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관세청의 입찰정보 유출 의혹 여진
롯데, 형제 간 분쟁 ‘상생점수’ 악영향
두산, 정부와 ‘사전교감설’ 풍문에 곤혹
기업들은 올해 초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전을 시작으로 지난 7월에는 신규 면세점 유치 경쟁을, 이번달에는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면세점들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치렀다.
관세청은 지난 14일 연말에 특허기간이 끝나는 시내면세점 서울 3곳의 후속 사업자로 롯데면세점(소공점), 신세계디에프, 두산을 선정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서울시내 신규면세점 사업자로 낙점했다.
이 과정에서 낙점 기업들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지난 7월 10일 신규 면세점 사업자 발표 때는 정보 사전유출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발표는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오후 5시에 이뤄졌지만 사업자로 선정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주가는 오전부터 급등해 상한가로 마감했다. 거래량도 전날보다 30배 이상 늘었다. 상한가 행진은 4거래일간 지속됐고 6만원이던 주식은 순식간에 17만원대로 폭등했다.
이날 한화와 함께 사업자로 선정된 호텔신라(신라면세점) 주가도 8.94% 급등했으며 거래량도 평소보다 5~6배 많았다. 하지만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랜드·SK네트웍스 등 탈락한 기업들의 주가는 약속이나 한 듯 고요했다.
그러자 사전에 입찰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일었고 금융위원회와 관세청이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관세청의 한 직원이 심사가 진행 중이던 시점에 비상용 휴대전화를 이용해 친지 등 외부와 여러 차례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불똥은 한화로 옮겨 붙었고 한동안 갖은 의혹에 진땀을 뺐다. 조사결과 한화는 주가폭등과 아무 관련이 없음이 입증됐다.
널뛰기 주가에 ‘악성 찌라시’까지
이번 달에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신세계와 두산도 한화의 전철을 밟고 있다.
관세청은 국회의원들의 질타까지 받으며 곤욕을 치른 터라 이번에는 철통보안을 유지했다. 발표일을 아예 주식시장이 열리지 않는 토요일(14일)로 잡았다. 심사 장소는 충남 천안의 외딴 곳인 관세국경관리연수원을 정했으며, 심사위원들은 휴대전화를 수거 당한 채 1박2일간 건물 안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발표 전날인 지난 13일 신세계 주가는 12% 급등했다. 두산은 사업자로 낙점됐다는 내용이 담긴 정보지(일명 찌라시)가 나돌며 13% 넘게 오르다 1.98% 하락 마감했다. 반면 탈락된 SK네트웍스는 3% 이상 추락하며 온종일 약세를 보였다.
특히 두산은 정부와 사전교감이 있었다는 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제단체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수장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면세점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간 ‘빅딜’이 있었다는 게 ‘두산 사전 낙점설’의 골자다.
박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경제사절단 단장 자격으로 동행해 곁에서 수행했고 최경환 부총리와도 기업규제, 노동개혁 등을 논의하기 위해 수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면세점 사업권과 관련한 교감을 나눴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추측이다.
박 회장이 사재 100억원, 두산그룹이 100억원을 각각 출연해 동대문 지역발전과 상권활성화를 위한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을 출범시키고, 지역 상인들과 ‘동대문 상생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면세점 영업이익의 10%(약 500억원 추산)를 상생기금으로 내놓기로 약속한 것도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두산 측은 “소설 같은 얘기”라며 일축했다. 두산 관계자는 “관세청이 동대문이라는 입지조건을 높게 평가했으며 그밖의 얘기는 악성루머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롯데는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평가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 7월 롯데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94)이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측근들을 해임하면서 시작된 롯데가 골육상쟁(骨肉相爭)은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다.
권좌에서 밀려난 형(신동주)의 반란, 동생(신동빈)의 진압, 다시 형의 반격, 아버지(신격호)의 격노, 한일(韓日) 롯데의 정체성 논란, 숨겨진 지분구조의 비밀 등 이틀이 멀다하고 뉴스가 쏟아지면서 국민들의 반(反)롯데 정서도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최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롯데의 지분구조를 꼬집으며 “불투명한 기업에 알짜 사업인 면세점 허가를 내줄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면세점 선정에 있어서 ‘상생’ 점수를 높게 배정했다. 관세청은 관리역량(30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요소(150점) 등 운영과 직결된 요소 외에도 운영인의 경영 능력(250점),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공헌도(150점),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협력 노력정도(150점)를 주요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면세점=정부 특혜 사업’이라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서다.
따라서 국민정서와 멀어지고 있는 롯데는 상생 등의 점수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기존 투자금액, 고용인원, 관광산업 기여도 등을 고려하면 ‘기존 사업자’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결국 롯데는 지난 1989년부터 27년간 운영해온 롯데월드 내 면세점(월드점)을 두산에게 빼앗겼다. 지난 2013년 관세법이 개정된 후 특허가 만료된 사업권이 다른 사업자에게 넘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월드점 영업권 상실과 관련, “99%가 나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롯데는 면세점 사업권을 잃은 데다 기업 이미지마저 타격을 입는 등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수익악화·피로감… ‘계륵’ 될라
한편에서는 면세점 사업이 ‘계륵’(鷄肋·닭의 갈비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면세점은 세금이 면제되는 대신 수익의 0.05%에 해당하는 금액만 특허수수료로 내는 일종의 국가 특혜 사업이다. 국내 최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지난해 1조 976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특허수수료 9억 4000만원만 납부했다.
하지만 최근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면세점 수수료율을 현행 보다 100배 높인 5%로 인상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면세점처럼 정부의 특허를 받고 운영되는 카지노사업의 경우 특허수수료율이 10%인데 지나치게 면세점만 적다는 게 홍 의원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면세업계는 사실상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지난해 전체 면세점 시장 매출 규모는 8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5525억원, 특허수수료는 40억원 정도였다. 수수료가 100배 오를 경우 40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나머지 1500억원 가량을 나눠 가져야 하는데, 영업비용·유지관리비·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적자라는 것이다.
기업들이 약속한 상생기금도 발목을 잡고 있다. 신세계는 2700억원을 들여 서울 시내면세점을 ‘사회공헌 및 상생면세점’으로 설계키로 했다. 두산은 영업이익의 10%를 상생기금으로 내놓기로 약속했다.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년마다 사업권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2013년 관세법 개정 이전에는 기존 사업자의 경우 10년마다 한 번씩 재허가를 받았고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허가가 자동으로 갱신됐다. 하지만 이제는 사업권을 획득하더라도 5년 후 다시 확보해야하는 ‘시한부 사업권’이 됐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면세점 입찰 때마다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여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상생 평가점수를 높기 위해 앞다퉈 영업이익 사회 환원 계획을 내놨고 지역 관광 인프라 개선을 위한 대규모 투자까지 발표하는 등 무리한 공약이 잇따랐는데, 결국 이것이 ‘승자의 저주’가 될 수도 있다”며 “여기다 특정 기업이 이미 내정돼 있다거나 선정 결과와 관련된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등 악성 여론전까지 가세하면서 기업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