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군경, IS 퇴치 집중…민생치안 구멍
현지주민들, 한국건설사 공사장서 폭력행사
사실상 내전 상태…사업포기 건설사 속출
이라크 현지의 치안부재가 잘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8일(현지시간) 쿠르드자치지역의 포스코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력사태다.
포스코건설과 현지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주민 50여명이 아르빌 서북쪽 10㎞에 있는 포스코건설의 카바트 중유발전소 건설 현장에 난입했다. 이들은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며 사무실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로 인해 경비원 4명이 부상당해 치료 중이다. 한국인 직원 20여명은 아르빌 시내로 피신했다.
현지 소식통들은 발전소 사업의 이권을 놓고 터키 하도급업체와 이 지역업체 사이에 충돌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12일 CNB에 “포스코건설의 현지 하청업체인 터키 건설사와 그 건설사의 재하청업체 간에 생긴 일로 파악하고 있으며, 자세한 내막은 현지 경찰의 수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또 “IS와는 전혀 관계없는 지역에서 발행한 일이라 테러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IS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이라크정부가 IS 세력을 소탕하는데 군사력을 집중하면서 치안 공백이 발생해 생긴 일로 보인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강력한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스코건설은 2012년 8월 이 공사를 수주했고, 완공시기는 올해 9월이지만 치안문제로 지연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앞서 이라크 남부에서 대규모 정부발주공사를 진행 중인 대우건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8월 남부 바스라 주(州) 항구도시 알파우 사업장에 현지 주민 20여명이 난입해 집기를 부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대우건설 사업장에서 일하게 해달라며 시위를 벌인 것.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기물이 파손되는 등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대우건설은 2013년 11월 이라크 항만청(GCPI)으로부터 6억9000만 달러에 이 공사를 수주해 방파제를 짓고 있으며, 올해 완공 예정이다. 대우 측과 현지 경찰은 혹시 모를 주민들의 추가 난입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수천억원 허공으로…긴장의 연속
이처럼 이라크 현지 치안이 불안해지면서 아예 공사를 중단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STX중공업은 이라크 서부 안바르 주에서 악카스 가스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 악카스 BV’와 체결한 4508억원 규모의 파이프 공급 계약을 지난해 6월 해지했다.
2014년 1월 공사에 착수한 STX중공업은 2017년 6월까지 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IS가 안바르 주 인근을 점령한 이후 이곳에서 이라크 군경과 시아파 민병대, IS 간 교전이 끊이지 않자 결국 사업을 포기한 것이다.
지난 2012년부터 이라크에서 ‘비스마야 신도시’를 짓고 있는 한화건설은 자체적으로 경비인력을 충원하는 한편 현지 군경과 긴밀히 협조하며 철통 경계를 펴고 있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인 80억 달러 규모로, 총 공사기간이 7년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부 10km 지역에 위치한 비스마야 지역 1830ha 면적에 신도시 인프라와 서민주택 10만호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IS와 교전 중인 지역이 늘고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기업 터키인 넘쳐…IS 표적 우려
문제는 앞으로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라크 정부가 대대적인 IS 소탕전에 나서면서 이라크 전 지역으로 교전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30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 연쇄 테러 이후 미국·프랑스 등 연합군은 IS 근거지를 중심으로 공습을 확대하고 있으며 지상군 파병도 검토 중이다.
최근 터키군은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 군조직인 페쉬메르가와 수니파 민병대 등을 훈련하는 터키군을 IS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병력 수백명과 탱크 20여대를 배치해 IS와 치열한 교전을 치렀다.
IS는 이에 맞서 터키 이스탄불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해 한국인을 포함 수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포스코건설 사업장 폭력 사태에서 보듯, 현지 건설사들은 터키노동자들을 대규모 채용하고 있어 한국기업이 IS의 표적이 될 우려가 있다.
한 현지 건설사 관계자는 “이라크 군경의 대부분이 IS와의 전투, 경비 등에 투입되다보니 민생치안이 허술할 수밖에 없다. IS와 현지주민 모두를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라 자체적으로 사설경호원을 동원해 현장 주변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