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6년여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뒤를 따라 영면의 길로 떠났다.
지난 반세기 넘게 영호남을 대표하며 굴곡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이끌어왔던 ‘양김(兩金) 시대’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됐다.
이 두 전 대통령은 과거 군사독재와 맞섰던 민주화 투쟁에서는 ‘동지’이자 ‘동반자’ 관계였다. 하지만 이후 대권을 앞에 두고서는 단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던 영원한 ‘맞수’이자 ‘경쟁자’로 평가받고 있다.
‘양김’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헌정사를 수놓은 YS와 DJ는 파란만장했던 그들의 정치역정 만큼이나, 두 사람의 관계도 굽이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라이벌로서 치열한 진검승부를 펼치며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 왔다.
최고 권력자로서 이건희·정주영과의 각별한 인연
한편, YS는 과거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재계 총수들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복권을 통해 재벌 총수가 기업인으로서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으며, 때로는 특정 발언이나 상황에 따른 정치적 입지로 인해 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재계에 따르면 YS가 재계와 맺은 인연 중 대표적으로 꼽는 인사는 이건희 삼성 회장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다.
이건희 회장은 YS의 문민정부 시절 첫 번째 사면·복권을 받은 인연이 있다.
당시 1996년 8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직무와 관련한 100억 원을 4회에 걸쳐 전달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회장이 항소하지 않아 1심이 그대로 확정된 상태였다.
이듬해인 1997년 YS가 개천절을 맞아 이 회장 등을 비롯한 경제인 23명을 특별 사면·복권했다. 이후 이 회장은 이명박 정부 때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등을 위해 단독으로 특별 사면·복권된 바 있다.
YS의 문민정부 초기 현대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지난 1993년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며 큰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 이유로 한 해 전인 제14대 대선에 출마해 여당 후보였던 YS와 대립각을 세운 데 따른 일종의 보복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대선 패배 직후 지난 1993년 1월 정 명예회장은 출국금지를 당했고, 이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 직후 의원직을 포기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정 명예회장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사면·복권됐다.
YS는 재임 중 정 명예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면한다”고 통보하면서도 한동안 불편한 심기를 거두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2001년 3월 정 명예회장이 타계하자, 청운동 빈소를 직접 찾아가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우리나라에서 대업을 이룬 분인데, 그런 족적을 남긴 분이 가시니 아쉽다”고 조문하며 ‘사후 화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