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도 헷갈린 두 그룹, 법원이 정리
박삼구·찬구 형제 10년 갈등 ‘종지부’
금호산업 발판 삼아 그룹 재건 ‘박차’
대법원(특별3부, 주심 박보영 대법관)은 지난 10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이하 금호석화)은 서로 다른 기업 집단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공정위는 그동안 금호석화 8개 계열사까지 합쳐 모두 32개 회사를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분류해 왔다. 그러자 금호아시아나는 지난 7월 공정위를 상대로 “금호석화 8개 계열사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분류해 금호아시아나의 소속 회사로 지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불복해 상고했고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금호석화의 분리·독립 경영이 계속 이뤄지는 것을 보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영향력이 배제된 채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경영권 행사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2010년부터 금호석화 등 8개사는 신입사원 채용을 별도로 해온 점 ▲‘금호’라는 상호는 쓰지만 금호아시아나의 로고는 쓰고 있지 않은 점 ▲사옥을 분리해 사용하고 있는 점 ▲기업집단현황을 별도로 공시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로 금호석화 8개 계열사가 빠지게 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등 24개의 계열사로 확정됐다.
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며칠 뒤 금호아시아나는 판결문을 인용해 금호석유화학그룹과 완전 계열분리 됐다고 공식 표방했다.
이로서 그동안 두 형제 사이에 모호하게 얽혀있던 ‘금호’라는 마지막 고리까지 끊어지게 된 것이다.
회한의 70년 역사, 결국 계열 분리
그동안 공정위조차 헷갈릴 정도로 이들 기업군이 얽히고설켜 있은 배경에는 금호가의 뿌리 깊은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1946년 금호 박인천 창업주는 전남 광주에서 택시 2대로 사업을 시작해 오늘날의 금호그룹을 일궜다.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화의 모 기업인 금호산업은 60~70년대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어 ‘금호 신화’를 창조했다. 1995년 중국 우한에 첫 합작회사를 설립해 해외 운수시장에 진출했다. 1999년 사업구조 재편에 따라 금호타이어(주)와 합병해 현재 금호그룹의 근간을 이뤘다.
이후 토목·건축을 비롯해 공항․물류시설, SOC, 환경, 주택 등 건설 전 분야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쳤으며, 인천국제공항, 무안국제공항,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등 굵직한 SOC사업에도 참여해 명성을 날렸다. 신공항고속도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민자사업에도 손을 댔다.
하지만 금호산업은 대우건설 인수 등 무리한 M&A(인수합병)로 유동성 위기를 겪다 지난 2009년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가 사실상 주인 없는 기업이 됐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한때 ‘형제경영의 모범’으로 칭송 받았지만 2006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견해 차이를 보이며 틀어졌다. 대우건설 등의 인수는 결국 그룹 전체를 뒤흔드는 유동성의 위기를 불러왔으며 형제간 갈등은 더 커졌다.
이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화의 계열분리를 시도하면서 지분 경쟁이 벌어졌고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둘 사이는 더 악화됐다.
마침내 2011년 박찬구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계열에서 제외해 줄 것을 신청하면서 형제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 시기에 박찬구 회장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검찰에 기소돼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자신이 재판정에 서게 된 배경에 형(박삼구 회장)이 있다고 판단한 박 회장은 형을 4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등 맞불을 놓으면서 두 사람 간 갈등을 정점에 이르렀다.
양 측은 상표권 소송을 비롯, 아시아나항공 주식매각청구소송,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 결의 무효소송과 형사고발건 등으로 전면전을 치렀으며, 심지어 박삼구 회장이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를 고소한 사건도 있었다.
대법원이 두 형제 간 얽힌 고리를 끊어준 것과 비슷한 시기에 박삼구 회장은 6년간 워크아웃 상태에 놓였던 금호산업을 되찾았다. 박 회장은 올해 초 그룹의 모기업인 금호산업이 매물로 나오자 사재를 털어 인수 실탄을 마련하는 등 사활을 걸어왔다.
여러 곡절 끝에 지난달 채권단으로부터 7228억원에 금호산업을 인수했으며 올해 안에 인수대금을 완납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하지만 금호석화가 금호 품을 완전히 떠나게 돼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아쉬움도 크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가나 현대가처럼 그룹의 덩치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계열분리가 이뤄진 게 아니라 형제 간 앙금이 깊어지면서 결국 결별하게 됐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두 그룹은 내년이면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기념식은 각자 갖게 될 전망이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