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코 앞에 유사당명(?)들 현수막 넘쳐
잦은 창당…더이상 짜낼 ‘당명’ 없어 골머리
궁여지책 ‘더불어민주당’…‘원조민주당’ 발끈
CNB가 29일 국회와 인접한 서울 마포구 일대를 둘러본 결과, 각종 프랭카드에 민주당(원외정당), 더불어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혼재된 채 사용되고 있었다.
CNB가 마포구를 표본으로 정해 둘러본 이유는 국회 앞 서강대교를 건너면 바로 마포구인데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에 민주당사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기 직전(국회 맞은편)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당사가 자리 잡고 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정당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김민석 전 의원이 의장으로 있는 원외정당이다.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마포구 주민들은 민주당사를 새정치민주연합 당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잦았다.
주민 박상용 씨(55)는 “두 당의 로고가 비슷한데다 당을 이끌고 있는 인물들도 ‘올드보이’들이 많아 헷갈린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당명을 바꾼다니 더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민주당사의 벽면에는 과거 익숙하게 본 듯한 ‘민주당’ 로고가 박혀있다.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신촌로터리에는 고(故) 김근태 전 의원 추모제를 알리는 ‘더불어 민주당’의 프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같은 당에서 내건 프랭카드로 볼 수밖에 없을 듯했다.
또 신촌로터리로 접어들기 전에 도로 왼편으로 접어들면 ‘홍대 핫플레이스’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명의의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국회에서 불과 1킬로 남짓한 거리를 두고 민주당, 더불어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3개 명의의 프랭카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혼란이 가중되자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 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것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상태다.
민주당은 29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더불어 민주당의 당명 등록은 정당법의 근간을 흔드는 비상식적 위법행위이므로 명칭 사용을 선관위에 불허할 것을 요청한다”며 “더불어 민주당에 대한 당명이 등록되면 법원에 당명사용금지가처분신청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도 “포장지만 바꿨을 뿐이다. 이름을 바꾼다면 내용도 같이 바꾸라”고 비판했다.
30년간 열댓번 쪼개졌다 모였다 반복
민주당이 이같은 비난을 감내하면서도 새 당명에 애착을 보이는 데는 아픈 ‘당명 작명(作名)’의 역사가 배경이 되고 있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3월 당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안철수신당)이 합당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안철수 의원 등이 탈당하면서 1년 9개월 만에 다시 갈라선 상태다.
합당 당시에도 당명 정하기가 순조롭지 않았다. 안철수 측은 ‘민주’라는 이름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로 민주당’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민주당 측은 역사적 정통(1955년에 창당된 민주당)을 담아 ‘민주’라는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한길 대표는 “‘민주’를 뺄 경우 호남지역에서 다른 정당이 그 이름을 차용할 것”이라며 안철수 측을 설득했다.
결국 국민공모가 진행됐고 그 결과 ‘새정치국민연합’이라는 이름이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유사 당명’으로 판정 나 포기해야 했다.
당시 김 대표의 우려대로 일부 야권 세력이 지난해 9월 ‘민주당’을 창당해 당명을 선점했다.
이런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터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에 ‘더불어 민주당’으로 당명을 정할 때 철저하게 보안에 부쳤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의 예에서 보듯, ‘당명 알박기’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루 아침에 당명을 선포하고 반나절 만에 홈페이지를 리뉴얼 했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간 다른 야권 세력들도 새 당명을 제대로 정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안철수 의원 측은 가능한 빨리 창당하고 총선에 뛰어들 생각이지만 신당의 타이틀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는 “당명에 ‘새정치’나 ‘민주’라는 단어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또다른 야권 세력인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민당’ 등도 이미 과거에 유사한 당명이 존재했던 터라 선거관리위원회 최종 등록까지는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야권이 당명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는 워낙 잦은 창당, 재창당 과정에서 쓸만한 당명이 이미 소진됐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대 첫 야당인 통일민주당(1987년 4월창당) 이후 야권은 열댓번 쪼개졌다 다시 모였다를 반복했다. 평화민주당, 꼬마민주당, 신한민주당, 신민주연합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새천년’을 떼낸) 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연합(안철수신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여러 정당이 창당, 재창당, 합당을 반복해 왔다.
정치평론가 정세현 씨는 “새 당명(더불어민주당)을 보니 얼마나 ‘민주당’을 쓰고 싶었으면 저렇게까지 했겠나하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든다”며 “선거철 마다 등장하는 총선용 정당은 이제 국민들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당명을 바꿀게 아니라 내용, 인물을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