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주택담보대출 급격히 둔화
美금리인상·대출규제 앞두고 관망
대세 하락 VS 일시적 위축 ‘팽팽’
지난달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4조원 넘게 늘었지만 증가세는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기업 등 6대 은행의 11월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43조3295억원으로 전월(339조2908억원)보다 4조386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 9월(3조9043억원)보다는 크지만 10월(7조497억원)에 비해서는 3조원 가량 급감한 수치다. 특히 10월과 11월 증가분이 비슷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는 10월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이는 집값 하락을 예고하는 각종 징후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노원구, 관악구, 강동구를 비롯한 서울지역과 경기 구리, 안산 등 수도권의 매매가가 떨어지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집값 상승을 주도해왔던 서울 강남지역과 대구·경북 아파트 값이 1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서고, 분양권 시장에서도 하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정보에 따르면 강남3구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9월과 10월에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22.2%, 12.7% 감소했다.
13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 들어 2주 연속 강남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하락했다. 강남구 주택 가격이 떨어진 것은 지난해 11월 말(―0.02%) 이후 1년여 만이다.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도 1년여 만에 떨어지는 등 부동산 시장이 점점 얼어붙고 있다.
대구경북·강남 등 주요지역 하락
지방 주택 경기를 견인해온 대구·경북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수성구, 동구, 달서구 등 대구 주요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최근 몇 년 새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던 대구 달서구 상인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14일 CNB에 “지난 추석 이후 매수세가 자취를 감췄다. 매물은 꾸준히 나오지만 매수자들이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다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가계부채관리방안 시행을 앞두고 돈 빌리기를 주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대출 증가세 둔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2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상환능력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주택가격 대비 담보대출 비율이 60%가 넘는 가구는 비거치식 분할상환(이자·원금 동시상환)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이 이달 안에 발표된다.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최근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오름세로 돌아선 것도 주택시장에 악재다. 오는 15~16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달러화 강세(원화 약세)가 뚜렷해져 외국자본의 이탈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 이탈을 막으려면 우리 정부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출금리가 상승하게 돼 빚을 내 집 사기가 힘들게 된다.
공급과잉 논란이 불거지면서 주택구입 시기를 2~3년 뒤로 미루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올해 신규 공급물량은 약 50만 가구(예정포함)로 역대 최대다. 건설사들이 지금이 물량을 쏟아낼 찬스라고 판단해 앞다퉈 밀어내기식 분양을 하다 보니 부동산 시장 최대 호황기였던 2006~2007년 때보다 공급량이 늘었다.
대우, 현대, GS, 호반, 한화, 부영, SK, 대림, 두산, 포스코건설 등 도급순위 20위권 내 대형건설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물량을 쏟아냈다.
이처럼 과도한 공급은 입주가 시작되는 2~3년 후 가격하락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부동산 호황기 때인 2006~2007년 대규모 착공된 아파트들이 완공 시기인 2009~2010년에 쏟아지면서 전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바 있다. 이런 학습효과 탓에 소비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담보대출증가세가 멈췄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1200조원 대에 달하는 가계대출이 주택시장 발목을 잡고 있다. 부동산담보대출이 주춤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가계대출은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가계빚이 늘었다는 말은 그만큼 주택구매 여력이 떨어진단 얘기다.
한국은행이 지난 8일 발표한 ‘10월 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에 따르면 10월 한 달간 가계대출은 전월 보다 11조8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10월 이후 월간 증가액으로는 최대치다. 이 중 신용대출, 마이너스대출 등의 증가액은 4조3000억원에 이른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대세 하락’과 ‘일시적 위축’으로 의견이 나뉜다. 전통적인 비수기인 12월~1월을 지난 뒤 봄 성수기와 새학기가 시작돼야 향배를 가능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있지만, 경기 흐름으로 볼 때 본격적인 조정기가 도래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 시장에서 성수기·비성수기가 사라진지 오래됐다. 계절적 요인보다는 국내외적인 상황들이 부동산 흐름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금리 인상은 기본적으로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기에 부동산 시장에 악재로만 볼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부동산 폭락에서 비롯됐던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주요국들의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든 만큼 한국 부동산 시장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이휘정 수석연구원은 “주택담보대출이 완전히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보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며 “내년에 가계부채관리방안이 시행되면 대출이 줄어들 가능성(주택매매 위축)은 상당 부분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