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건 그 골목 뿐일까. 대우자동차, 럭키금성, 해태그룹, 기아차 등 그 시절의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졌거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간판을 바꿨다. 하필 그 시절 기업이 그리운 건 왜일까. (CNB=도기천 기자)
영욕의 기업사…앞만 보고 달린 1988
‘화려한 기억’ 저편에 ‘우리’라는 두 글자
사라진 골목길에 멈춰선 그날의 기억들
케이블채널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응팔’에서 가장 주목받은 기업은 ‘금성사’(럭키금성그룹)다. 금성사는 오늘날 LG그룹의 전신이다.
창업주 연암 고 구인회 회장은 1931년 경남 진주시에서 ‘구인회상점’을 열면서 기업을 시작했다. 1940년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발전시켜 운수와 무역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몇 년 뒤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으며, 195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회사인 금성사를 세워 국산 라디오 생산에 성공했다.
구 회장은 이 과정에서 사돈이자 진주의 만석꾼이었던 허만정 회장과 동업했다. 허 회장이 자금을 대고 그의 아들 허준구(현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부친) 씨가 영업이사로 참여해 회사를 키웠다.
1983년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그룹으로 바꾸고 전자·에너지·화학·유통 등을 휩쓸었다. 이후 허 회장 일가에게 에너지·건설 부문을 내주며 계열분리 시켰다. 2004년 LG로부터 인적분할 된 회사들이 현재의 GS그룹을 이뤘다.
‘응팔’ 당시 럭키금성은 서민들과 밀접한 생활용품 및 가전제품 1위 회사였다. 치약을 ‘럭키치약’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TV·냉장고 등 가전제품들에는 ‘GoldStar’ 마크가 붙었다.
당시 럭키금성의 주력계열사들은 오늘날 LG생활건강과 LG전자로 발전했다. 지난달 유명을 달리한 고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은 금성사를 오늘날 ‘글로벌 LG’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쎈’ 누나 성보라가 타던 차
응팔에 등장한 대우자동차도 화제를 모았다. ‘쎈’ 누나 성보라가 선배로부터 빌려온 차가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던 ‘르망’이다. 그때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인데다 대우의 탱크주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면서 중산층의 로망으로 여겨졌다.
대우자동차는 1999~2000년 대우사태로 대우의 대부분 계열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GM으로 넘어갔다. 한국GM의 모기업인 미국GM(제너럴 모터스)은 70~80년대 대우자동차와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등 한때 대우와 한솥밥을 먹던 동반자였다.
이후 GM대우로 재출범하면서 ‘대우’라는 이름을 겨우 지켜내긴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11년 3월 ‘GM대우’는 ‘한국GM’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그간 써온 ‘대우’ 명칭을 ‘쉐보레(Chevrolet)’로 바꿨다. 이때부터 ‘대우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우차와 쌍벽 이룬 현대차 승승장구
반면 당시 대우차와 경쟁했던 현대차는 오늘날 완성차 분야 국내1위의 현대기아차그룹(현대자동차그룹)으로 발전했다.
응팔 드라마 속에서 성균의 애마로 등장한 ‘포니’는 당시 현대차의 주력모델이었다. 1976년 울산공장에서 첫 출고된 포니는 첫 해에 1만726대가 팔리면서 국내 승용차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성균의 애마는 1세대 포니를 부분 변경해 1982년 출시한 ‘포니2’다. 포니는 한국자동차를 글로벌 시장에 알린 첫 사례였다.
이후 현대차는 승승장구해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후에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80%를 장악했으며, 세계9위의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역사는 순탄치 못했다. 현대그룹에서는 2000년 3월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승계 다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 등 10개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으며, 현대그룹 경영권은 5남 정몽헌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후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으로 분리됐다.
크라운과 오비, 희비쌍곡선
극중에서 쌍문동 아줌마 3인방(이일화, 라미란, 김선영)의 단골메뉴로 자주 등장한 크라운맥주는 국내 주류기업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하이트진로(당시 조선맥주주식회사)의 주력상품이다. 하이트진로의 전신은 1933년 설립된 ‘조선맥주’다.
크라운맥주는 1952년 출시됐다가 1993년 하이트맥주가 나오면서 단종됐다. 1993년 신제품 ‘하이트’ 출시로 돌풍을 일으키며 맥주업계 1위에 올랐지만 몇년 뒤 오비맥주의 ‘카스’에 밀려 다시 1위 자리를 내줬다. 1998년에 회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변경했으며, 2005년 소주 분야 1위인 진로와 통합해 하이트진로로 재출범했다.
하이트진로는 응팔 인기에 힘입어 크라운맥주 한정판을 최근 출시했다. 1980년대 크라운에 최대한 가까운 맛을 구현했고 당시 상징이었던 왕관 디자인을 제품에 새겼다. 지난해 10~12월 생산된 100만여 캔은 전부 바닥이 났다.
프로야구 전성시대 ‘기업의 추억’
하이트진로가 무난한 성장세를 이어온 반면 오비(OB)맥주는 질곡의 세월을 거쳤다.
오비맥주는 프로야구의 역사를 대변하는 기업이다. 오비맥주가 1982년 1월 설립한 ‘OB베어스’는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야구팀이다.
이후 MBC 청룡(서울), 롯데 자이언츠(부산), 삼성 라이온즈(대구), 해태 타이거즈(광주), 삼미 슈퍼스타즈(인천) 등 모두 6개 팀이 창설돼 프로야구 전성시대를 열었다.
응팔 드라마에서는 1980년대 전 국민을 스포츠 열기 속으로 몰아넣었던 프로야구의 우승팀을 두고 성동일과 최무성, 김성균이 내기를 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오비는 한국시리즈 첫 해 및 1995년에 우승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중위권 성적을 내며 분전했다.
오비는 1997년 두산음료를 흡수합병 했으나 1998년 두산그룹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오비맥주 지분 50%를 벨기에의 주류 기업인 인터브루에 매각하면서 ‘두산베어스’로 팀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와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EP)에게 지분이 넘어가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2014년 세계 1위 맥주기업인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의 품에 안겼다. 1948년 동양맥주로 창립된 오비맥주가 70년 세월을 거치며 결국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으로 바뀐 것이다.
이밖에 1997년 한보사태 여파로 부도를 내면서 몰락한 삼미그룹, 2000년 법정관리에 들어가 크라운제과에 합병된 해태제과, 현대차에 인수된 기아차 등도 응팔 시절을 풍미한 기업들이었다.
기업이 시장논리에 의해 사라지고 생기는 게 다반사임에도 왜 하필 ‘그 시절’ 기업이 그리운 걸까? 이웃이 힘이 되던 시절, 그때 그 브랜드들 옆에 ‘희망’을 두고 왔기 때문일까.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