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인상이 국내 금리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얼어붙고 있는데다, 금융당국은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미 일부지역의 아파트 분양 일정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으며, 하향곡선을 그려왔던 대출금리도 꿈틀대고 있다. 건설업계는 다시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대출규제·금리인상·공급과잉 ‘악재’
대우·현대·GS 등 건설사 주가폭락
‘금리인상=경기회복 신호’ 긍정론도
건설업계는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5년여 간 혹독한 시간을 겪었다. 부동산 호황기 때인 2006~2007년 대규모 착공된 아파트들이 완공 시기인 2009~2010년에 쏟아지면서 전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긴 겨울이 계속됐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들어 각종 부동산 규제가 대거 풀리고 사상 초유의 낮은 금리가 지속되면서 건설업계는 다시 봄날을 맞았다.
2008년 5%대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계속 내려가 현재는 사상최저인 1.5%다. 주택담보대출금리는 2~3%대에 불과하며, 대출심사 조건이었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대폭 완화됐다.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내리자 주택담보대출은 사상최고치인 350조원(11월말 기준)에 육박했다.
대우, 현대, GS, 호반, 한화, 부영, SK, 대림, 두산, 포스코건설 등 대형건설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물량을 쏟아냈다.
지금이 집을 팔 찬스라고 판단해 앞다퉈 밀어내기식 분양을 하다 보니 부동산 시장 최대 호황기였던 2006~2007년 때보다 공급량이 늘었다. 건설사들이 올해 시장에 쏟아낸 물량은 역대 최대 규모인 50만 가구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발 금리인상이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금리 인상으로 외국인 자금이 국내증시를 떠나고 있다. 안전자산인 달러로의 이동이다.
이달에만 외국인은 총 2조5000억원의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외국투자자들의 매도 행진이 계속되면서 2014년 3월 이후 약 1년7개월 간 유지돼온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50% 밑으로 내려갔다. 올들어 몇 차례 20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지수는 1970선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으려면 우리정부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이는 대출금리의 인상을 의미하는 것이라 주택시장에는 치명적인 악재다.
이미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이용되는 신규취급액 코픽스가 두 달 연속 올랐다. 지난 15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1.66%로, 전월인 10월(1.57%)보다 0.09%포인트 올랐다.
금융감독원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스트레스테스트(stress test)에 따르면 시장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두 배 가량 오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상황이 좋지 않자 건설업계는 연내 계획됐던 신규 아파트 공급을 내년으로 연기하고 있다. 이달 예정된 분양물량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내년 초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공공분양·공공임대도 분양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어, 정부 공급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일례로 올해 최대 공급 예정지였던 경기 고양시 향동 택지개발지구는 아직도 분양 일정이 안개속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이곳 121만㎡부지에 공공임대와 일반분양 등 공공주택 8700여 세대를 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해 3월 LH로부터 택지지구 조성 사업자로 선정된 호반건설은 당초 지난 10월 경기 고양시 향동지구 B3블록에 첫 분양단지를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기약 없이 연기됐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정부 주도의 도시계획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 뒤늦게 대출 고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업계에 자금난까지 겹쳤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주택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지난 10월부터 시중은행의 아파트분양 집단대출 심사 및 리스크 관리에 대한 집중 점검에 들어갔다.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주택보증기관의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보증금액이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
여기에다 정부가 12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를 강화할 방침이라 한동안 자금난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은행권의 집단대출 축소 분위기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며 “통상 아파트 분양 때 이뤄지는 PF대출과 집단대출은 토지와 분양권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쉽게 대출이 이뤄져왔지만 최근에는 보증을 낀 사업장조차도 대출을 받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 4월 중순 잠깐 4000선을 돌파했던 ‘KODEX건설’ 상장지수는 2530(18일 종가기준)까지 내려갔다.
대한건설협회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상위 10대 건설사 중 상장된 6개 기업의 주가는 최근 2개월 새 평균 15.7%나 감소했다.
18일 종가기준으로 대우건설(7050→5620)이 20.3%, 현대건설(37650→28650) 23.9%, GS건설(25550→19600) 23.3% 하락했다. 또 대림산업(74900→65000), 현대산업개발(43200→40150), 삼성물산(157500→147500)이 각각 13.2%, 7%, 6.3% 주가가 빠졌다.
이밖에 두산건설, 포스코건설, SK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대형건설사 대부분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 닥친 위기를 일시적인 상태로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금리 인상은 기본적으로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기에 부동산 시장에 악재로만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폭락에서 비롯됐던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주요국들의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든 만큼 건설업계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에 한국 부동산을 살펴보면, 둘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시점은 1983년 4월, 1986년 12월, 1994년 2월, 1999년 6월, 2004년 6월이었는데 이 시기 한국의 기준금리도 상승세를 나타냈지만 주택담보대출의 위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또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가파르지 않다는 점도 위안이 되고 있다. 주요 해외투자은행(IB)들 대부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에 2∼3차례 금리인상을 하는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의 영향이 크지 않은 만큼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결국 앞뒤 상황으로 볼 때, 내년 초로 예정된 대출규제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건설업계 판도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대출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주택가격 대비 담보대출 비율이 60%가 넘는 가구는 비거치식 분할상환(이자·원금 동시상환)으로 유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대책을 내년 2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대형건설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과거에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부동산시장에 큰 악재로 작용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미국의 경기회복(금리상승)이 되레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며 “대내외적인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경제의 기초체력이 길러진 만큼 과거처럼 부동산이 폭락하는 사태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정부가 어떤 시그널을 주느냐에 따라 시장이 움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