이기도 하다. 정부는 박 대통령이 2014년 초 “올해를 규제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선언한 뒤 강도 높은 경제개혁을 추진해 왔다.
경제활성화 관련 30개 법안을 발의해 이중 대부분이 처리됐다. 의료민영화 논란을 불러온 국제의료지원사업법, 대기업(대항항공)의 호텔업 진출에 특혜를 준다며 야당이 반발해온 관광진흥법도 지난해 연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박 대통령은 서발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연일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정연설에 이어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때도 ‘콕 집어’ 서발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국무회의 때도 빼놓지 않고 이 법을 언급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통과 된 후 발생하는 효과들을 보면서, 신속한 국회통과가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지 느끼게 된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시간동안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고통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0월 시정연설 때는 국회 계류 중인 서발법을 지칭하며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고까지 말했다.
경제개혁 화룡점정 vs 의료민영화 포석
대통령이 유독 이 법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내수활성화와 청년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연도별 종업원 수 변화를 조사한 결과, 최근 6년 동안(2008~2014년) 종업원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롯데쇼핑으로 1만4536명이 늘었다. 최근 3년간(2011~2014년)으로 기간을 줄이면 신세계 이마트의 종업원이 가장 많이 증가하는 등 유통·서비스 기업들의 채용률이 다른 직종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유통기업들과 청년들은 이 법안의 통과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서비스기업 400개사를 대상으로 ‘서비스산업발전법에 대한 업계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4.9%가 ‘서비스산업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며, 조속히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전국 만 19~39세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서발법’이 도입돼야 한다고 응답한 청년이 88.4%나 됐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 때 “서발법을 통해 최대 69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처리를 촉구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난 연말 계류 중인 300여 건의 비쟁점 법안이 일괄 처리될 때, 서발법은 포함되지 못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19대 국회는 사실상 선거체제에 들어간 상태다. 이런 배경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 서명’이라는 최후카드를 내민 것이다.
서발법-노동법 일괄타결 가능성
한편 천만서명운동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상의),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와 33개 경제·시민단체가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 본부’를 꾸려 온라인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기업체, 대형마트, 재래시장, 광장 등지의 오프라인 서명 운동도 규모가 커지고 있다. 전국 71개 상의에 서명대가 설치돼 있고 대구상의, 경주상의, 용인상의 등은 기차역과 번화가 중심으로 장외 서명을 넓히고 있다.
기업들도 적극적이다. 삼성과 CJ, 롯데백화점 등이 본사에 서명대를 설치했으며, 현대차 LG SK 포스코 한화 두산 금호아시아나그룹 삼양사 OCI GS그룹 등 상당수 대기업들이 사내포털에 서명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업계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24일 기준으로 온라인 서명 인원이 20만명을 넘었으며, 오프라인까지 집계하면 이보다 최소 두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운동본부 측은 중복서명 논란이 일자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이를 확인해 서명인원 집계에서 제외하고 있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CNB에 “경제가 살아나길 바라는 국민의 자발적이고 순수한 뜻에 따라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서명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샷법이 금주 중 통과될 예정이라 이후부터는 서명이 시들해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야당과 일부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의료민영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로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안”이라며 “19대 국회가 며칠 남지 않은 만큼 서발법과 노동개혁법안 중 쟁점사항을 일괄 타결하는 쪽으로 야당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