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노소영 관장 결국 ‘결별’
노소영 부친 집권 때 SK텔레콤 급성장
이혼소송하면 ‘숨은 비화’ 드러날 수도
29일 SK그룹 등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한 언론에 보낸 A4지 3장 분량의 편지에서 “노 관장과 십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 결혼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 서로 공감하고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수년 전 여름에 그 사람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고 고백했다.
최 회장은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노 관장과의 ‘법적 이별’이 차일피일 미뤄졌다고 전하면서 “이제 노 관장과의 관계를 잘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2013년 1월 법정구속돼 2년 7개월을 복역한 뒤 올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시절에 만나 애정을 키우던 중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88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연애 당시 두 사람은 함께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형성 과정은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대통령 간선제로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던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의 벽에 부딪히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간선제 헌법 개정이 이뤄진지 15년만의 개헌이었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민정당) 총재였던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대선에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민주화 시대 첫 대통령이었음에도 당시 정권 분위기는 여전히 엄혹했다. 양심수 석방과 5공 청문회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가 이뤄지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전두환 등과 함께 12,12쿠데타를 주도한 하나회(육군사관학교 11기생 주도의 비밀결사조직) 출신이라는 점에서 군부의 입김은 여전히 강했다.
선경그룹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1997년 3월 한국이동통신은 SK텔레콤으로, 그 해 10월 유공은 SK(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이때를 전후해 선경그룹의 대부분 계열사들은 ‘선경’을 떼내고 ‘SK’로 로고를 바꿨다. SK해운, SK에너지판매, SK가스, SK옥시케미칼, SK생명 등이 신(新) CI선포식을 가졌다.
세간에서는 이 과정에 당시 노태우 정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결혼하기 전에는 선경그룹의 주력 사업이 섬유 화학 건설 분야였다. 두 사람 결혼 후 선경이 통신사를 설립해 공기업인 한국이통을 인수한 과정은 정권의 도움 없인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후 SK텔레콤은 오늘날 1위 통신사로 성장했고, SK가 국내 5대 재벌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최 회장은 부친 최종현 회장이 1998년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총수 지위를 물려받았다. 당시 SK가(家) 2세들은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 모든 지분상속을 최 회장에게 몰아줬다.
관계회복 노력했지만 결국 루비콘강 건너
하지만 최 회장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노 관장과 그룹경영 등을 두고 자주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노 관장 입장에서는 SK의 성장에 ‘친정’이 상당한 역할을 했으므로 역할론을 주장할 수 있다.
노 관장은 지난 2013년 4월 보유하고 있던 SK㈜ 주식 1만9054주 전량을 매도했다. 노 관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은 0.04% 수준이고 주식 판매 대금이 27억원 규모로 크지 않았지만 이는 SK가와의 결별을 다짐한 수순으로 보인다.
이렇게 두 사람의 틈새가 넓혀지면서 최 회장은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최 회장은 현재 명문 사립대 음대 출신으로 알려진 A씨와 서울시내 모처에서 동거 중이며 노 관장은 워커힐호텔 내 빌라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과 A씨 사이에는 6살 난 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 부부는 이미 10여 년 전에 이혼에 서로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과 노 관장 부부 사이에는 소말리아 아덴만 파병 임무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차녀 최민정 해군중위 등 세 자녀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감지된다. 최 회장은 편지에서 “종교활동 등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도 많이 해보았으나 그때마다 더 이상의 동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재확인될 뿐,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며 “노 관장과 부부로 연을 이어갈 수 없어도, 좋은 동료로 남아 응원해주고 싶다. 노 관장과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를 보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할 생각”이라며 애틋한 심정을 나타냈다.
노 관장 또한 한때 ‘의미 있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13년 9월 최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 당시 법정을 찾은 노 관장은 최 회장에게 중형이 선고되자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노 관장은 연신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판결 내용이 믿기지 않은 듯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재판부와 피고인들이 모두 퇴정하고도 10여분이 흘러서야 측근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최 회장의 결별선언과는 별개로 노 관장이 이혼에 동의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 회장 부부가 재산 분할 등에 합의하고 이혼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면 숙려기간을 거친 뒤 법적으로 혼인관계가 끝난다.
하지만 노 관장이 최 회장을 불륜으로 몰아 이혼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재산 문제와 양육권 등을 놓고 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 재산 분할은 결혼 파탄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느냐 와는 별개로 ‘재산 형성 기여도’를 주로 고려하므로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이동통신 인수 등 SK텔레콤의 성장과 관련된 숨은 비화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